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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쇼 Sep 07. 2019

왜 , 마드리드였나 . (01)

그게 한국에서는 안 되는 거야?

1년 중 한 번은 당신이 단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에 가 보아라.

- 달라이 라마



융숭한 국적기의 최저가 서비스를 예약한 덕분에 인천공항 2 터미널 입성! 처음인데, 큼직큼직하고 동선도 쾌적하다. 이 곳의 공사를 내가 예전에 모시던(?) 음악 레이블(음반사) 대표님이 한 땀 한 땀 진행하셨다. 손대표님은 LP의 시대부터 수입 음반과 라이선스 음반을 국내에 소개하던 굴지의 회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신 후 독립, 두 개의 P뮤직을 운영하셨다. 현재 음반사 일은 모두 정리하고 육체노동자의 길을 걷고 계신다. 음반일 하실 때는 업무 특성상 불규칙하고 위태했던 생활습관이 이젠 규칙적으로 변해 적성에 맞아하시는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하니 한동안 손대표님의 SNS에 업데이트되며 완공되어가던 2 터미널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D’Sound(디사운드, 노르웨이 밴드)의 음악도 함께. 어쩌면 나도, 내 음반사를 정리하고 여행자라는 육체노동의 길을 걷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곁들이며.


모바일 체크인을 미리 해 둬서 백드롭(탑승권 발권 없이 캐리어만 수화물로 붙이는)만 하면 됐다. 그런데 맙소사! 통신오류 기계고장으로 자동화기기에 들어갔던 캐리어가 다시 튀어나왔다. 순간 대기하던 승객들과 도움 주던 직원들까지 먹통이 된 시스템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직원 중 한 사람이 나에게 아날로그가 역시 좋다며 뭐든 기계만 믿는 게 이럴 때 문제라고 한탄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시간이 없어 대면 창구로 갈 사람들은 서둘러 뛰고, 나는 다행히 여유롭게 시간을 잡고 공항에 도착한지라 백드롭 자동화기기의 재부팅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2번의 재시도 끝에 드디어 백드롭 완료, 보안검사를 마치고 면세구역으로 들어왔다. 


늘 그렇듯 아빠의 디스플러스를 한 보루 구매하고 다른 건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사람마다 예민한 감각이 있을 텐데, 내 경우는 냄새에 민감한지라 화장품과 향수가 몰린 면세구역을 억지로 들어가면 머리도 아프고 심할 땐 구역질도 난다. (그래서인지 일관성 있게 화장품도 사용하지 못한다. 물로 세수하고 끝.) 그저 예민한 후각을 가동 해 커피 향 가득한 매장이 나올 때까지 본능적으로 킁킁거릴 뿐이다. 두유 카페라테 한 잔을 겨우 겟하고 탑승 게이트 앞으로 빠르게 가서 자리 잡고 쉬는데, 아이돌 멤버들이 한 무더기 지나간다. 간밤에 MBC뮤직 채널에서 분명히 본 친구들인데 얼굴은 알겠는데 팀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마흔이구나....., 몸소 느끼는 노화의 징후. 그냥 하던 데로 빨리 탑승구 가까운 곳에 드러눕기로 한다. 2 터미널은 특히 좌석이 많았고, 220V 플러그와 USB 플러그도 넉넉해 벌써 전신을 편히 쭉쭉 펴고 누워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2 터미널에서 바라 본 국적기들



11시 10분, 마드리드행 국적기에 오른다. 걱정할 부모님과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간단히 남기고 비행모드로 전환, 만성 소화불량에 멀미가 심한지라 사전에 신청한 특별 기내식에 대해 승무원들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도 비빔밥이 먹고 싶었어!!! 꼬수운 참기름 냄새 ㅠㅜ) 비행 모니터를 살펴본다. 이사 준비 등등하느라 개봉 기간을 놓쳐버린 <롱샷>이 있었다. 아아, 13시간이 지루하진 않겠구나!! 


기자로써 정치와 결탁한 거대 미디어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리를 박차고 백수가 된 ‘프레드’. 그의 베이비시터로 꿈 많았던 옆 집 누나이자 현 국무장관이 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정치인 ‘샬롯’. 두 사람의 극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재회를 계기로 차기 대선을 준비하던 샬롯은 프레드에게 연설 비서관 직을 제안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프레드 역에는 세스 로건이, 샬롯 역은 샤를리즈 테론이 맡았다. 구성상 로맨틱 코미디인데 내겐 그냥 코미디 영화라 할 만큼 마시던 물을 여러 번 뿜을 뻔 한, 맞춤형 저렴 개그에 고마운 마음으로 <롱샷>을 보았다. 다음엔 무슨 영화를 볼지 골라본다.

영화 [ 롱 샷 ] 스틸 컷


최신작 리스트 중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페인 하면 정열의 어쩌고 저쩌고 많지만 결국은 라 만차의 돈키호테 아닌가! 마드리드와 주변 도시 곳곳에 이달고 돈키호테와 작가 세르반테스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나는 마드리드에 도착하면 돈키호테가 먹었을 법한 음식도 꼭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했었으니 어쩐지 운명 같았다. 주연은 무려 카일로 렌과 페터슨의 ‘아담 드라이버’다. 영화 첫머리에 25년인가만에 완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드리드 숙소에 도착하면 무슨 사연인지 찾아봐야지 하며 다시 영화에 집중해 본다. 극 중 ‘토비’ 역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는 정말 특별한 배우다. 분명 선이 굵은, 개성 있는 마스크의 소유자임에도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넘나들며 악역, 선역, 괴짜 역 모든 캐릭터를 소화하며 주연으로 활약하고 있다. ‘돈키호테’는 조나단 프라이스가 맡았다. 종영된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하이 스패로우’ 역으로 왕비 ‘서세이’와 대립한 종교인 역을 맡았고, 곧 개봉할 영화 <두 교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역을 맡은 배우다. 


어쨌든,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현재와 17세기를 넘나드는 괴작임과 동시에 철저히 돈키호테의 정서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돈키호테를 탄생시킨 세르반테스의 일생이 광적이었고, 그가 만들어낸 돈키호테의 모험적 삶도 한 가지에 몰두한 광인의 것이었다.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속 ‘돈키호테’와 ‘산초(=토비)’의 이야기 역시 초초초광적이다. 아직 비행기 안이라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분명 이 영화의 제작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으니 십수 년이 걸린 거겠지. 감독도 집착을 보였을게 분명한, 들여다보고 있는 나 조차, 모두 광인의 날개를 활짝 피우고 있었다.

영화 [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 스틸 컷


나 역시 광인처럼 마드리드행을 결정 해 이삿짐도 채 다 정리하지 못하고 헐레벌떡 비행기에 탑승했다. 모종의 연관성을 (혼자)느끼며 이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옆 사람들 숙면 중인 이 타임에 간식도 다 포기하고 아이패드를 꺼내 “왜 마드리드였냐”라고 다시 곱씹어보기로 한다. 어떻게든 마흔을 지연시켜보겠다는 강려-크한 의식의 흐름을 따라 내린 즉흥적 결정이 반이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이길 바라는 마음이 반이었다. 깊은 마음의 소리는 몸과 마음이 더 아파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버리기 전에 용감한 행동(=짓)을 하자고 안달이었다. 


그래, ‘모험’을 찾아 ‘방황’하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나에 대한 편견이라곤 언어가 안 통하는 사람이라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을 간직한 채, 왕 입 쫙쫙 벌려가며 크게 웃고 싶었다. 그게 한국에서는 안되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모름지기 인간에겐 태초부터 개인차라는 게 존재하므로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아무런 연고 없는 도시나 작은 마을에 얼마간 정착하며 국내를 만끽하는 것도 참 좋은 정리여행 방법 중 하나다. 다만 나는 인생의 2막을 앞두고 익숙한 모든 환경에서 벗어나고(=달아나고) 싶었다.달라이 라마도 말했다. “1년 중 한 번은 당신이 단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에 가 보라.”라고.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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