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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쇼 Sep 02. 2019

가자 ! 마드리드로 (01) ,

잘못된 우선순위 바로잡기


삶을 송두리째 다 잃지 않기 위해서 얼마간의 삶을 바치는 것은 당연하다 .

- 알베르 까뮈



2년마다 이사라니, 참 곤혹스럽다. 이렇게나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전셋집을 알아보러 서울 강북 어딘가를 정처 없이 돌아다녀야 한다니. 제법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게 4년 전이다. 그때 발목과 무릎을 크게 다쳤다. (그뿐이냐 턱도 빠져 돌아가고 손목도 나갔다.) 4년이 지났음에도 하루 2,3천 걸음을 채 못 걷고 절룩이고 만다. 치료를 위해 명의를 찾아보았으나 “걷지 말라”는 극악한 처방만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집이라는 건 발품을 팔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법! 인터넷으로 좋은 매물을 찾았더라도 역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계약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성치 못한 아픈 발을 이끌고 이 곳 저곳을 헤매다 드디어 안락한, 집 다운 집을 찾아냈다.



설레는 맘으로 계약을 마치고 현재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엄마의 문자를 한 통 받았다. 오늘이 음력으로 내 생일이란다. 양력 생일은 조금 더 남았는데, 올 해로 마흔이니까 한 번 짚어주신다며... (엄마 , 굳이 왜 때문이죠?!) 동공 지진과 함께 ‘띠로리~’하는 BGM이 머릿속을 휩쓸고 “마흔” 이란 단어에 시선이 콕 박힌다. ‘그래도 아직 만으로 서른여덟이야’ 정신승리를 챙겨보며 은평구의 끝자락, 버스 종점에 내려 서식지로 걸음을 옮긴다.



몰랐던 것도 아니고 잊었던 것도 아니고 피하고 싶었을 뿐인 <마흔>.

사실 작년까진 누가 몇 살이냐 물어보면 으레 서른아홉이라 꽉 채워 말하기보단 “마흔이요~” 하고 대답했다. 밴드 ‘피터팬컴플렉스’의 프런트맨 전지한 형님과 같이 일할 때 사사받은 수법(?)이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마흔’이란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생각보다 동안이시네요!”. “훠-얼씬 젊어 보여요”라는 립서비스를 아낌없이 날려주었다. 그래서 차라리 좋았다. 허나 얄궂게도 진짜 마흔이 되고 보니 입에 올리기도 싫어 대답을 회피하거나 “80년생이요” 라며 교란작전을 펼쳐보기도 한다. 어쨌든 그래도 해외에 나가면 서른아홉이니까, 정신승리로 노화를 지연시켜보자고 작정한 찰나, 응? 서른아홉?? 그래, 해외에서는 생일이 지나도 서른아홉이지! “근사하구나, 당장 나가자!!” (여러분 의식의 흐름이 이렇게나 무서운 겁니다.) 라며 냉수 한 사발을 들이켜고 노트북 앞에 앉아 최저가 항공 검색에 돌입했다.



이토록 즉흥적인 여행의 결정엔 사실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나는 최근 1년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가족 행사 등을 제외하면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몇 번의 시술과 수술 끝에  암 발발로 2017년 10월, 서른여덟에 국민건강보험공단 암 환자로 찬란히 등록되었다. 다음은 자연스럽게 강제 은퇴 수순이었다. 그동안 내게 있어 ‘평범한 삶’이란 음악 콘텐츠 기획자, 음반 기획자, 페스티벌 기획자, 아티스트 프로모터로서의 그것이었다. 뮤직 비즈니스 산업에 20여 년을 종사하며 회사의 노동자로 열과 성을 다했고, 몇 해 전엔 작지만 알찬 독립 음반사를 개업해 밴드, 뮤지션, 라디오 청취자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이제 나 역시 ‘경력단절 여성’ 일뿐. 계약된 아티스트들을 졸업시키고 폐업신고까지 마친 이후로는 아침에 일어나 콩국이나 마시고, 점심엔 직접 볶은 커피를 내려 마시는 걸로 위안을 얻었다. 애주가였지만 술 한 모금에 두통을 내어 주는 건 혐오감 들만큼 싫었다. 잠들기 전까진 넷플릭스를 보며 숨만 쉬고 지내는 게 평범한 일상이 되자 더 못 걷게 되었고, 더 마음이 아파왔고, 더 무기력해졌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깨닫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명히 숨 쉬고 있으니 살아있는 건데도 숨이 안 쉬어졌다.

극심한 공포가 찾아왔다. 공황장애였다.


건강을 지키려 은둔했지만 잘못된 우선순위였던 것이다.

이사 전날 , 나의 저녁놀 핫스팟 . 30년을 살았던 은평구에 이별을 고하며 .


BGM ㅣ Kings of Leon - Use Somebody

https://youtu.be/gnhXHvRoU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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