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혼술 - 3. 인사동 산들바람 소요카제
앞서서 미야비 하나레를 다녀온 이후에 니혼슈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술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상하게 니혼슈만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있던 자신에 대한 반성(?) 같은 것도 있었고, 마셔보니 의외로 제 마음에 드는 니혼슈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니혼슈를 잔으로 마실 수 있는 곳'들을 집중적으로 검색해 보게 됩니다. 사실 그냥 잔으로 팔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마실 수 있는 곳을 찾는 건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와인이나 니혼슈 같은 저도수의 발효주들은 병을 개봉해 술과 산소가 만나면 술맛이 금방 변해가기 때문에 병을 열었다면 최대한 빨리 다 팔아야 하거든요. 헌데 그걸 다양하게 팔기 위해서는 빨리 팔아야 하는 병의 수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이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새롭게 검색해 낸 곳은 바로 산들바람(소요카제)입니다. 이름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소요카제 そよ風 는 산들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위치는 인사동의 끝자락, 안국동 사거리 바로 앞, 편의점이 있는 건물의 2층입니다.
이곳은 수입사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한켠에 술 보관고가 있고, 많은 양의 니혼슈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소매점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이 술들은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저 많은 종류의 니혼슈를 전부 잔으로 마실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그건 아니고요. 잔으로 마실 수 있는 것들은 메뉴판에 별도로 적혀 있습니다. 방문했을 당시에는 니혼슈 7종, 쇼츄 12종을 잔으로 마실 수 있었습니다. 재고 상태에 따라 니혼슈의 종류는 계속 바뀐다고 하는데요, 대략 2주~1개월 주기 정도면 충분히 새로운 리스트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쇼츄는 거의 고정이고요.
일단 더위와 습기를 뚫고 왔으니까 좀 시원한 게 마시고 싶어서 나카무라 なかむら 를 소다와리로 한 잔 주문했습니다. 가고시마의 사츠마 이모를 사용한 쇼츄인데 항아리 발효를 하는 곳입니다. 전통적인 쇼츄의 맛이라고 볼 수 있고, 꽤 유명한 쇼츄입니다.
저녁 대용으로 주문한 니꼬미 함바그 with 바게트입니다. 니꼬미 함바그란 함박스테이크를 소스에 푹 졸인 것을 말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어요.
사실 방문하기 전에 찾아봤던 후기들에는 전부 '간단한 안주만 가능하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거든요. 이 정도면 맛도 있고 식사 대용으로도 가능했어요. (제가 소식을 하는 편이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본격적으로 니혼슈를 시작합니다. 지난번 미야비 하나레에서 마셨던 이즈마츠루 디 오리진 東鶴 The Origin 입니다. 지난번에 마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깔끔한 술입니다.
앞서 마신 것이 어땠냐고 물어보시길래 너무 좋았다고 답하면서 다음 것은 더 화사했으면 좋겠다고 추천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추천받은 것은 아키토라 安芸虎 준마이다이긴조 였습니다. 레이블이 뭔가 고풍스러운 느낌이라 전통적인 쌀맛이 날까 봐 걱정을 좀 했는데, 어라? 이거 엄청 화사합니다. 그리고 잡맛 없이 깔끔하네요. 이것도 좋았습니다.
함바그를 먹고 허기를 면하긴 했는데 안주는 계속 필요하니까, 안키모를 주문했습니다. 헌데 나온 것을 보니 예상과는 좀 다른 것이 나왔어요. 안키모가 있기는 한데 새콤한 국물에 담겨 있더라고요. 게다가 미역도 있고 오크라도 있고, 방울토마토도 있습니다. 이걸 스노모노 酢の物 라고 해야 하나, 초회라고 해야 하나, 샐러드라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맛있었습니다. 그냥 안키모만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안주였어요.
어차피 7종류를 다 마시진 못할 것 같고, 앞으로 두세 잔을 더 마신다면 어떤 순서로 마실지 여쭤봤더니 일단 이걸 추천해 주셨습니다. 우라자토 浦里 준마이긴조 히타치니시키 ひたち錦. 아카부가 이미 너무 유명해져 버린 신흥 브랜드라면 우라자토는 이제 막 뜨고 있는 새로운 브랜드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술을 '깔끔한 아마구치'라고 표현한 걸 봤는데, 아... 이게 아마구치라고 하면, 저는 니혼슈에 대해 지금까지 너무 큰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걸 마시고 저는 달다고 느끼지 못했거든요. 이렇게까지 미세한 단맛을 아마구치라고 부르는군요. 여기서 저의 편견을 깼습니다. 니혼슈 마실 때, 아마구치도 마시겠다! 고요.
다음으로 아카부 赤武 준마이를 주문했습니다. 최근에 마신 적이 있었는데,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었거든요? 이번엔 어떤 느낌일지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헌데, 뭐, 역시나였습니다. 워낙 유명한 니혼슈라 살짝 기대했지만 그냥 뻔한 느낌이랄까요. 뒤에 오는 쌀맛까지 더해서, 저에게는 그냥 그런 술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잔을 서비스로 주셨어요. 호오비덴 츠루기 鳳凰美田 劔. 사실 저도 마지막엔 이걸 마시면서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마음을 어떻게 아셨는지, 감사감사. 첫 향은 좀 강렬한데 질감은 부드럽습니다. 그러면서 뒷맛이 아주 깔끔하게 떨어지더라고요. 매력이 있는 니혼슈였습니다.
산들바람 소요카제. 이곳은 혼술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일단 손님이 그리 많지 않고요. 저 말고도 혼술 하시는 분이 두 분이나 더 계셨어요. 음식의 양도 적은 편이라 혼자서도 두 종류 정도는 문제없었고요. 끼니를 때울 수 있을만한 음식도 있습니다. 니혼슈의 종류가 좀 적은 편이긴 하지만 한 번에 모든 종류를 마시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어차피 매일 방문할 것도 아니니 가끔 들른다면 종류는 모두 바뀌어 있을 겁니다. 게다가 집에서 지하철을 갈아타지 않고 한방에 갈 수 있으니, 아주 큰 장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