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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쇼 Nov 07. 2019

여유만만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새롭게 반한 미술가도 생겼어!


올라! 비구름이 걷힌 마드리드. 완연한 가을과 함께 귓방망이를 강타하는 바람이 매섭다. '마드리드 드림'의 브런치 업데이트는 4일에 한 편씩은 꼭 하겠다 목표했었는데,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이 한 달 즈음 접어들자 의식의 흐름을 따라 말라가로, 론다로, 세비야를 거쳐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다녀오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여행 속 여행! 예정에 없던 즉흥 탐험들!! 이라곤 말하지만 결국 업데이트를 제대로 하지 못한 핑계를 대는 것이죠. ㅠㅠ


이번 여행 속 여행을 통해 재미있고 신나고 빡치고 황홀하고 무례하고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겪었다. 하지만 먼저 밀린 이야기부터 차곡차곡 풀어야 하겠지. 프라도 미술관에 이어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으로 향한 날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반 고흐의 작품들 @티센 미술관



아직은 화창한 9월의 마드리드. 이 곳은 여전히 한여름이나 다름없다. 오늘은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Museo Nacional Thyssen-Bornemiza)을 탐험하는 날. 관람 중간에 배고픔에 지쳐 쓰러지지 않기 위해 내사랑 뽀라(츄로스의 일종)를 사러 ‘추레리아 뻬삐따(Churreria Pepita)’에 먼저 들렀다. 지하철을 갈아타기 귀찮아 꽈뜨로 까미노스 역에서 내려 에스뜨레초 역까지 걸어가는데, 스페인은 어린이날을 맞이했는가 보다. 꽈뜨로 까미노스 역부터 에스뜨레초 역을 훨씬 지나 저~ 위까지 몇 킬로미터 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8차선 도로를 완전 봉쇄, 바리케이드를 3중으로 치고 아이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닐 수 있는 다양한 놀이기구와 체험공간을 설치하고, 소방차가 와서 아이들에게 거품을 퍼붓고 다시 물샤워를 시켜주고 난리가 났다. 신난 아동들과 더 신난 부모들의 표정. 그 사이 대왕 뽀라를 겟하고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봉지를 흔들거리는, 더 신난 미쇼 씨! 그냥 먹으면 심심할까 봐 다시 꽈뜨로 까미노스 역으로 가는 길에 까르푸에 들러 찍어먹을 초콜라떼를 하나 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이런 초코 디저트까지 두유(스페인에선 ‘SOJA’로 표기)로 만들어지고 거기에 락토프리와 글루텐프리까지 더한 기능성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가격 역시 참말 저렴하니 평소 두유제품 즐기셨던 분들은 꼭 만끽해보시길.


에스뜨레초 역 인근, 어린이날 풍경


역시 씨벨레스 광장(Cibeles - 발음주의. 수강 중인 예씨 선생님의 동영상 강좌에 따르면 스페인어 자음은 강하게 발음되며 ‘ㅅ’은 ‘th’와 유사하게 구사한다고 한다.)을 지나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 도착했다. 마드리드 3대 미술관 통합 관람권인 파세오 델 아르떼 카드(Paseo del Arte Cards)을 구매할 때 와 본 길이라 찾기도 쉬웠다. 그때 꼭 앉아보고 싶었던 미술관 정원의 대리암 벤치에 몸을 맡긴다. 그래도 조금 차가운 아침 기온 탓에 엉덩이가 매우 시렵 ㅠ. 그 찰나! 따수운 햇살이 광명처럼 내려 하이얗게 빛나는 옆 벤치의 한 구석이 비었다. 한쪽 끝엔 에스빠냐의 중년 여성이 담배를 쭉쭉 피우고 있었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뽀라와 초콜라떼(feat. Soja)를 신중하게 개봉했다. 킁킁. 구매 후 30분이 지났지만 고소한 풍미 여전하고요, 유분도 포장지에 쫙 베어 나와 어쩌면 더 개운할지도 모른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일단 뽀라 먼저, 한입 꼭 베어 문다. 쫜닥바삭파삭고소짭짤한 맛이 응축되어 퍼진다. 뒤이어 기름의 고소한 맛도 따른다. 이번엔 초콜라떼에 찍어서 한입. 크와왕~ (=ㅂ=)// 19세기 유럽 귀족, 왕가의 저택에 마련된 대리암 벤치에 앉아 뽀라와 초콜라떼를 먹고 있자니 5성 호텔 디저트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뽀라, 감자칩, 두유 초콜라떼 그리고 하이얀 대리암 벤치


여행자라는 탈을 쓰고 가장 용감해지는 순간이 바로 ‘먹을 때’인 것 같다. 예전의 나는 초단골 식당 또는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빼면 혼자 당당하게 찾아가 무언가를 섭취할 수 있는 곳이 단 3곳에 불과했다. 홍대와 신림의 뮤직바, 집 앞 참치 횟집이 다였다. 그 외에는 편의점에서조차 나 홀로 사발면 하나 말아먹지 못했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가! 일하다 미팅하다 밥때를 놓치면 초코 바, 삼각 김밥을 들고 사무실 책상 앞에서 먹었다. 그것도 못할 거라면 차라리 굶었다. 참치 횟집엔 혼자 가 다찌에 앉아 먹으면서 동네 분식점에서 떡볶이나 순두부찌개 하나 앉아 먹지 못하던 못난 성품은 부산으로 첫 ‘정리여행’을 떠났을 때 호스텔 주인장이 추천해 준 달맞이 고개에 오르며 깨부술 수 있었다.


야경을 느끼고 바람에 많은 것들을 날려 보내겠다며 숙소부터 걷기 시작 해 이곳저곳 들러 대략 4시간 동안 부산을 만끽한 상태였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이 교차되던 9월의 어느 밤, 결국 심각한 허기를 품은 채 달맞이 고개의 고바이를 넘어 전망대로 보이는 널따란 곳에 도착했다. 목구멍 끝까지 가득 차오른 검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달빛과 그림자, 야간조업 중인 배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오란 불빛들은 몹시 아름다웠다. 정면으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머리카락을 올빽으로 넘겨주었다. 가슴속이 시원하던 찰나 휘청,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 당시 미쇼 씨의 체중은 39-41kg 정도) 짭짤한 바닷바람은 죽음의 신이 내뿜는 콧김 같았다. 지금과 달리 그때엔 달맞이 고개에 식당이 풍성하게 형성되어있지 않았고, 기업체 숙소와 모텔 몇 개, 유명한 아귀찜 집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을 뿐. 조명도 부족해 점점 무서워지는 분위기였다. 나는 왜 이 밤에 여길 걸어 올랐는가! 다들 차를 타고 슝슝 지나가는구만!! 어쨌든 이대로 있다간 바닷가에 곤두박질 칠 것이 확실하다. ‘정리여행’이 실족사로 번지면 안 된다는 강렬한 의지(정말 엄마와 언니가 혼자 떠나는 여행을 무척 걱정했다.)로 두 다리를 움직였다. 좀 더 걷자 코끝에 작렬하는 마늘 기름과 새우 굽는 냄새가 감지됐다. 우오아옹 따봉!!! 킁킁, 냄새를 쫓아 걸음을 재촉하니 눈 앞에 통 유리창이 멋들어진 한 레스토랑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테이블온더문(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식집에서도 혼자 앉아 무언갈 섭취하지 못하는 내가 과연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은 하나도 안됐다. “캬, 멋지구나. 먹어야 한다. 살아야 한다.” 수줍음이고 나발이고 허기를 이겨낼 순 없었던 거다. 그동안의 나에겐 헝그리 정신이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지배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다 죽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한 명이요.”라고 중얼거렸다. 사내는 되묻지 않았다. 대신 지긋한 미소와 함께 안락한 자리로 나를 이끌어 의자까지 꺼내 주었다. 잔에 물을 채우고 메뉴를 건네며 천천히 보라는 말도 남겼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내 손은 몹시도 다급하게 메뉴를 펼쳐 넘겼다. 마음속에서 ‘새우! 새우는 어디있는가!!!!! 마늘향에 꼬소하게 퍼지던 그 향은 어떤 요리인가!!’라는 물음만이 메아리쳤다. 오오 너구나, 그릴드 쉬림프 바질 페스토 파스타(명칭이 맞는지 모르겠다. 오래돼서...) “이거 주세요!”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주문을 했다. 사내는 식전 빵과 절임 반찬을 세팅해 주었다. 빵님이다! 오물오물 빵 한 입과 냉수 한 모금을 번갈아 먹다가 하우스 와인도 한 잔 추가했다. 휴우.. 이제야 좀 정신이 드네. 주변을 둘러봤다. 창가 자리는 다 연인들 차지였다. 여여커플도 남남커플도 없다. 그냥 누가 봐도 다정한 혼성의 연인들이었다. 부럽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단지 부산으로 여행을 오기 전 나는 회사도, 연애도 모두 내려놓고 온 거였기에 잠깐 멍- 해진 거였다.


수년 전 그날의 상차림 . 얼굴책에 남긴 유물사진 ! 

그 정적은 그릴드 쉬림프 바질 페스토 파스타를 들고 온 지배인과 “어? 저 여자 진짜 혼자 왔네?”하는 소리가 동시에 깨 주었다. 바로 앞은 아니지만 독립된 공간에 단체석이 있었고 사모님들의 계모임 같은 게 진행 중이었다. 그래. 나 혼자 레스토랑에 와서 파스타 시켰다!라고 세상의 중심을 향해 외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공격적인 아줌마의 말에 낭패감이 들었다. 창가의 연인들도 한 번에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평소 같으면 파스타를 앞에 두고 턱이 뻐근하게 침이 고였을텐데 밥맛이 뚝 떨어졌다. 아.... 나갈 수도 없고...... 그 순간 사모님들의 단체석 방향을 몸으로 가려 내 시야를 확보해 준 지배인이 천천히 맛있게 드시라는 말을 남긴다. 동시에 다른 어머니의 목소리도 귓가에 들려왔다. “얼마나 멋있어, 혼자서도 미식을 즐기고. 근데 우리 목소리가 너무 큰 것 같다.” 두근두근. 심장이 잠시 뛰었다. 순간의 창피함과 순간의 자신감이 교차했다. 그래, 맛있게 먹자. 미식을 즐겨보자! 포크에 면을 돌돌 말아 한 입 가득 머금었다. 맛있었다. 웃음이 났다. 그때 단체석의 입구에 가림판을 세워두는 웨이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창가의 커플들도 나 따위 혼자 오든 말든 언제 돌아봤냐 싶을 정도로 자신들의 연애를 즐길 뿐이었다. 그래, 초반에나 신기해하지! 사람들의 시선은 금방 사라졌고 나 역시 허기짐에 항복한 상태. 그때의 지배인 그리고 용기를 북돋워준 목소리만 들린 어머니. 두 사람 덕분에 이후로 혼밥은 식은 죽 먹기다. 그뿐이냐, 이후로 혼자서 모든 걸 즐기는 파워 나홀로꾼이 되었다.

 

피사로의 파리 /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 @티센 미술관


외국에서라고 다를 건 없다. 게다가 스트리트 푸드가 풍성한 유럽 아닌가? 점심 역시 직접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치즈와 하몽이 들어있는 보까디요(샌드위치)를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아 차분히 앉아 먹는 게 일상인 유럽인들이다. 미술관의 드넓은 정원 한 구석에서 뽀라를 흡입하고 있는 내 행색이 이상하게 비칠 일 따윈 전혀 없었다. 오히려 주변 아가들이 내가 먹는 뽀라가 먹음직스러웠는지 부모들에게 나도 저거 사달라고 생떼를 써서 미안하긴 했어도. 잘 먹고 잘 치우면 된다. 쓰레기통이 없는 곳을 대비해 가방에 잘 담아둘 에코백과 손 닦을 티슈 정도를 챙겨 다니면 된다. 나는 오늘 유럽 대귀족 저택에서 뽀라를 음미하며 미술관 관람에 앞서 추억도 되새기고 체력도 보충한다. 아!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공원이나 광장 등 공공장소에서 무언가 먹을 땐 스마트 폰을 손에서 떼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인데, 그로 인해 음식의 풍미나 식감에 더욱 예민해진다는 점이다. 꼭꼭 씹어 먹기 때문일까? 어쩐지 먹는 양이 적어도 포만감이 엄청난 기분. 집중의 효과인지 심리적인 요인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느낌적 느낌일 뿐이지만 어딘가 연구 결과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 이제 먹기를 마쳤으니 본격적으로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 들어가 보자!!

티센 보르네미사 입구와 하인리히 아저씨 흉상


일단 ‘티센 Thyssen’에 주목해본다. 엘리베이터 탈 때 몇 층인지 알려주는 안내 스크린 아래 제조사로 쓰여 있는 글로벌 기업 ‘티센-크루프’라는 회사명을 많이 봐왔는데, 그 ‘티센’이 맞다고 한다. ‘한스 하인리히 티센 보르네미사’ 남작이 그의 아버지가 1920년대부터 수집했던 예술품들을 토대로 더 많은 작품을 수집해 완성한 컬렉션의 일부-라고는 해도 800점이나 됨-를 전시하고 있는 곳이 바로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제외하면 개인으로서 가장 많은 예술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 내에서도 마드리드는 물론 말라가에서도 ‘티센’ 미술관을 만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전시장에 ‘티센’ 컬렉션의 일부가 출장을 다니고 있기도 하다. 개인이 수집한 작품들이 이렇게 방대할 수 있나 싶다. 역시 떼부자 스케일. 미술관 역시 19세기 초에 지어진 멋들어진 건축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호텔방 @티센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와 함께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3대 미술관에 속하는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이지만 건너뛰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아마도 개인 가문의 컬렉션이라는 점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다녀와 본 사람으로서 한 마디 보태자면 놓치지 말고 꼭 가보시길 권한다. 대작이 있어 가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미술관 자체가 가진 결이 좀 달랐던 것 같다. 관람객을 편하게 해 주는 구석이 있어서 피로도가 낮았다. 13세기 종교미술들이 전시된 3층부터 시작해 17, 18세기 작품을 만날 수 있는 2층, 19세기 작품부터 현대 미술까지 만날 수 있는 1층으로 내려오며 작품들을 봤는데, 일단 동선이 너무 좋았다. 작품 간격이 빽빽하게 붙어 있지 않아 숨통이 트이는 기분도 들었다. 철저히 한 가문과 개인의 취향에 맞춰 수집된 작품들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하다 못해 정물화, 풍경화들을 보면서도 시간을 많이 쏟아 관람에 3시간 이상을 들였다.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두 다리가 고통스러워 주저앉아가며 관람했는데 같은 시간 동안 아주 쾌적한 기분. 뽀라를 먹고 시작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람도 적었고,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전시된 작품들을 사진으로 찍어도 무방했다. 그림 속 안광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무지막지한 위압감이 적었다고나 할까.


고호, 고갱, 미로, 에곤 쉴레, 렘브란트, 고야, 샤갈, 마티스, 드가, 세잔, 칸딘스키, 잭슨 폴락, 리히텐슈타인, 호크니, 에드워드 호퍼, 피카소 등 다 생각도 안 난다. 엄청나게 엄청난 작가들의 작품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프라도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에서도 위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다. 누가 봐도 그들이 그린 그림이겠으나 사람의 감정이 매일 다르듯 이 곳에 전시된 그림들도 미묘하게 다른 표정들로 다가온다. 새로운 작가에게 반하기도 했다. 막시밀리옹 뤼스(Maximilien Luce)라는 작가다. 분명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앞서 방문한 프라도 미술관에서도 이 작가의 그림을 봤다. 하지만 그곳들은 관람객도 작품도 너—어무 많아 진득한 감상이 아니라 휙휙 스쳐갔을 뿐 반할 기회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곳이 주는 한적함이 아니었다면 나는 또 막시밀리옹 뤼스의 작품 앞을 지나치며 ‘어어 좋네. 잘 그렸네’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을 테지. 모골이 송연하게 죄송할따름.

막시밀리옹 뤼스의 작품 중 @티센 미술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은 -비록 한 점이었지만- 한국에서 전시를 못 보고 와서 아쉬웠는데 여기서 볼 수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밤 풍경을 그린 그림쇼의 작품에서도 한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영국에는 두 번 가 봤지만 아직 가 보지 못한 글래스고는 꿈에서도 그리는 장소라 더욱 그러했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그 옛날 사진도 TV도 없던 때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그림’이었을 테니 작품 하나에 치열하게 병적으로 자신을 담아내고, 묘사 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으리라. 돈 많은 귀족들이 지적 허영을 뽐내는 데에 그만한 것도 없었을 거다.


그림쇼의 글래스고 부둣가 밤 풍경 @티센 미술관


이런저런 생각을 담아 현대 미술품들을 쭉쭉 감상하다 이윽고 피카소 앞에 섰다. 국내에서 피카소의 전시가 열리면 꼭 찾아갔었다. 밴드 글렌체크 멤버들과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도 피카소 미술관에 함께 들렀고, 일본의 후지산 등반 후 다 죽어가면서도 하코네의 피카소 미술관에 갔었다. 그렇다. 나는 피카소의 팬이었다! 이제 이곳을 나서면 마지막으로 그의 대작 <게르니카>를 보러 레이나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만 가면 된다. 근데 꼭 도장깨기만 하고 있는 찝찝한 기분.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을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발길이 산뜻하지 못하다. 이대로 파세오 델 아르떼 카드를 휘리릭 소진해버리는 게 과연 옳은 걸까? 그 유명한 <게르니카>를 보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피카소의 작품들 @티센 미술관


숙소에서 초록 검색창에 ‘피카소’와 ‘게르니카’를 입력했다. 검색 결과는 비슷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천재 예술 거장 피카소. 대표작으로 게르니카와 아비뇽의 처녀들이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말라가에서 태어나 미술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블라블라- 나는 착잡한 기분을 정리하기 위해 나만의 피카소 로드를 떠올려 봤다. 그리고 한 단어에서 눈길이 멈췄다. 바로 ‘말라가’였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해변도시 말라가. 한국에서 열린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 전시에 다녀 온 기억도 났다. 말라가의 피카소 뮤지엄엔 유작들도 있다고 했다. 자연스레 초록 검색창에 ‘마드리드에서 말라가’라는 키워드를 입력한 미쇼 씨.


그래, 바로 여행 속 여행이 이렇게 시작된 거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 의식의 흐름이 이렇게나 무서운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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