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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ep 23. 2020

가장 따뜻한 블루, 소로야 미술관

마드리에서 만난 스페인 인상주의 화가

마드리드의 숨겨진 보물 같은 곳소로야 미술관. Joaquín Sorolla y Bastida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 가장 특별한 곳으로 기억될 때가 있다.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마드리드에서 찾아가게 된 소로야 미술관이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가게 된 소로야 미술관에서 나는 오래도록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라고 한다면 벨라스케스, 고야,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미술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유명한 화가들이 참 많이 떠오르지만 스페인에서 내가 만난 예술가 중,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던 호아킨 소로야. 


이 글을 읽으신다면, 스페인의 지중해를 찬란하게 그려낸 호아킨 소로야 이 바스티다(Joaquín Sorolla y Bastida, 1863-1923)를 꼭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Self_Portrait, 1904,66 x 105.5 cm


소로야 가족의 행복했던 추억이 묻어나는 곳 호아킨 소로야 미술관     

소로야 미술관 외관 
소로야가 작업실로 사용하던 미술관 내부.(room3) 메인 전시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출처 stripedia.info)


1932년 개관한 소로야 미술관은 소로야가 살았던 저택을 그대로 미술관으로 만들었는데, 그와 가족들이 쓰던 가구부터 마지막으로 작업하던 그림까지 그대로 남아있어 더욱 의미가 있는 곳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그가 꾸며놓은 사랑스러운 안달루시아식 정원을 지나 미술관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구석구석 소로야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나는 이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과거 스페인의 중산층의 가정에 방문한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람들이 오가는 중간에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그의 화구들을 보면 마치 소로야가 금방이라도 들어와 그림을 그릴 것만 같다.

 마침 필자가 방문하던 날은 콜럼버스데이였는데, 콜럼버스데이에는 모든 미술관이 무료입장인 데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방문했다.           


스페인 인상주의호아킨 소로야     

일반적으로 미술사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호아킨 소로야는 스페인의 근대회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가졌던 예술가이다. 

1863년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에서 태어난 소로야는 18세에 마드리드로 이주해 프라도 미술관에서 많은 거장들의 그림을 모작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그 후, 로마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해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해나가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특히, 1885년 파리에서 자신의 첫 개인전을 열어 호평을 받았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그의 작품 <슬픈 유전 Sad Inheritance> (1899)이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면서 그의 화가로서의 명성은 점점 높아져갔다.


슬픈 유전, sad-inheritance-1899,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대상작


* 소로야의 초기 작품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슬프고 어두운 분위기의 그림이 주로 그려졌다. 특히, 이 작품은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들을 그린 작품으로 소로야의 연민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어두운 분위기의 사실주의적인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지만 후기로 갈수록 빛의 효과에 주목하면서 자신의 고향인 발렌시아 바닷가를 주제 삼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프랑스 여행 후,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에 크게 영감을 받은 소로야는 프랑스의 빛과는 또 다른 발렌시아 지방만의 뜨겁고 찬란한 태양을 자신만의 색감으로 그려내는데, 독창적이면서도 행복감이 묻어나는 작품들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스페인의 인상주의라는 다소 생소한 조합은 소로야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듯하다.


집에 꼭 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의 작품들은 소로야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 소로야 미술관에 가면 마음껏 즐길 수가 있다. 

 내부에는 따뜻한 색감의 벽에 소로야의 그림들이 걸려있는데, 초기의 어두운 그림이 아닌 그에게 직접적인 대중적 인기를 안겨주었던 지중해의 빛이 강렬하게 담긴 작품들이 대부분 전시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소로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보는 순간, 그곳에 가고 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지중해의 바다그림 때문인 것이다.      


따뜻한 블루소로야의 바다     


소로야가 만들어낸 스페인의 인상주의는 우리에게 익숙한 프랑스의 인상주의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소로야의 작품은 강렬한 스페인의 태양을 너무도 부드럽게 표현했는데,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붓터치와 색감이 마음을 굉장히 평온하게 해 준다. 

소로야만큼 바다의 차가운 파랑을 따뜻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화가는 없을 것이다. 


특히, 그의 그림 속에는 보는 순간, 살포시 미소 짓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등장한다. 


washing-the-horse-1909, 소로야의 바다는 따뜻한 블루다.

다정하고 가정적인 아버지였던 소로야는 아내 클리틸테와 세 자녀를 주인 공삼아 많은 작품을 그렸다. 소로야의 가족은 그림 속에서  지중해의 빛을 찬란히 받으며 바다를 거닐고, 햇빛을 즐기며, 함께 하는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2세 때, 부모를 잃고 이모와 함께 자랐던 소로야는 부모와 함께 하지 못했던 슬픔을 자녀들에게는 절대로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행복으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을 보면 르누아르가 떠오르기도 하고, 아이들을 끊임없이 그렸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중섭이 떠오르기도 했다. 

“회화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들라크루아의 일기 속 문장처럼 소로야의 그림은 일상 속에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삶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눈을 감고 스페인의 바다를 상상해보자                  

    

balandrito


boys-on-the-beach-1908

 굳이 어떤 내용의 그림인지 누군가의 설명이 없이도 힐링을 주는 소로야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스페인의 햇살 가득한 어떤 날을 상상해보길 바란다. 어릴 적 추억을 다시 떠올리며 그림 속 시간으로 들어가다 보면 한층 더 깊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아이들의 편안한 자세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의 분위기 전체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저 아이가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면 어렸을 적 바닷가에서 놀던 기억이 떠올라 더욱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strolling along the seashore, 1909


예쁘게 차려있는 여인들은 어디론가 걸어고 있다. 아마도 오후에는 선상파티에 가려는 것일까? 앞쪽에 가는 여자의 시선이 있는 곳은 어디일까? 그 앞에는 누가 서 있지? 나라면 누가 서있길 바랄까?  뒤에 있는 여인은 바람에 날리는 모자를 붙잡고 따라가면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뭐라고 말하는 있는 것일까?      

after-the-bath-valencia-1916, 소로야의 그림은 마치 스냅숏을 찍은 듯한 생동감이 있다.


햇빛과 빛나는 바다, 사랑스러운 천진함, 함께 어울려 나누는 소소한 행복, 즐거움이 묻어나는 여유로운 일상. 

소로야만의 낭만적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여행 중 찍었던 마요르카의 바다. 소로야의 작품이 떠올랐다. 
boys on the beach

소로야가 그린 그림들의 구도 또한 매우 신선함을 느낀다. 

마치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뛰어든 아이의 뒷모습에서 청량감이 느껴진다. 


Mother,  1990

딸이 태어나고 소로야가 그린 딸과 아내의 모습.

마침 딸을 출산한 친구에게 프린팅 작품을 사서 선물했다.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Clotilde in a grey dress, 1900 (소로야의 아내)
mending the sail, 1896

이 섬세한 표현과 빛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사실주의자이자 인상주의 자임을 알 수가 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전시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가 사 용화던 화구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꽤 오랜 시간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낸 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콜럼버스 덕분에 아낀 3유로로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운을 즐겼다.  긴 스페인의 마지막을 소로야 미술관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서 완벽했다.

새로운 화가를 알게 됨은 너무나도 큰 기쁨이며, 아름다운 작품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리고 이런 화가와 작품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수 있음은 참으로 즐겁다.


소로야가 초기 작품에서 보여줬던 어두운 사회에 대한 동정 어린 시선, 발렌시아에서 그려냈던 행복하고 따스한 시선에서 소로야는 선천적으로 선하고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번 들러보라는 친구의 말 대신,
마드리드에 가면 시간을 내서 꼭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 소로야의 행복한 에너지가 당신에게 전달될 것이다.    


내가 얻은 행복한 에너지가

당신에게도 전해지기를.                     


*이 글은 문화예술잡지 <월간 태백>에 기고했던 글을 편집하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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