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용산 나들이 (3/3) - 구의동 타이료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조선의 민화전을 약 두 시간 동안 관람하고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용산에 나와서 점심은 진미식당의 콩국수를 먹고, 전시도 잘 봤네요. 그다음은 이 동네의 노포를 찾아서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 잔을 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오늘은 전부터 가고 싶던 스시집이 있어서 미리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가게 위치가 용산이 아니고 구의동인데... 나들이 나온 김에 들를 수 있게 된 거니까, 그냥 '용산 나들이'에 같이 묶었습니다.
오늘 예약해 둔 타이료는 구의역 앞, 예전 동부지검 자리에 새로 생긴 NC 이스트폴에 입점한 신상 스시야입니다. 이곳에 와보고 싶었던 이유는 놀라운 가성비 때문인데요. 점심, 저녁 모두 오마카세 5만 원입니다. 점심, 저녁 모두 1, 2부로 시간이 나눠져 있고, 오늘 저의 예약은 저녁 1부 5시 30분입니다. 아, 그리고 저녁 오마카세는 8월부터 10만 원으로 인상된다고 하네요.
어쨌든 5만 원이면 엄청 저렴하잖아요? 그래서 한 번 와보고 싶었는데, 오늘 타이밍이 좋았어요. 그래서 용산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구의동까지 온 겁니다.
5시 30분 정각이 조금 지나 입장하니 1부 타임의 손님은 저 포함 딱 네 명이네요. 평일 저녁 1부는 예약에 여유가 좀 있는 편인 것 같습니다.
자리에 앉으니 바로 젓가락을 고르라고 합니다. 이자카야에서 니혼슈를 마실 잔을 고르는 것과 비슷한 시스템인 모양입니다. 저는 가운데에 있는 남색 젓가락을 골랐습니다. 사실 맨 왼쪽의 빨간 젓가락에 눈길이 가긴 했는데...
처음 나온 것은 빵으로 뚜껑을 만든 수프입니다. 이런 걸 앙쿠르트 스프라고 하나요? 빵 뚜껑 안에는 크림 수프가 들어 있는데 양송이와 양파가 있습니다. 고소하고 맛있었어요. 부순 빵 조각들을 수프에 찍어서 먹었어요.
이게 의외로 작은 숟가락으로 툭툭 쳐서는 빵이 열리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젓가락을 이용해 찢었습니다.
화이트 와인을 한 병 주문하려고 했는데, 지하철 타고 오느라 더워서 일단 생맥주를 한 잔 주문했습니다. 에비스를 사용하시네요. 오랜만에 마시는 에비스 생맥주입니다.
골뱅이, 모즈쿠, 이쿠라(연어알)입니다. 골뱅이가 제 취향에 비해서 과하게 쫄깃했지만 나쁘진 않았어요. 모즈쿠는 참 오랜만입니다. 좋아하는 해초입니다. 전반적으로 모즈쿠의 시큼 상큼함 덕분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요즘 '인디고'라는 새로운 카메라 앱을 쓰고 있는데요. 디지털 줌 성능을 체크해 보려고 삼치를 썰고 계신 모습을 줌으로 찍어봤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앱이다 보니 조작을 잘못해서 날린 사진도 있어요. ㅠㅜ
초된장을 바른 사와라(삼치)입니다. 볏짚을 이용해 살짝 아부리를 했어요. 초된장 덕분에 삼치가 아예 다른 요리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퍼석하지 않고 탱글해서 말씀해주시지 않았으면 다른 생선으로 착각할 뻔했어요. 마음에 들었던 한 점입니다. 아, 두 점이네요.
(첫 번째 스시 - 히라메 : 사진 깜빡하고 못 찍음 ㅠㅜ)
다음으로 스시가 시작됐는데요. 첫 점은 자연산 히라메(광어)였습니다. 헌데 제가 깜빡하고 사진을 못 찍었지 뭡니까 ㅠㅜ 그래서 사진은 없습니다만, 유자즙을 뿌리고 소금으로 간을 한 자연산 광어였는데요. 유자즙의 상큼함과 소금의 짠맛이 어우러져서 굉장히 기분 좋은 한 점이었습니다. 광어의 맛을 느끼기보다는 유자와 소금만을 느낀 것일 수도 있지만, 뭐 그래도 저는 좋았습니다.
두 번째 스시를 시작하기 전에 첫 번째 스시를 기준으로 샤리의 양과 간을 확인하십니다. 밥의 양을 줄이거나 늘릴 수도 있고, 간을 더 세게 또는 약하게 조정할 수도 있나 봅니다. 당연히 코스 중 언제든 말씀드려도 되긴 하겠죠. 여튼 저는 샤리의 양이 괜찮았어서 그대로 계속 쥐어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나온 두 번째 스시는 자연산 타이(도미). 사실 뭐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뭐, 도미가 도미죠 뭐.
타이료의 샤리는 밥 알이 조금 단단한 편이고 전반적으로 약하게 뭉친 느낌입니다. 저는 그것도 괜찮았어요. 입안에서 스르륵 풀어지지만 밥 알 자체는 씹는 맛이 있다고 할까요.
맥주를 다 마시고 화이트 와인을 하나 주문했습니다. 소비뇽 블랑을 좋아하는데 리스트에 쇼블은 이거 하나밖에 없더군요. 클라우디 베이 2024. 오랜만에 마시는 비싼(?) 와인입니다.
(세 번째 스시 - 히라스 : 사진 찍었는데 날려먹음 ㅠㅜ)
그리고 세 번째 스시 사진을 찍었는데, 이때 카메라 앱에서 뭔가 오류가 생긴 건지... 사진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ㅠㅜ 처음 사용해 보는 앱이라 뭔가 제가 잘못 눌렀나 봐요. 그래서 사진이 없습니다만, 세 번째 스시는 히라스(잿방어)였습니다. 잿방어도 좋아하는 생선이에요. 겨울엔 방어 여름엔 잿방어라던가요? 하여간 방어는 기름져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잿방어는 특유의 그 탄력 때문에 좋아합니다. 스시 역시 맛있었어요.
네 번째 스시는 스미이카(갑오징어)입니다. 여기서도 유자와 소금의 터치가 느껴졌어요. 거기에 더해서 시소향도 느껴지던데 셰프님께 여쭤보진 못해서 확실하지 않네요.
이 즈음에서 장국이 나왔습니다. 사진에 잘 표현이 안 된 것 같은데 진~한 아카 미소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리고 게로 육수를 내셨는지 고소한 꽃게의 맛과 향이 아주 진하게 우러나옵니다. 고개를 조금 갸웃? 했던 건, 참나물의 역할이 좀 애매했어요. 비주얼도 그렇고 맛이나 향도 저 된장국에 어울리는 게 과연 참나물이었을까? 하는 의문.
아, 그리고 사진 구석에 찍힌 쯔께모노. 오이와 야마구라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특별한 맛은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좀 더 예쁘게 담을 수 있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스시는 우니(성게)와 아마에비(단새우)입니다. 이건 뭐 실패하기 힘든 조합이죠.
여섯 번째 스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인 아지(전갱이)입니다. 이 한 점이 오늘의 베스트.
일단 제가 좋아하는 생선이라서 높은 점수를 따고 들어가기도 했지만 전갱이 위에 올린 저 녹색 고명! 저게 좋았는데요. 셰프님께 여쭤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엔 바질 페스토 같았거든요? 혹시 모르겠습니다. 일본에서 많이 쓰는 시소나 한국 입맛에 맞춰 깻잎 페스토였을지도요. 하지만 상쾌하게 터지는 끝맛이 바질 페스토 같았어요.
일곱 번째 스시는 감태로 둘러싼 가이바시라(키조개 관자)와 우니(성게) 크림입니다. 이것도 뭐 실패하기 힘들죠. 우니를 그대로 올려주셨으면 더 좋았으려나? 싶기도 하지만 우니 크림도 나쁘지 않았어요.
이 즈음에 야끼 모노(구이 요리)가 하나 나옵니다. 메로 구이였어요. 그 옆에는 튀밥(?) 위에 초당 옥수수가 들어간 살사를 올렸네요. 이것도 꽤 마음에 들었던 요리입니다. 오랜만에 먹는 메로가 상당히 맛있었어요. 그리고 살사가 아주 새콤한 게 입맛을 돋구더라고요. 토마토는 아삭아삭했고요. 솔직히 초당 옥수수는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여덟 번째 스시는 아카미(참치 등살)입니다. 뭐 그냥 평범했던 한 점이었다고 기억해요.
아홉 번째 스시는 뱃살이라고 하셨는데 오도로인지 쥬도로인지 모르겠습니다. 겉을 살짝 아부리한 다음 파와 함께 김으로 쌌습니다. 나쁘진 않았는데요. 참치 뱃살의 감동이 느껴지진 않았어요. 그래서 좀 아쉬운 한 점입니다.
마지막이자 열 번째 스시는 아나고(붕장어)입니다. 소금으로 간을 했고요. 부드럽게 호로록 먹어 버렸습니다.
식사는 우나기(장어) 구이가 곁들여진 오차즈케였는데요. 그릇 자체가 평평한 데다가 숟가락이 작고 불편해서 찻물에 들어 있는 밥을 퍼먹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장어만 집어 먹었습니다.
디저트는 토마토 셔벗입니다. 녹색으로 보이는 알갱이는 야채인데, 이게 좀 헷갈리더라고요. 시소 같기도 하고 아까 전갱이 위에 올렸던 바질 같기도 합니다. 토마토+바질은 누구나 알고 있는 조합이잖아요. 어쨌든 상큼하게 입안을 마무리하는 디저트로 오늘의 식사가 끝났습니다.
수프, 전채, 사시미, 구이가 나오고 총 열 점의 스시. 그리고 식사와 디저트까지 해서 5만 원. 솔직히 말해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성비는 아주 극강이죠? 8월부터 가격을 인상하신다고 하니 그전에 시간이 되면 몇 번 더 다녀와야겠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방문하면 와인을 주문하진 않으려고 합니다. 혼자서 한 시간 동안 와인 한 병을 다 먹는 것은 무리가 있네요. 주류 메뉴에 300ml 니혼슈도 있었던 것 같으니 그걸로 마셔야겠어요.
자, 식사는 끝났고, 반 병 남은 와인을 어디서 마셔 버려야 할까요? 구의역에 단골집이 하나 있긴 한데, 배 부른 상태로 와인까지 들고 가면... 가게 매출을 올려주기는커녕 귀찮게만 만들 것 같아서, 그냥 집으로 들고 와서 천천히 마셔 버렸습니다. ㅎㅎ
자, 이렇게 오늘의 용산 나들이는 구의동에서 마무리가 됐습니다. 아무래도 '서울'을 돌아다니다 보니까 마지막 하나의 포스팅은 '먹고 마시는' 얘기가 되는군요. 뭐, 그것도 여행의 일부분 아닌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