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레 형아의 버스킹은 이제 그만 ,
“
여행할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다.
- 어슐러 K. 르 귄
”
이 곳에 온지도 열흘이 훌쩍 넘어가고, 한국은 추석 연휴다. 진심과 염려를 담아 가족들에게 안부와 인사를 전한다. 여전히 이 곳은 뜨겁고 건조하지만, 곧 비가 내릴 것 같다고. 그곳엔 태풍이 온다고요? 저런... 부디 모두들 아무 일 없길. 어릴 때 나이 차이가 많이 나 함께 자랐지만, 거의 우리를 돌봐준 (어부바 당번)사촌언니가 있다. 그의 일생 앞에선 나의 아픔을 내비치는 것이 가소로울 만큼 파란만장하다. 아픔의 깊이는 모두에게 다르게 적용되지만 누가 봐도 언니는.., 오늘 가족과 안부를 나누다가 그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물론 법적으로는 남이 된 애증의 형부지만, 둘도 매우 사랑하고 의지했던 때가 있었다. 그게 너무 잠깐이고 빚더미를 떠안긴 채 잠적 해 언니의 숨통을 몇 번이나 조여댔다. 우리 사촌언니는 무슨 죄냐고요! 하여튼 명복을 빕니다. 언니는 딸과 손주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테니까, 부디 걱정 마시길.
잠깐의 묵념, 반야심경을 속으로 낭독해본다. 나는 모태신앙 불자다. 지금은 법회에 꼬박꼬박 나가는 건 아니고, 석가탄신일과 우란분절 정도만 챙기며 지역 명소를 방문할 때 사찰을 관람하는 신세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까진 제법 열심히 법회에 나갔다. 교회 언니 오빠와 마찬가지로 절에도 언니 오빠가 존재한다. 함께 수련회도 가고 동아리 활동도 한다. 나는 풍물패에 들어가 호남좌도 필봉농악을 배웠다. 장구와 북 모두를 치다가 행사가 있을 때면 말장구를 맡아 가무를 뽐내던 시절도 있었다. 석가탄신일 행사가 있을 땐 여의도 광장에서 출발 해 마포대교를 건너 종로까지 장구를 메고 8시간을 뛰어다녔다. 여의도 광장이 공원으로 조성된 이후엔 동대문 야구장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동대문 야구장이 DDP로 거듭난 뒤에는 참여하지 못했으니, 최소 25년 전 기억인가 보다. 에잉.
과거를 회상하다 보니 이곳, 마드리드에도 결국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창 밖에 비 오는 소리와 함께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으슬으슬, 감기에 걸릴 것 같아 가장 두껍고 긴 윗옷을 몇 겹 껴입는다. 문을 나서기 전 ‘오늘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데, 스탭이 우산 하나와 샌드위치를 챙겨준다. 이런 고마운 사람들! 마드리드에 와서 관광도 하고 맛집도 가지만 내겐 의무와도 같은 목적이 있으니까 여행자의 모습으로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기에 며칠 전 숙소를 옮겼다.
즉흥적으로 준비한 여정이고, 서울 집 이사와 극본 마감이 필요했기에 마드리드 생활 전반에 관한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물론 ‘파 홈 베르나베우’는 현지 느낌 풍부하고 동네까지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드는 숙소였지만) 도착 후 초반 부스트가 빠지고 나니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이 생겼다. 인터넷만으론 해결할 수 없었고,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숙소가 필요했다. 외국 현지 호스텔보다 시설적, 관리적 측면에서 열악하고 가격도 좀 더 비싸지겠지만 결론은 한인 민박이었다. 대표적인 곳 세 곳에 문의를 했다. 한 곳은 아예 만실, 한 곳은 도미토리 품절, 딱 한 곳만이 나의 주머니 사정과 맞아떨어졌다. 대부분 솔 광장을 끼고 도보 10분 이내 위치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이동도 편리했다. 그렇게 한인 민박의 문을 두드렸다. 오랜만에 훈민정음을 이용한 대화를 나눈다. 나랏말싸미듕귁에달라. 아..... 좋구나! 무이 비엔~~ 한인 민박만의 아쉬운 환경은 애국의 정과 고추장 사랑으로 만회되고야 만다.
이곳에선 저녁마다 샹그리아를 마시며 회합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역시 나는 장기투숙자니까, 첫 며칠은 참여하지 않고 잠을 청했다. 창 밖에서 울리는 버스커들의 음악이 더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며칠 들어보니 이들은 매일매일 출근하는 직업적 버스커들이었다. 지켜보니 연주자도 레파토리도, 연주 시간대도 매일 똑같애! 먼저 오후 1시경에는 정말 아마추어 악사들이 나타난다. 스피커에 반주를 틀고 가창력을 뽐내는 친구도 있고, 동유럽에서 갖 넘어와 정말 여행 자금을 벌고 있는 것 같은 성악 3중주 합창을 보여주는 아가씨들도 멋졌다. 2시경, 아마추어 버스커들이 떠난 자리에 중년의 사나이가 낚시의자를 펴고 다른 버스커들의 접근을 막는다. 그렇게 다섯 명이 모이면 현악 5중주 아저씨들의 멋진 공연이 펼쳐진다. 왈츠, 탱고, 영화 ‘여인의 향기’ 주제곡까지 이어가며 저녁 7,8시까지 리싸이틀을 펼친다.
그 이후는 집에서부터 걸어온 듯한 사나이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스패니쉬 기타를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이 사나이는 정확히 밤 12시까지 매일 신들린 듯 공연한다. ‘밤바레오-보라레-데스파씨또’를 3연속으로 이어 불러재끼면 관광객들은 모두 환호하고, 춤추고, 주머니를 열어 기부한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면 레파토리가 리셋된다. 첫날밤엔 그의 수준급 스패니시 기타와 쇠심 갈아먹은 듯한 보이스에 빠져들었다. 감탄과 환호성을 지르다 급기야 숙소 앞 마트에 뛰어가 무알콜 알람브라 맥주를 사 와서 침대 맡 창가에 앉아 크아크아, 음악 바에 놀러 온 분위기를 조성해 보았다. 하지만 투숙 3일째 저녁, 아저씨의 레파토리가 2번 회전하니 이젠 너무 웃겨 맨날 저것만 부르네. 신곡 어디 없냐? 목도 안 쉬네.. 하며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나자 공용 공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청춘들의 샹그리아 잔치에 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무알콜 맥주를 들고 그들에 합류했다.
반갑게 맞아주는 청춘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묻는다. “언니, 도대체 무알콜 맥주는 왜 마시는 거예요?” 나는 온 힘을 다해 말했다. “저는..,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 애주가였는데요. (두 주먹 불끈 쥐고 몸을 비튼다)정———말 술 마시고 싶은데 이제 마실 수 없어서 무알콜 맥주라도 마신답니다.” 나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청춘들은 모두 함께 “아하——” 하고 탄식한 뒤 깔깔 웃었다. “근데 마드리드 뭐 볼 게 있다고 일주일씩이나 계세요? 솔, 그랑비아, 미술관 몇 군데 보면 다잖아요. 톨레도, 세고비아 갔다와도 시간 남아돌겠네요. 저라면 바르셀로나를 가겠어요!”. 확신에 찬 또 다른 젊은이의 말에 모두 나를 쳐다본다. 함께 투숙 중인 나보다 더 연장자이신 어머니 한 분과 스탭들만 조용히 미소를 지을 뿐이다. “이 숙소에서 일주일쯤이고요, 이미 마드리드엔 보름 가까이 머물렀어요. 바르셀로나는 예전에 두 번 가 봤어요.”라고 대답하자 “그러니까 왜요?”라는 질문이 되돌이표가 되어 온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물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그게 마드리드가 된 것뿐이에요.” 이 답에도 청년은 답답한 눈치였다. 자기 같았으면 다른 도시를 빡세게 돌아다녔을 거라고 이곳저곳을 읊으며 성토하다 분위기가 싸해진다. 그쯤 되니 다른 친구들이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여행관을 피력하며 다양한 이야기꽃을 펼쳤다. 그래, 젊을 때는 의욕이 충만하니까.
나보다 먼저 이 민박을 찾아 장기 투숙 중인 어머니는 대전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나의 직감으로 주재원 경험이 있거나 대전의 교육기관(대학들)에서 근무해서 해외 생활 특히, 언어적 문제가 전혀 없으신 듯한 모습이셨다. 그분은 영국에서 오래 머물다 이 곳에 오셨다고 했다. 대화를 더 나누다 보니 한 도시 한 도시 천천히 보면서 정착할 곳을 찾고 계신다는 걸 알았다.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도 털어둘 필요는 없다. 이쯤 되면 눈빛과 미소로 새겨듣는 센스정도는 있으니까.
청춘들의 왁자한 웃음 뒤로 자리를 마치고 다시 침대로 돌아온다. 신이 난 이탈리아 중년의 관광객들이 보라레 사나이의 공연에 합류했다. 왕년에 성악을 하셨나보다. 노래를 너무 잘하시는데? 창을 열고 다시 감상에 빠지며 깡생수 드링킹. 나는 왜 이 곳에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고 했는가? 돌아갈 때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래서 인생 2막은 어떻게 살고자 하는 것인가? 정리여행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장기 체류로 전환되면서 너무 느슨하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매일 1만보씩 걸어볼 것. 글 작업이 잘 되는 공간(=카페)을 찾을 것, 1일 1추로 할 것, 아침을 꼭 챙겨 먹을 것 등의 사소한 미션만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동기부여는 됐는데 여전히 어딘가에 묶여있는 듯하다. 과연 나는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진정 원하는 두 번째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막힐수록 돌아가라고, 기본에 충실하기로 했다. 일단 스페인어 읽는 법을 좀 배워야겠다.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 보니 YESSI 선생님, 제 스타일이시네요. 기초 스페인어 수강을 마쳤다. 책은 본가로 배달이 되겠지. 3개월 뒤에 만나자.
그리고 내일도 걸어야지. 좀 더 걸어서 다른 동네를 가 봐야지. 한인 민박의 스탭들을 도와 맛있는 밥도 함께 만들어야지. 그렇게 일상을 영위하며 다시 내가 찾는 것을, 찾아야 할 테다.
모두들 굳밤, 아디오스.
BGM ㅣ U2 - I STILL HAVEN’T FIND WHAT I‘M LOOKING F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