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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oos Apr 16. 2019

1. 서울에서 미야코섬까지

비행기 두 번 타고 렌트해서 숙소까지

사실 이번 여행에 미야코섬을 들르는 것은 비용 낭비가 심한 일이었다.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는 곳이라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원래 계획보다 비용이 많이 추가되기 때문. 하지만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드라이브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 미야코섬은 그동안 가보고 싶어 했던 섬이기도 했다. 7년 전에 오키나와를 여행할 때 이리오모테, 이시가키, 타케토미, 자마미 등 여러 섬을 들렀었는데 '미야코 블루'로 유명한 미야코섬은 미처 들르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야코 제도와 이시가키, 이리오모테 섬이 있는 아에야마 제도는 매우 남쪽, 사실상 대만 옆이다.


마침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특가 비행기 표가 있었다는 것도 결심을 굳힌 계기가 됐다.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인천발 나하행 항공편이 편도 9만 원대. 일본 국내선인 나하발 미야코행 항공편이 8만 원대. 인천 → 나하 → 미야코 모두 합쳐서 편도 약 18만 원.


5박 6일의 미야코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나서는 미야코에서 나하 공항으로(7만 원대) 나온 다음 나하에서 후쿠오카로(7만 원대) 들어갈 거라 거의 모든 표는 왕복이 아니라 편도로 끊어야 하는 귀찮음이 있긴 했다. 미야코 → 나하 → 후쿠오카 모두 합쳐서 편도 약 15만 원.


나하 공항 국내선 청사에서 비행시간을 기다리다가


인천에서 출발해 나하 공항에 내린 다음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서 일단 일본에 '입국'해야 한다. 그다음 국제선 구역에서 국내선 구역으로 이동해 미야코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예전에는 국제선 청사와 국내선 청사가 별도의 건물이어서 건물 밖으로 나와서 국내선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이젠 건물이 통합돼서 실내로 이동할 수 있다). 나하 공항의 입국 심사는 그리 오래 걸리는 편이 아니긴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갈아타는 시간을 2시간 정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비행시간을 이리저리 맞춰보니 인천(10:35) → 나하(12:50) 그리고 나하(15:15) → 미야코(16:05) 정도가 적절해 보였다. 약 두 시간 반 정도 기다리는 스케줄.


드디어 미야코섬으로 가는 비행기가 출발했다.


일단 미야코섬까지 가는 걸 모두 예약했고, 미야코에서 후쿠오카로 나오는 것까지 예매가 끝났는데... 도대체 언제 돌아올지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돌아오는 일정을 미리 정해두고 싶지 않았다. 표를 예매해두면 그 일정에 딱 맞춰서 움직이려고 노력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그래서 돌아오는 표는 예매를 하지 않았다.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든 돌아다니겠다는 강한 의지. 게다가 이번엔 국제 운전면허증까지 준비했으니 말 그대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출발 당일. 인천 공항에서 비행시간을 기다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 일정이 꽤 긴 편인데, 입국 심사할 때 돌아가는 표가 없다고 입국을 안 시켜주면 어떡하지?' 그래서 부랴부랴 후쿠오카 → 인천 표를 하나 예매했다. 약 5주 뒤의 항공편이었는데 비슷한 일정 중에서 무조건 가장 싼 표로. 왜냐하면... 아무래도 그냥 그대로 버려질 가능성이 높은 표였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어이없게도 여행의 마지막은 동경이었으니까).


미야코행 비행기 안에서 한국 드라마(꽃보다 남자?)를 보고 있는 일본인


그래도 결국 그 표는 유용하게 쓰였다. 실제로 입국 심사할 때 여행 일정이 너무 길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얼마나 있다 갈 거예요?"

"5주요"

"5일이요?"

"아뇨, 5주요"

"에? 뭐하러 그렇게 오래 있어요?"

"긴 휴가예요. 여기저기 여행할 거예요."

"돌아가는 표 있어요? 보여줘요"


이런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 결국 입국 허가를 받기 위한 용도로 '돌아가는 표'가 필요했던 거다.


"절대로 일하면 안돼요!" 라는 입국심사원(?)의 얘기를 들으며 드디어 입국 완료. 국내선 청사로 이동한 다음 약 두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드디어 미야코행 비행기 탑승~!! 비행시간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저것이 미야코 블루인가? 라고 생각했던 미야코섬의 첫인상. 하지만 미야코 블루는 더 대단한 것이었다.


오키나와 전통 가옥의 지붕과 비슷한 느낌의 미야코 공항의 지붕


나하 공항 그러니까 본섬의 날씨는 꽤나 쾌청했는데 미야코섬의 날씨는 잔뜩 흐려있는 상태. 10월 중순인데도 후끈~ 하고 더운 느낌이 들뿐만 아니라 습도도 꽤나 높아서 에어컨이 없으면 꽤 불쾌지수가 높았다.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 밖으로 나오니 미리 예약했던 렌터카 업체의 픽업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짧은 일본어로 인사를 하고 렌터카 업체에 도착. 나에게 배정된(?) 차량은 파란색 혼다 피트(Honda Fit). 차량 외관 상태를 함께 살펴볼 때 여기저기 자잘한 스크래치들이 있어서 체크를 부탁했더니 "아, 그 정도의 스크래치는 상관없어요"라고 쿨하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왠지 일본인스럽지 않은 쿨함이었는데, 막상 운전을 해보니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자잘한 스크래치는 피할 수가 없는 도로 환경이더라.


시모지, 이라부, 구리마, 이케마 그리고 미야코섬은 섬은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직원에게 차를 인계받은 다음, 가방에서 준비한 것들을 꺼냈다. 그건 바로 핸드폰 거치대와 USB 케이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익숙한 세팅을 하면 운전이 훨씬 편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블루투스를 이용해 오디오와 연결하고 구글맵을 켰다.


내장 내비게이션도 있고 영어로도 조작할 수 있지만 뭐랄까... 내 소유의 차가 없기 때문일까? 내장 내비게이션은 뭔가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구글맵에는 예약한 숙소라던가 가보고 싶은 장소를 미리 저장해둘 수 있으니 훨씬 편하다.


미야코섬 곳곳을 함께 돌아다닌 파란 혼다 피트


일본 내비게이션은 MAP CODE라는 것을 써서 목적지를 입력하는 방식을 쓰는데(전화번호로도 할 수 있으나 정확도가 아주 떨어진다. 완전 엉뚱한 곳으로 갔던 적이 있다) 매번 맵코드를 검색하는 것이 꽤나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일본 여행 관련 서적을 보면 식당이나 관광 명소를 소개할 때 맵코드를 같이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구글맵을 이용해 Map Code를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도 있다.)


미야코섬에서의 5박 중 2박을 머물렀던 호텔 히비스커스



첫날 예약해둔 숙소는 호텔 히비스커스(ホテル ハイビスカス). 이름은 '호텔'이지만 사실 그냥 게스트하우스다. 미야코섬에 있는 숙소가 아니라 바로 아래의 작은 섬인 구리마섬(来間島)에 있는 숙소라 구리마대교(来間大橋)를 건너가야 한다. 미야코섬의 번화가에서 벗어나 구리마대교를 건널 때 '아! 드디어 미야코지마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다시 숙소 얘기로 돌아가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숙소이고 친절하고 재밌는 내외분이 운영하고 있다. 내가 묵었던 방은 가장 저렴한 방인 혼성 도미토리. 전반적으로 꽤나 낡은 곳이지만 그 느낌이 '지저분하다'가 아니라 '정겹다'는 쪽이라서 기분이 좋은 곳이다.


그리고 마스터에게 미리 얘기하면 저녁을 준비해주시기도 한다. 가격은 700엔 정도인데 말 그대로 일본식 집밥. 도착한 첫날은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서 부탁을 할 수 없었고, 다음 날 저녁은 미리 부탁드렸다. 아마 다음 포스팅에서 보여드릴 수 있을 듯.


여러 가지 면에서 참 마음에 드는 숙소였는데 딱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에어컨이 유료라는 것. 여행하면서 그렇게 돈을 아끼는 편이 아닌데도 의외로 동전을 잘 안 넣게 더라는 말씀. 앞에서 얘기했듯이 여행했던 시기가 10월인데도 꽤나 덥고 습도가 매우 높아서 선풍기만으로는 견디기가 좀 어렵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박 후에는 미야코섬의 번화가 쪽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구리마섬에서 묵은 2일 동안 매일 방문했던 작은 식당


미야코섬에서 구리마대교를 건너 구리마섬으로 넘어오면 완/전/히 시골이다. 인적은 커녕 집도 별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곳. 그러다 보니 걱정이 생겼다. 술은 어디서 먹지? 밥은? 술을 마시려면 차를 가지고 나갈 수가 없는데... 그래서 숙소 쥔장에게 물어봤더니 바로 가까운 곳에 식당이 하나 있다고 한다. 이름은 하나후(花風).


비행기를 두 번 타고, 렌터카를 빌려서,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 시간 ㅠㅜ


오키나와에 도착했으니 첫 술은 오리온 생맥주!


숙소에 짐을 간단하게 풀어두고,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샤워를 한 번 한 다음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숙소에서 100 미터도 안 되는 거리. 정말 작은 식당. 간단한 오키나와 음식들을 파는 곳인데 아주머니 혼자서 운영하시는 듯. 근처에 술을 마실만한 식당이 오로지 이곳뿐이니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할 것 같았다.


일단 자리에 앉자마자 나마비루(なまビール ) 한 잔을 주문. 일본에서는 식당에서 먹을 것(たべもの)을 주문하기 전에 일단 마실 것(のみもの)을 먼저 주문하는 보이지 않는 룰 같은 것이 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서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나는 참 좋아라하는 고야찬푸르(좌) / 진짜 가정식 비쥬얼인 부타쇼가야키(우)


맥주를 마시면서 벽에 손글씨로 적힌 메뉴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주문한 고야찬푸르. 고야는 우리말로 여주라고 하는 두툼한 오이처럼 생긴 야채고 찬푸르는 오키나와 말로 섞는다는 뜻이라는데 볶음요리를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번역하면 여주 볶음이 되네.


고야의 씁쓸한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인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좋아하는 음식이고, 오키나와 하면 떠오르는 음식 중의 하나.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메뉴를 하나 추천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부타쇼가야키(豚生姜焼き)를 추천해주신다. 우리말로 하면 돼지고기 생강구이 정도가 될 텐데, 생강에 절인(?) 돼지고기를 야채와 함께 간장 양념을 해서 볶는 요리.


사진을 보면 말 그래도 딱 '가정식'의 느낌. 특히 부타쇼가야키는 엄청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오리온 나마비루 다음으로는 역시 아와모리(좌) / 안주하라면서 서비스로 내주신 단무지(우)


맥주를 한 잔 마신 다음에는 아와모리(泡盛) 한 잔. 아와모리는 오키나와의 특산 술인데 안남미(길쭉한 남방계열의 쌀)로 만드는 증류식 소주다. 일본에서 소주를 주문할 때는 일반적으로 미즈와리(みずゎり)나 로꾸(ロック)로 주문하는데, 미즈와리는 소주에 물을 섞어서 마시는 걸 말하고 로꾸는 물을 섞지 않고 얼음을 넣어 마시는(on the rock) 걸 말한다. 물론 스트레이트로도 주문할 수 있지만,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진짜요?'하고 깜짝 놀란다.


아와모리를 두 잔 마시고 있자니 안주하라면서 서비스로 단무지를 내주셨다. 엄청 맛있길래 직접 만드신 거냐고 물어봤더니 아닌데? 그냥 사서 쓰는 건데? 하시면서 포장지를 직접 보여주셨다. 맛있어? 하나 줄까? 하셨지만 여행 내내 가지고 다니기엔 짐이 될 것 같아서 사양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맥주와 아와모리를 마시면서 수다 타임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나서 숙소로 돌아오니 체크인할 때는 볼 수 없었던 손님이 두 명 그리고 쥔장 내외분을 합해서 넷이서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하고 계시길래 슬쩍 옆에 앉았다. 손님 중 한 명은 오키나와 본섬에서 왔고 다른 한 명은 오사카에서 산다고.


일본에서 얘기하다 보면 항상 듣는 말을 당연히 여기서도 들었다.


"일본어 할 줄 아네요? 어떻게 배운 거예요?"


그러면 대답은 항상 똑같다.


"드라마 보고, 영화 보고. 그리고 이렇게 여행 다니면서 술 마시면서 얘기하고요."


그랬더니


"아항! 노무니케이션!!"


이러는 게 아닌가. 듣자마자 느낌이 딱 오는 재밌는 조어. 일본어로 마시다라는 뜻의 노무(のむ)라는 단어에 커뮤니케이션(comunication)을 합친 노무니케이션. 술 마시면서 얘기한다는 뜻! 이후 같은 질문을 들으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냥 노무니케이션! 이라고 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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