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엄마의 출산과 육아] 1. 네가 살린 나

우울증이 나를 잠식하고, 그 끝없이 깊은 호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by 나무늘보

나는 우울증을 오래 앓고 있는 상태로 아기를 가졌다. 불안증과 강박증까지 함께 앓았기 때문에 약물치료를 하다가 임의로 약을 중단 후 크게 후폭풍을 앓는 상태로 임신을 했다. 와중에 임신 중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자살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가진 참 뱉기 쉬운 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내 몸에 생명이 하나든, 두 개든, 인간은 끝없이 괴로운 상상으로부터 도망가는 탈출구를 쉽게도 떠올려냈다. 역겨울 만큼 쉽고 빠른 답을 냈다.


나는 그전부터 항상 깊고 어두운 호수에 빠져 고요히 아래로 아래로, 저 깊은 곳으로 수직낙하 하는 기분이었다. 고요하고 빠르게, 끝나지 않는 낙하를 십여 년. 닳고 닳은 마음과 숨 막히는 진공 속에서 벗어날 의지조차 없었던 그 날들 속에서 과분하게도,


작은 공기방울만 한 생명이 찾아왔다.


껍데기뿐인 나의 육신에 새로이 찾아온 반짝이는 생명. 컴컴한 물로 가득 찬 내 폐 속에 찾아온 손톱만 한 작은 공기방울.


기쁨이라는 감정을 바라보고 선 내 등뒤로 죄책감이 스멀스멀 나를 적셨다. 나에게 자격이 있는 걸까.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인가.


뱃속의 아이에게 말을 많이 걸어주는 것이 좋다고 해서 나름대로 하루에 두어 번 정도는 말을 걸어 보았다. 하지만 나 자신을 엄마라고 지칭하려니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나 따위가 엄마가 되어도 되는 걸까. 이 아이는 무슨 잘못이 있어 나 같은 엄마를 갖나.


기쁜 죄인이 된 양가감정에 짓눌려 매일 옷소매를

눈물로 적셨다. 떨리는 입술로 ‘엄마’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입에 올린 건 임신 후 수개월이나 지나서였다. 수백만 번 도전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그 말,


“아가야.. 엄마야..”라는

그 짧은 두 마디를 꺼내기까지 흘린 눈물로 바다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처음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날, 얼마나 많이 울고 울었는지 잊히지가 않는다.

눈물이라면 지긋지긋하게 흘려왔지만서도, 살면서 이렇게 많이 운 날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울었다. 목놓아 울었다. 나는 나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런 내가 너에게 사랑을 가득 줄 수 있을까. 내 안에 그런 힘이 있을까. 난 너무나도 부족하고 못난 사람인데… 너는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한 사람인데…


그 말은, 엄마라는 그 말은,

내가 나를 엄마라고 지칭하면 스스로를 엄마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꺼려지고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았던 수개월의 시간 속에서, 내 몸속에 움튼 작은 씨앗이 내게 준 변화와 용기였다.


엄지손가락만큼 작지만 나보다 더 큰 생명력을 지닌 반짝이는 씨앗은 나에게도 자신의 생명력을 나눠주었다. 온기를 전해주고, 반짝임을 더해주었다.


아기가 나를 구원해 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변화했다. 이젠 반드시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를 키워냈다. 나는 반드시 좋은 엄마가 되어, 너의 이 온화한 입김에 보답하리라. 나는 여전히 어두움에 두 발 뿌리내려 살지언정 너를 위한 나무가 되리라. 너는 내 몸을 딛고 일어서 아름다운 꽃이 되어라. 나는 너를 반드시 사랑으로 꽃 피울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

진짜 엄마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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