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국민간식 ‘뽀라’ 대탐험 2탄
마흔의 정리여행 중 마드리드의 국민간식, 뽀라(Porra, 추로스의 일종)에 관해 제법 진지한 고찰과 함께 추천 장소들을 업데이트 한 바 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화가 피카소의 고향, 스페인 남부의 말라가로 급하게 왔지만 어쨌든 ‘in 스페인’. 이 곳 역시 아침, 점심, 저녁 관계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추로 ( 츄러스 )를 먹는다. 나는 정말 그럴 생각이 없었으나 본능과 기똥찬 후각에 의해 말라가의 골목들을 탐방하던 도중 유서 깊은 추레리아(추로 전문점)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을지로의 ‘OB베어’ 골목 뺨치게 야외 좌석들이 깔려있고 사람들이 가득가득하다. 그렇게 말라가에서의 첫 끼니 역시 뽀라를 섭취하게 됐다는 말씀!(=핑계). 말라가에서 머물던 2박 3일 동안 추레리아 여러 곳을 다녀왔다. 관광객 친화적인 곳, 현지인들에게만 알려진 곳, 배고파서 그냥 막 들어간 곳도 있었다. 꿈꿔왔던 <마드리드 추로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2탄 혹은 번외 편이 된 셈. 그래서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운 경험 같아 이 곳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그에 앞서, 미쇼 씨가 발로 뛴 마드리드의 ‘뽀라’와 ‘추로’, ‘초콜라떼’ 등에 대한 개념과 추천 명소들을 정리한 글도 링크한다. 단어들이 생소하시다면 아래의 글을 참고 하심 좋겠다.
https://brunch.co.kr/@zzumit/45
되도록 짧게 요약하자면, 우리에게 친숙한 ‘추로(Churro)’는 밀가루, 소금, 물 또는 우유로 반죽한 다음 별모양 짜개를 이용해 반죽을 똑똑 떼어내 기름 솥에 튀겨내는 스페인 최고의 국민간식이다. 한국에 떡볶이가 있다면 스페인엔 추로가 있다. 특히 마드리드 사람들은 추로보다 ‘뽀라(Porra)’를 즐겨 먹는데, 밀가루, 소금, 물과 베이킹파우더를 첨가해 반죽하는 것이 추로와 다른 점이다. 일면 우리네 꽈배기와 유사한 느낌이지만 꽈배기는 튀김기에 넣기 전 반죽을 손으로 둥글려 공기층을 뺀다. 뽀라는 공기층이 곧 생명! 쫀득하고 짭짤하고 바삭거리는 질감 사이로 기름이 쭉쭉 배어 나오는 그것을 나는 정말이지 사랑한다. 그래서 뽀라는 추로처럼 가늘고 길게 뽑기보다는 각 전문점(추레리아, Churerria)마다 모양이나 크기가 다르다. 대체로 뽀라는 추로보다 2배쯤 되는 굵기를 가지고 있다.
한편 떡볶이의 묘미가 양념장이듯 추로와 뽀라에도 짝꿍이 있다. 바로 뜨겁게 녹인 꾸덕꾸덕한 초콜릿이다. 이곳에서는 초콜릿을 ‘초콜라떼(Chocolate)’라고 부르는데, 핫초코의 초코+라테(우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발음상 ‘초.콜.라.떼’가 된다. 여기에 뽀라를 찍어 먹기도 하고 똑똑 뜯어 넣어 티스푼으로 퍼먹기도 한다. 굉장히 굉장한 비주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 초콜라떼는 매우무척레알진심 뜨겁사오니 식도와 입천장 보호를 위해 부디 마시지 마시옵소서-.
무엇보다 이번 ‘여행 속 여행’을 하면서, 지역에 따라서 추로를 표현하는 단어가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선 밀가루, 물, 소금을 넣고 반죽해 막대 모양으로 튀겨 낸 간식의 통칭은 표준어 개념과 같이 ‘추로’로 사용되고 있다. 마드리드 및 인근의 라만차 지역에서는 오동통한 ‘뽀라’를 추로라고 인식, 사용한다. 그리고 말라가를 비롯한 론다 등 인근의 산간지역, 남부 지역에서는 ‘떼헤린고(Tejeringo, 테헤링고)’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전문점 이름도 추레리아보다는 ‘떼헤린고스’라는 이름을 걸고 있었다. 관광지와 동떨어진 동네 점포에는 아예 ‘추로’라고는 쓰여있지도 않았다. 지역적 특색 또는 전통과도 관계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결국 외지인과 외국인이 ‘추로’ 또는 ‘뽀라’라고 말해도 다 정리가 된다. 관광지는 사진 메뉴판들도 있으니 진땀 빼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
말라가에서는 총 여섯 곳의 전문점을 찾았다. 다른 곳들은 어떤 모양새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방문한 곳들은 모두 ‘추로=뽀라=떼헤린고’로 통했다. 즉, 구분이 없다. 한 종류만 판매한다. 전체적으로 뽀라의 반죽과 형태를 띠고 있으나 마드리드의 뽀라에 비해 반죽의 농도가 묽고 염도가 높았다. 쫀득하고 차지게 반죽했다는 느낌보다는 물반죽과 같았달까? 그래서일까, 주문 즉시 튀겨주는 곳들이 많았다. 관광지 쪽은 쉬지 않고 튀겨도 계속 손님들이 오니까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기름 솥에 반죽을 투하하면서 똬리를 틀어 큰 원형으로 튀겨 내 주문하면 잘라서 주는 곳도 있었고, 묽은 반죽을 얇게 짜서 말발굽 모양으로 하나씩 말아서 주는 곳도 있었다. 후자가 말라가의 전통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명소 4곳을 만나보자. 말라가의 뽀라, 떼헤린고를!
까사 아란다 Casa Aranda
100년 전통의 까사 아란다. 현지인의 해장과 이른 아침부터 배고플 여행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주는 말라가의 대표 추레리아다. 센트로 본점은 센트로의 센트로, 중앙의 정중앙에 있다. 골목 전체가 까사 아란다로 상권이 통일되었을 만큼 규모가 큰 곳이지만, 건물을 다 부수고 지어 통합한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한 점포 한 점포 늘여갔기 때문에 운치가 있다. 각 분점 가게들도 쫙 붙어있지 않고 하나 건너 하나, 마주 보고 하나 있는 형태라 테라스에 앉아 먹으면서 그 모습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음료의 가격은 바, 홀, 테라스에서 마시는 게 각각 다르다. 관광객들이 장시간 고민하거나 말하기 힘들어하면 웨이터들이 “원 추로 원 초콜라떼?”하며 물어본다. 나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임과 동시에 웨이터와 눈이 마주치면 “우노 초콜라떼 꼰 뽀라스(or 추로스), 우노 까페 꼰 레체(or 꼬르따도) 뽀르빠보르. ”라고 정해진 말을 외친다. 웨이터라고 하기엔 다정한 중년의 모습이 꼭 아빠처럼 느껴지던 점원께선 내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무이비엔, 무이비엔, 발레!’ 라며 박수를 쳐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1일 1추로를 목표로 한 달 넘게 매일같이 정해진 주문을 되뇌었던 미쇼 씨가 아니던가! 군더더기 없이 신속 정확한 주문에 칭찬해 주신 점원 덕분에 말라가에서의 추로 탐험은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마드리드에서도 물론 몇몇 곳은 그랬지만) 말라가의 추레리아와 바에서는 까페 꼰 레체(카페라테)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만 들어있는 잔을 먼저 가져다 준다. 그 후 뜨거운 우유가 담긴 주전자를 가져와서 메뉴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우유를 따라주었다. 이 곳의 뽀라는 마드리드와 형태도 맛도 질감도 크기도 비슷했다. 둥근 오각형 깍지에서 짜낸 반죽을 기름 솥에서 똬리를 틀어 크게 둥글려가며 튀겨낸 뒤, 가위나 칼로 샥샥 잘라내고 바로 서빙한다. 통유리로 뽀라 튀기는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뽀라의 염도는 이 곳이 아래 소개할 곳들을 통틀어 가장 낮았다. 그래서 고소한 맛을 좀 더 느낄 수 있었다. 초콜라떼는 생각보다 묽어서 먹다가 자꾸 흘리는... 나중엔 반죽을 뜯어서 스푼으로 퍼먹게 되었다는 후문이.
로스 떼헤린고스 데 말라가 “추레리아 라 말라게냐”
Los Tejeringos de Málaga “Churerria La Malaguena”
역시 센트로에 위치했다. ‘까사 아란다’와 한 골목 차이로 말라가 추로스를 견인하는 쌍두마차인 셈. 규모가 크니 테라스 소리도 떠들썩하게 울려퍼진다. 그 소리에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비가 좀 내리길래 실내로 들어가 답정너 “우노 초콜라떼 꼰 뽀라스, 우노 카페 꼰 레체. 뽀르빠보르~”를 힘차게 발사. 이 곳의 점원은 알겠다는 표시로 엄지손을 힘차게 들어 올리며 주방 안으로 슝~ 들어갔다. 주문한 음료들이 먼저 나왔고 잠시 후 추로 등장!! 비로소 ‘떼헤린고’라 하는 물반죽의 추로를 처음 만나보게 된 것이다. 일반적인 뽀라보다는 얇았고, 모양도 하나하나 따로 떼어내 말발굽 모양을 억지로 꼬아 본 것 같았다. 방금 막 튀겨낸 것임이 분명하다는 듯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보며 한쪽 꼬다리를 잡아봤다가 뜨거워서 ‘으워쿼쿼걱’ 소리를 내며 화들짝 내려놨다.
그런데 입가에 미소는 왜 가시지를 않는 거지?!! 맛있겠다. 헤헤. 주변을 보니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 관광객들도 같은 소리를 내며 호들갑이다. 좀 더 살펴보니 도도하게 양 손으로 뽀라를 척 찢어 초콜라떼에 찍어먹고 계신 현지인들 발견! 역시 너무 들이대지 말고 기다리는 법도 알아야 하겠다. 뽀라의 반죽은 생각보다 짭짤했다. 분명 바삭한데 쫀득한 것이 꼭 감자전을 먹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순간 초콜라떼가 막걸리처럼 보였고 거기에 뽀라를 찍어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망상을 했다. 누가 저 대신 지평 밀 막걸리 좀 한 사발 마셔 주세요, 제발!
데 라 모타 카페 de la MOTA Cafe
소개에 앞서 이 곳은 관광지와는 제법 거리가 먼 곳이라는 걸 미리 말씀드린다. 피카소 공원에 갔다가 현지인들이 최고라고 손꼽는 곳을 소개받아 어렵게 찾아갔는데 휴가 중이었다. 몹시 허기도 지고, 계속 걷고만 있어 결국 내적으로 화가 난 상태. ‘왜! 내가 찾아 간 날부터 휴가를 가시냐고요~~~’ 원망 어린 마음으로 이 또한 여행의 일부라고 위안하며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데 귀신같이 콧속을 파고드는 강려크한 튀김의 냄새를 잡아냈다. 온 정신을 집중해 킁킁거리는데 왜 자꾸 중식당이 보이나요, 이곳은 차이나 타운인 건가요? 그나마 다행스럽게 씨에스타라 중식당이 쉬고 있어서 요리 냄새가 겹치진 않았다. 그리고 냄새의 근원지에 도착 “여기다!!!”라고 나도 모르게 포효해 보니 가게 뒷문. 실성한 사람처럼 흘흘 웃으며 일단 입구로 가 보았다. MOTA라는 상호가 크게 붙어있었다. 근데 어딜 봐도 ‘카페테리아’지 ‘추레리아’로 보이진 않았다. 보까디요라고 불리는 샌드위치와 도넛이 많았는데 도넛 튀기는 냄새를 잘못 맡았나 보다.
그래도 너무 배가 고파 커피라도 마실 겸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우와- 안쪽이 드넓은 매장이었고 눈앞에 떡하니 기름 솥과 추로 반죽이 찰랑이는 기계도 보이고, 저 쪽에 계신 할머니가 추로를 촵촵 드시고 계셨다. 점원께 “추로스 오케이?”라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해보았는데 콩떡같이 알아들으시고 된다고 스페인어로 꿋꿋하게 말씀해주셨다. 나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몹시 배가 고팠던 나는 “우노 초콜라떼 꼰 추로스, 우노 까페 꼰레체 꼰 추로스. 뽀르빠보르”라고 말씀드렸다. 그렇다 평소보다 추로를 두 배로 시켰던 것이다. 주문과 함께 한쪽에 대기하던 직원이 반죽을 슝슝 뽑아 기름 솥에 던져 넣었다.
잠시 후 내 앞에 산처럼 쌓인 추로스들. 이곳이 말발굽 모양도 가장 예뻐 더 맛나보였다. 나는 이미 배가 고파 화가 난 한 마리 삵이었으므로 기쁘게 냅킨을 한 장 뽑아 들고 추로를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파아-삭” 소리가 났다. 짭조름했다. 맛있었다. 바삭하기로는 말라가에서 먹은 모든 추로를 통틀어 이 곳이 으뜸이었다. 위의 ‘라 말라게냐’가 쫀득한 감자전이라면 이곳, 모타는 기름에 잘 튀겨진 감자전의 끄트머리 같이 응축된 짭짤함과 고소함이었다. 내가 고개를 묻고 추로에 빠져있을 동안 한 팀 두 팀 손님들이 들어왔다. 모두 추러스를 드셨다. 계산을 할 때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싶었다. 평소보다 더 시켰으니까 저렴한 말라가의 물가를 고려해도 너무 싼데? 근데 진짜였다. 4유로. 다 먹고 나서야 이 가게의 평판을 조사해 보았다. 맛집이었다. 콧망울을 문질문질, 뿌듯하네.
로스 바예 Los Valle
여정을 마치고 말라가 기차역 또는 버스터미널로 가시는 분들께 추천하는 곳이다.(두 역이 마주 있음.) 갑자기 숙소나 시내에서 로스 바예를 찾아간다고 하면 건너뛸만한 위치지만, 말라가 터미널 건너편이라는 이점을 활용하면 좋다. 추로라는 게 주문부터 다 먹고 나올 때까지 30분을 넘지 않는 음식이기도 하니까 아침 대용으로도 좋고. 나는 역시 말라가에서 론다로 떠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가던 길에 들렀던 곳이다. 스페인에서 그리고 말라가에서 아침으로 추로와 커피 한 잔은 가성비가 아주 좋은 편이니까.
이곳은 투박하다. 대형 기름 솥과 추로 짜주머니가 오래된 골동품 같다. 공장에서 멋들어지게 생산한 편의성 있는 기계가 아니었다. 내부에도 현지인들이 아침식사를 즐기고 계셨다. 주인아저씨는 영어를 하진 못하시지만 관광객들과 소통이 어렵지도 않았다. 나야 뭐 수다를 떨 일도 없고 ‘답정너’를 발사하면 그만이니까.
곧바로 에스프레소만 들어있는 잔과 빈 잔이 하나 나왔다. 그렇다. 로스 바예는 초콜라떼도 주전자를 가져와 빈 잔에 따라주는 시스템. 이것도 신선하네! 입구 쪽에 계신 주인아주머니가 힘차게 돌려 갓 튀겨낸 추로를 마지막으로 말라가와도 이별이다. 근데 이 모습을 보니 진짜 우리 동네 떡볶이 가게가 떠오른다. 추로를 한 입 깨물자 바사삭하면서도 조직감이 성글게 느껴졌다. 가장 묽은 반죽이었고 때문에 기름 온도도 높았던 것 같다. 못난이 튀김, 오징어 튀김 같은 게 마구 떠오르는 맛과 생김새, 분위기였다. 아, 염분도 이곳이 가장 높았다. 초콜라떼도 달게 느껴지기도 했고. 극강의 단짠 조합을 자랑하는 추레리아였다.
이것으로 <말라가 추로 오아시스>를 마친다. 마지막 추로 집에서 나온 나는 론다행 버스에 오른다. 마드리드가 아니라 론다라고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말라가가 끝난 게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피카소를 따라 떠난 여정과 히브랄파로 성, 말라게타 해변 등 할 이야기가 수두룩 합니다요~ 여행 속 여행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