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일 수요일 epilogue
나이에 비해서 독립이 늦은 편이다. 마흔다섯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혼자 살 게 되었다. 회사 생활을 청산하고 제2의 인생을 찾는답시고 지방에 내려와 있자니 만날 사람도 없고, 연봉 잘 주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니 수입도 없어졌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뒤늦게 집에서 혼자 밥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매일 뭘 만들어 먹었는지 기록이나 해볼까? 하면서 직접 차린 상을 사진 찍어두었다. 누군가 '혼자 살기 안 힘들어? 잘 챙겨 먹고 있는 거야?'라고 물어보면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그래도 이 정도는 먹고 있으니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라고 대답하기 위한 용도이기도 했다.
뭔가를 만들어 먹고, 사진을 찍어둔 것들을 모아뒀다가 한번 쭉 돌아보니 단순하게 무엇을 먹었는지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시금치는 왜 산 건지, 저 김치는 무슨 맛이었는지, 이날 점심엔 밥이 아니라 국수가 먹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냉장고에 분명히 멸치볶음이 있었을 텐데 왜 상엔 꺼내지 않았는지.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있었다. 차려둔 상의 사진만으로도 일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한 곳에 아카이빙하면서 간단한 텍스트도 덧붙여 보기로 했다. 아마도 비정기적인 포스팅이 되겠지만 일기처럼 가볍게 자주 올려보려고 한다.
아, 첨부한 사진은 며칠 전에 점심에 만들어 먹었던 냉국수다.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어 마트에서 파는 700원짜리 냉면 육수를 사다가 만들었다. 소면을 삶고, 김치를 씻어서 종종 썰었다. 생야채의 아삭한 느낌을 느껴보려고 시금치를 생으로 넣었는데, 식감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데쳐서 넣었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