오랜만에 용산 나들이 (2/3)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아모레퍼시픽 사옥입니다. 1, 2, 3 층을 뻥 뚫은 로비 한쪽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입구가 있습니다. 문 쪽으로 걸어가면 직원분께서 문을 열어 주십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나?' 싶을 정도의 과잉 친절이라고 느껴지긴 합니다만 뭔가 이유가 있는 거겠죠.
인터넷으로 관람 예약을 했습니다. 예약할 때 시간도 지정해야 하길래 2시 30분 입장으로 예약을 했어요. 막상 미술관에 도착한 건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시간으로 입장을 제재하진 않았던 걸로 봐서, 시간 지정은 큰 의미가 없었던 게 아닐까요? 아마, 어떤 시간에 사람이 몰리겠구나 미리 예상해서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설문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웹 브라우저로 예약확인 페이지를 볼 수 있거든요? 그게 바로 입장권이 됩니다. 전시실에 들어갈 때 해당 웹 페이지에서 바코드를 체크하시더군요.
안내 데스크 앞에 지하 1층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단 옆에 작은 아트샵이 있습니다. 몇몇 기념품과 도록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오늘의 전시인 '조선의 민화'는 도록이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더군요. 전시 작품의 개수가 엄청난 전시입니다.
도록... 사고 싶었는데, 두 권이라 차마 사지 못했어요. 설명은 빼고 그냥 전시 작품 사진만 실려 있는 다이제스트 판으로 한 권짜리 도록이 있었다면 샀을 텐데.
아쉽게도 전시는 지난 6월 29일에 끝났습니다. 저도 전시 끝난다는 소식 듣고 부랴부랴 다녀온 거였어요.
지하 1층으로 내려오면 드디어 전시실입니다. 전시 제목을 커다란 벽에 영사(映寫)하고 있었어요.
인기가 많은 전시인가 봅니다. 관람객이 아주 많아요. 하지만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번잡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사람이 많지만 조용한 전시였어요. 아, 찰칵찰칵 하는 셔터음은 좀 많이 들립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 전시들의 특징이죠.
이번 전시의 주제는 '민화(民畫)'입니다. 국어대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면
민화 - 예전에, 실용을 목적으로 무명인이 그렸던 그림. 산수, 화조 따위의 정통 회화를 모방한 것으로 소박하고 파격적이며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제가 보기에 중요한 포인트는 '무명인', '파격', '익살' 같은 것들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은 아주 재밌는 것들이 많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제 조카가 그린 것 같은 그림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 파격과 익살이 재미있습니다.
아, 물론 유명한 사람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더군요. 표현이 좋거나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드는 그림은 여지없이 작가의 작품이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전시의 재밌는 점은 거의 모든 전시작품이 '병풍'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까지 '병풍'을 모아 놓고 본 경험도 없고 기억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전시예요.
전시 초반부에서 가장 제 마음에 들었던 작품입니다.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는 여덟 글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문자도예요. 전반적인 푸른빛도 좋았고, 과감하고 단순한 글자의 표현도 좋았지만 글자 위아래에 그려진 해학적인 그림들이 좋았거든요?
그래서 작품 옆에 붙어 있는 설명을 봤더니, 이건 '제주도'의 식생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하더라구요. 제 마음에 들었던 '해학적인 그림'들이 제주도의 특산물들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거예요. 그러고 보니 갑자기 옥돔이 보이지 않나요? 아, 그리고 저 푸른빛은 제주의 푸른 바다?
전시가 아주 큰 규모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편안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도 총 관람 시간 두 시간 동안 중간에 두 번을 쉬었어요.
아, 전시실에 입장하기 전에 야외에서 걸어오느라 땀이 좀 났거든요. 그래서 제가 부채질을 하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진행 요원 한 분이 오셔서 '전시실 내에서는 부채질이 금지되어 있으니 많이 더우시면 중간중간 쉼터에서 충분히 쉬면서 보세요'라고 하시더라구요. 아, 무식이 탄로 났습니다. 전시실 내에서 부채질을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오늘 날이 더울까 봐 일부러 챙겨 나온 부채였는데. 하하, 하.
연잎과 연꽃을 그린 작품이었는데요. 연잎의 표현이 단순하고 과감하면서 다양한 형태를 보여줘서 눈길이 갔던 작품입니다.
중간에 귀여운 게가 한 마리 보여서 클로즈업으로 한 컷.
이 작품은 가장 강하게 인상에 남았던 작품입니다. 관동팔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여덟 폭 병풍인데요.
그 표현 방식이 추상적이고 기호적인데, 과감한 터치가 귀엽고 재밌습니다. 동그랗게 그린 경포 호수가 보이시나요? 이 그림 앞에서, (속으로) 키득키득거리면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웃으면서 이 작품을 보시더라구요.
각 그림의 테두리를 아주 재밌는 무늬로 큼지막하게 그린 것이 재밌었던 작품이에요.
나비를 그린 병풍도 두 개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입니다. 나비에 대한 묘사가 세밀합니다. 심지어 이 나비가 어떤 나비인지 동정(同定)할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해요. 제비나비, 호랑나비, 네발나비, 표범나비, 흰나비 등등 우리 산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나비들을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정밀하게 그려둔 작품이에요.
제가 나비에 관심이 많아서 한참을 들여다봤던 작품입니다.
두 번째 휴식입니다. 작품이 너무 많아요. 하나하나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두 시간 안에 다 볼 수 없습니다.
저는 미술관에 가면 '모든' 작품을 다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어차피 그 많은 작품들 모두에서 감동을 받을 순 없으니까요. 어떤 작품이던 하나만, 딱 하나만이라도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을 만나면 그날의 관람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꽤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에요. 슥슥~ 훑어보면서 어떤 작품이 저의 눈길을 끄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눈길이 가는 작품, 마음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는 작품 앞에서 시간을 충분히 사용하죠.
오늘도 그렇게 몇몇 작품을 건진(?) 거고요.
그렇게 빠르게 훑으면서 관람했는데도 불구하고 두 시간을 꽉 채워야 할 정도로 작품이 많은 전시였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지막 휴식을 하면서 오늘 저녁을 먹을 식당을 예약해 뒀어요. 뭐죠? 이 J 같은 모먼트는? 오늘따라 스스로가 신기하고 대견합니다.
저녁을 먹은 얘기는 다음 포스팅으로 넘겨야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길어졌네요. 아, 그리고 저녁은 용산에서 먹진 않습니다만, 그냥 용산 나들이로 치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