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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쇼 Nov 11. 2019

말라가로 진군하라!

0.2그램 만큼은 용감해졌다.

고등학생이 된 후 시각디자인과 진학을 준비하며 미쇼 씨에게 큰 영향을 끼친 현대 미술가는 달리와 피카소였다. 그리고 건축가 가우디까지. 세 사람은 내가 스페인을 동경하게 된 원천적 이유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 유명하고 누구나 언급할 수 있는 인물들일 테지만. 나는 달리와 피카소의 전시가 국내에 열리면 틈을 내 다녀오곤 했다. 특히 피카소 전시는 시간을 두고 재방문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 후지산 등반 후 지쳐 쓰러져 가는데도 정신줄을 부여잡고 하코네의 피카소 미술관을 찾아가기도 했었다. (당시 조각공원에서 찍은 웃긴 사진이 여전히 핸드폰 배경화면이기도...)




2013년 초, 밴드 글렌체크(Glen Check) 덕분에 난생처음 유럽 땅을 밟았다. 당시 정규 2집 앨범 작업을 위해 스페인과 프랑스를 오가며 3개월을 보내기로 한 글렌체크 멤버들이 자신들을 발굴 해 데뷔시킨 장본인이자 프로모터 자격으로 미쇼 씨를 유럽으로 초대한 것이다. 글렌체크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크루 ‘베이스먼트 레지스탕스(Basement Resistance)’도 동행하는 일정이었다. 어디에 있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데모 작업을 하고, 그 데모를 듣고 비주얼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도 각자의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 즈음을 보낸 멤버들은 자신들의 작업물을 글로 표현해 정리하고 홍보 방향을 잡아주는 나 역시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미쇼 씨는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드디어 독립, 작은 인디 음반사 개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초대를 사양할 이유가 1도 없었다. 그렇게 첫 유럽여행은 글렌체크와 함께 시작했다.


나보다 한 달이나 먼저 바르셀로나에 안착해 생활 중이던 글렌체크와 베이스먼트 레지스탕스 멤버들은 고맙게도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피카소 미술관(The Picasso Museum in Barcelona)에 함께 가 주었다. 미술관이 위치한 곳은 고딕지구. 중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대저택들이 남아있는 지역이었다. 때문에 이 미술관 건물 역시 피카소의 작품을 품고 있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가 위압감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서는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그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말라가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바르셀로나 미술학교(미술교사였던 아버지가 근무했던)에서 수업을 받았던 피카소이기에 말로만 들었던, 어린 시절의 그가 그린 정물화, 인물화, 판화, 막 끄적거린 데생, 낙서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던 순간의 희열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비둘기들의 향연도 목격했다.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는 피카소의 화풍이 정립되기 이전의 멀쩡한(?) 그림들인데, 정말 잘 묘사되고 잘 그려졌다. (이 표현 외에 달리 더 잘 구사할 단어가 없다.)


역시 기본 드로잉과 해부학적 재능이 어릴 적부터 탁월했다. 화법적으로 질풍노도의 시기에 그려진 암담한 그림들, 자신에게 영감을 준 앞선 대가들(특히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작품에 관한 스토리나 독특한 작법은 베이스먼트 레지스탕스의 VJ Eyejin과 Jessica가 번갈아가며 설명해주었다. 영어능력자이자 아트워크 작업 전반에 종사하고 있는 그녀들이 있어 정말 든든했던 기억이다. 한편으로 몇 년 뒤 일본의 피카소 미술관에서는 그가 직접 만든 도자기들, 조각들을 더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2013년 글렌체크, 베이스먼트레지스탕스와 함께 한 바르셀로나 풍경들


적어도 내 주변에선 피카소를 대차게 비난하는 사람은 만나 본 적 없다. 그의 큐비즘(Cubism, 입체파) 화풍은 취향이 아니라고 밝히는 사람은 있었어도. 어릴 때 나는, 그가 사물을 찢어발기고 다시 조합하는 게 너무 신기했다. ‘와, 이게 뭐야?!’ 싶으면서도 ‘말이 되는구나...’라고 수긍했었다. 나도 그런 시각을 갖고 싶었고, 표현해 보고 싶었다. 어린 마음에도 다양성을 받아들이게 된 그때가 이후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지점이었을 거다. 


결국 예술가는 자신의 마음과 머릿속에 품고 있는 무언가(=메시지)를 글이나 음악, 그림, 사진, 행위라는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표현해내는 사람들일 테니.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는 예술가이기보다는 그들의 결과물을 읽어주는 쪽에 더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닫았다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훗날 글렌체크의 음악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로 바르셀로나 여정까지 합류하게 된 것이니.




어쨌든, 이렇게 피카소를 따라 여행의 조각을 채워 왔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에서 피카소의 대작 <게르니카>를 마주 봐야 할 시간. 근데 어쩐지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 것이다. 왜때문이죠? 나는 검색창에 피카소와 게르니카에 대한 키워드를 번갈아가며 입력했다.


‘20세기 최고의 미술 거장,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 대표작으로 ‘게르니카’와 ‘아비뇽의 처녀들’이 있다. 피카소는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나 미술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림을 시작해 청소년기에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뛰쳐나오길 반복했으며...’


나의 눈길은 무의식적으로 “말라가”에 멈춰있었다. 그가 나고 자란 고향, 따뜻한 남쪽 나라 말라가. 그곳에도 물론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의 가족들이 기증한 말년의 작품, 미완의 습작들이 있는 곳이다. 한국에서 열렸던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 전시를 다녀왔기에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자연스럽게 ‘마드리드에서 말라가’라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갖가지 교통수단과 소요시간, 대략적 비용을 모두 산출했다. (유럽 여행 정보의 바다와 같은 커뮤니티 ‘유랑’에 고마움을 전한다.) 마드리드에서 말라가로 차량을 렌트하지 않고 갈 수 있는 방법은 대략 4가지로 요약됐다.

  1. 렌페(renfe, 스페인 고속열차) 이용

  2. 알사(ALSA, 스페인 고속버스) 이용

  3. 비행기 (저가항공) 이용

  4. 블라블라카 (blabla car, 유럽 카풀 서비스) 이용

 

마드리드 아토차 역 풍경과 내가 탑승한 말라가 행 고속열차, 렌페


모든 편의와 안전성, 안정성, 도심과의 접근성, 총 소요 시간을 고려해 렌페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렌페를 타려면 아토차(Atocha) 역으로 가야 했는데-KTX 타러 용산역 가듯- 렌페를 예약한 사람에게 무료 발권되는 고속전철 쎄르까니아스(Cercanias) 1회 탑승권으로 솔 광장에서 아토차역까지 갈 수 있었다. 대중교통비도 아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이런 모든 정보가 검색되고 정리되고, 이용 후기들 까지 나와있으니 다시 한번 유랑과 글을 올려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다.


아침 10시30분, 말라가로 향하는 렌페에 몸을 실었다. 숙박을 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는데 역시 당일치기는 어려워 보였다. 간밤에 봐 두었던, 말라가 기차역에서 도보 15분 정도 걸리는 저렴이 숙소(이비스 버젯)를 렌페 안에서 모바일 어플로 예약했다. (3일 이상 유럽에 계시다면 데이터로밍보단 현지 유심(Sim Card)을 장만합시다. 참고로 저는 Orange사의 1개월 15유로 선불 유심을 구매해 잘 쓰고 있어요.) 기왕 가는 거, 미술관만 달랑 보고 오는 게 큰 의미가 있나 싶어 2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천 년 동안 존재했을 말라가의 바다와 따뜻한 기온,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을 더 느껴보고 싶었다. 어린 날의 피카소가 온몸으로 느꼈을 그곳의 대자연은 나에게도 똑같이 불어올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이제사 피카소가 될 순 없고, 피카소 전문가가 되어 작품을 달달 외우고 연표를 외워 해설사 뺨치는 삶을 살아갈 것도 아님을 안다. 기억 저편에선 분명 잊혀지는 것도 있겠지.


하지만 마흔과 함께 불타오른 ‘정리여행’은 앞으로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라는, 용감해지고 싶은 나를 반증하기도 한다. 많은 예술가들은 작품을 위해 자신에게 영향을 준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재해석하지 않던가! 이번 말라가 진군을 통해 과연 어떤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인가 궁금해졌다. 우선 피카소라는 존재가 내 안의 작은 도화선이었음은 확실히 알겠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어쩐지 귀가 빨개진 것 같은 기분은 뭐지? 혼자 부끄러워 두리번거리는데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기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말라가 마리아 쌈브라노 (Malaga Maria Zambrano) 역. - 이제부터 말라가 기차역으로 부르기로 한다. -


아름다운 해변과 피카소의 고향이라는 프리미엄을 가진 작은 관광 도시라고 생각만 하고 있던 말라가. 플랫폼을 벗어나 역 광장으로 나가볼까 했는데, 역이 엄청 크다. KTX 용산역만큼 쇼핑몰과 대형 슈퍼마켓이 입점 해 있었다. 도시에 대한 규모나 둘러볼 곳들을 조사하지 못한 채 일단 가자! 하며 지르고 본 지라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일단 숙소까지는 걸어가야 했고, 올바른 길잡이가 필요했으므로 역 바깥 광장 즈음에 있을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 볼 요량이었다. 근데 역에서 나가기 전 실내의 큰 원형 부스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었다. 이 곳에서 만난 안내요원이 아마 마드리드에서 가장 잘 들리는 영어, 쉬운 영어를 구사해 주는 것 같았다. 요점만 쏙쏙. 그녀의 도움으로 숙소로 가는 방향도 잘 잡았고, 추천 여행지인 ‘히브랄파로 성’에도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 가려면 말라가 교통권을 구매해야 했다. 물론 다른 곳들도 접근하려면 필요했고. 천만다행으로 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교통카드의 구매와 충전을 모두 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드디어 역에서 나와 으쌰! 배낭 끈을 꽉 잡고 진군을 시작했다. 그런데 우왓, 엄청 덥네? 그리고 바람이 온 사방에서 불어닥쳐 순식간에 단발머리의 나를 광년이로 만들었다. 앞도 안보였다. 시각을 포기해야 하나 스타일을 포기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 앞머리를 덥석 잡아 올려 야무지게 묶고 (aka. 포비st.) 진군을 이어갔다. 역시 순간의 쪽팔림 뒤에 평화가 오는 법! 그렇게 숙소로 가는 길은 몹시도 긴장했고, 배낭도 무거운 탓에 땀을 한 바가지 흘리게 되었다. 이 정도의 땀샤워는 나에게 결코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가을의 말라가가 이러할진대 한여름의 말라가가 아닌 게 다행이라 생각하며 체크인과 파워샤워를 마치고 말끔한 사람이 되어 숙소 주변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바로 앞에 지역 주민들로 북적이는 타파스 바가 있었다. ‘아, 저녁은 저기서 먹어봐야겠구나.’ 그런데 점심부터 해결을 해야 했다. 꽤 단정한 테라스에 햇살이 쫙 비치고 있는 식당도 보였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낮맥을 즐기고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도 괜찮아 보였다. 길 건너면 한쪽은 바다, 한쪽엔 백화점 지하에 대형 식료품 마트가 있었다. 거기서 포장을 해다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아, 내가 숙소를 또 잘 잡았구나!’ 어쩐지 술술 풀리는 기분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좀 더 걸어보기로 한다. 바다와 강이 합류되는 지점이 있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구도심으로 이어진다. 전통시장도 보이네! 그런데 씨에스타라 쉬는 듯 문은 닫혀있었다. 마지막으로 조금만 더 걸어봐야지. 산책하며 보니 말라가의 전체적인 느낌은 우리의 여수와 비슷했다. 해변과 상업이 공존하고, 관광과 일상이 함께하고, 사람들도 화통하고 친절했다. 무엇보다 따뜻했다. 그리고 킁킁. 갑자기 고소미한 냄새가 나를 자극했다. ‘조건 반사’처럼 냄새의 근원을 찾아 한쪽 골목을 들여다보니 “우와와와왕!!!!!!!! 추러스님아-” 마치 을지로 OB맥주 골목에 펼쳐진 사람들의 향연을 보듯 골목 전체가 유명 추러스 집 하나를 기준으로 1호점, 2호점, 3호점 쭉쭉 나열되어 술렁이고 있었다.


그럼 피카소도 이 곳에서 추러스를 먹었겠구나!!!! 오만가지 희열을 느끼며 반가운 마음에 테라스 좌석에 자리를 잡고 말았다.


결론 : 마드리드에 이은 ‘말라가 추로스 대전’이 곧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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