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노고를 인정해 주는 의식이랄까
2024년 5월 16일 저장글
출산 후 본격적인 육아를 하면서부터 아무래도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는 좀처럼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죽을 만큼 괴롭거나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모든 육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러나 가끔 내 자신이 안타깝게 여겨질 때도 왕왕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나를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인데 나를 사랑하는 감정이 점점 소홀해지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면 하염없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퇴근한 신랑에게 "주부의 노고는 남편 아니면 인정해 줄 사람이 없으니 적극적으로 나에게 칭찬을 해 달라"라고 얘기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해뜨기 전부터 달뜬 후까지 나의 모든 하루 일과들을 칭찬하고 인정해 주는 신랑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잠시뿐이다. 뒤돌아서 화장실에 들어와 거울을 보면 초췌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이 덜컥 서럽다.
미용실은 언제 마지막으로 다녀왔는지 기억도 나질 않고, 손은 여기저기 굳은살과 잔상처들이 눈에 띈다. 손가락 마디마디는 굵어지고, 손톱엔 큐티클이 메말라 붙어있다. 피부는 둘째치고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표정에서부터 까맣다. 눈 밑은 퀭하니 시꺼먼 죽죽 하고, 입꼬리는 울상이다. 눈에는 생기가 없고 피부는 촉촉한 건지 척박한 건지 모르겠는 기름기가 얇게 깔려있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행위는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이지만 지금으로서 나라는 사람은 온 데 간 데 없다. 그저 엄마, 주부, 아내 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랑에게 나의 노고를 인정해 달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는데 정작 나 자신은 나를 인정하고 있나? 하는 생각.
그러고 보니 나는 나를 인정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희생을 가장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엄마니까, 아내니까, 주부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넘겨왔던 발걸음을 떼어보면 짓눌려 밟혀있는 내가 있었다.
나는 나를 인정하지 않고 위해주지 않는데 그 비움을 타인에게서 채우려고 하니 영원한 갈증 속에 사는 기분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나는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생각부터 고치기로 했다.
하나씩 하나씩 생각과 습관을 바꿔가기로 했다.
그 첫 번째,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세수를 꼭 하자. 세수라도 하자. 그래도 이거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발버둥 치는 모양새 치고는 허접하기 짝이 없지만,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