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숭한 숙소로 처방 완료
“
나는 꿈의 도시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찾은 곳이 바로 론다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하지만 가엽게도 론다에 도착하자마자 토할 것 같은 상태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말라가에서 론다로 향하는 버스는 익히 이용한 스페인의 대표적 고속버스 알사(ALSA)가 아니었다. 아반사(avanza)라는 시외버스-심지어 완행-를 이용해야만 했다. 버스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출발 후 한 시간 가량은 지중해를 끼고 도시들을 쭉 들러 손님을 태웠으므로 나름 낭만적이었지만, 이후 한 시간 반 동안은 시에라 산맥을 오르고 올라 대관령 옛길 뺨치는 고난도의 지그재그 길이 이어졌다. 산허리에 걸쳐진 구름과 협곡 사이로 펼쳐지는 멋진 절경이고 나발이고 2분에 한 번씩 버스가 회전하는 원심력에 의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귀싸대기 후려 맞듯 패대기 처지는 미쇼 씨 ㅠ.
초등학교 6학년, 속리산 수학여행이 떠올랐다. 터널이 뚫리기 전이라 일명 ‘말티고개’라는 꼬부랑길에 진입하던 순간, 자리에 서서 놀던 아이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넘어지고 구르고 야단법석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땐 멀미도 없이 꺄르륵거리고 말았는데 5년 전쯤부터 극심한 멀미가 생겼다. 혹시나 싶어 비행귀도 끼고 준비해둔 멀미약을 먹었음에도 소용없었다.
깨질 것 같은 머리통을 한 손으로 감싸 쥐고, 아침에 말라가 터미널 앞에서 맛있게 냠냠한 뽀라와 초콜라떼가 알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명치를 다른 한 손으로 매섭게 두들겨댔다. ‘멀미-소화불량-구토’ 욕구는 반드시 ‘편두통-군발두통’으로 이어지는 세트상품으로 늘 이어 출몰했다. 그때엔 반드시 이미그란 또는 마이그란 혹은 알모그란이라 부르는 약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처방받아 가져왔기에 마드리드 숙소 보관함엔 있었지만 지금 이 곳엔 없었다. 좀 더 가볍게 다니려고 작은 가방으로 바꿔 온 것이 큰 실수였다. 왜 약을 꼼꼼히 챙기지 않았나!!!! 다 내탓이오 ㅠ. 타이레놀 같은 두통약으론 다스려지지 않는 증상이다. 재수가 많이 없을 때, 장기비행 멀미로 시작한 편두통이 불청객처럼 찾아오곤 했다. 고작 두 시간 버스를 타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어이가 없네(부들부들). 여기도 고산지대라고 고도 차이가 영향을 준 걸까? 그래도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았으므로 가장 먼저 버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론다의 버스 터미널은 상상 이상으로 작았다. 대합실이라 부를만한 공간은 없었고, 버스 세 대정도가 나란히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놓인 벤치가 대합실이자 카페테리아였다. 건물 내로 들어가니 사무실과 화장실 하나가 있었는데, 중국인 단체 관광객 서른 명 정도에 방금 버스에서 같이 내린 승객들이 줄을 서 있는 관계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앉아 발작과 같은 구토 욕구를 잠재우는 것뿐이었다.
이러다 호흡곤란 공황장애로 번지면 더욱 큰일이기에 아프다는 생각 자체를 떨쳐내야 했다. 아파서 명상은 불가하니 웃긴 거라도 떠올리자!! 순간,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 본 영화 <롱샷>의 호흡법이 다시 생각났다. 하나-둘-셋-넷 들이쉬고, 다섯-여섯-일곱-여덟 내쉬고, 다시 들이쉬고 또 내쉬고. 그렇게 영화 속 장면을 되뇌며 호흡하다 보니 떨리는 몸도 차분해지고 식은땀도 잦아들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롱샷> DVD라도 사야겠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지구 상 어디엔가 당신들의 영화를 보고 진정하는 미쇼라는 사람이 있으니 제작진과 배우들은 부디 힘내시길.
어쨌든 이대로는 관광 불가, 숙소로 가야만 한다. 구글 지도를 열어 예약해 둔 숙소로 가는 길을 확인했다. 헤매지만 않으면 론다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13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2011년, 파주에서 열린 도서전에서 <편두통 : 뚜렷한 절망과 은밀한 위로 (지은이 : 올리버 색슨)>이라는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장만했었는데, 책에는 실제로 몸을 움직이며 걷고 뛰면 일시적으로나마 극심한 편두통이 완화된다고 근거자료와 통계를 제시하며 논리적인 설명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떨리는 몸이 진정만 된다면 걷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 이번 숙소는 호스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를 통해 단독으로 혼자 사용할 집을 예약했다. 돌발 여행이 길어져 반드시 세탁을 해야 했고, 잦은 이동에 분명 힘들 테니 비용을 좀 들이더라도 그 편이 나으리란 판단에서였다. 게다가 수도, 중심지인 마드리드보다 임대비도 생활 물가도 훨씬 저렴한 론다였으니 대세에 지장도 없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결과적으로 아주 잘 한 결정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퍼져 쉬어야 할 때였다. “잘했어, 미쇼 씨!”를 마음속으로 백만 번쯤 외치며 숙소에 도착했다. 고맙게도 터미널에서 쭉- 걸으면 숙소였다. 크게 헤매지 않고 심지어 임대자와 대면하지 않고 즉시 셀프 체크인도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 명동처럼 정비된 큰 골목과 상점들에는 중국인 관광객들과 유럽 전역의 노부부 관광객들로 가득 차있었다.
꿈의 도시 론다는 무슨, 그냥 관광지였구나. 숙소 앞 골목의 유명한 레스토랑들은 경쟁하듯 야외 좌석을 깔아 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밥 먹는 사람도 불편해 보였다. 심지어 종업원들은 나를 보자마자 밀착하며 귀에 대고 ‘소꼬리찌~임’이라며 한국말로 호객을 했다. 론다의 대표 음식이 소꼬리찜이라는 건 한인민박에 머물 때 다른 여행자들에게 전해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산골 관광지에 사는 종업원이 아파 일그러진 내 얼굴만을 보고 단번에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아볼 정도면 이곳은 대 관광지 일뿐. 아무리 여행 속 여행, 의식의 흐름대로 왔다고 해도 어쩐지 괜히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산을 그렇게 해쳐 올라왔으니 춥기까지 했다. 아아. 몹시도 힘들구나, 론다여!
그래도 번화가에서 바로 한 골목 꺾어지니 바로 숙소였다. 신기하게 모퉁이를 돌자마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뒤를 돌아보면 열 발자국 앞이 번화가였다. 더군다나 아이리쉬 펍과 현지 맥주 펍이 마주 보며 시끌벅적 난리였음에도 소음이 잦아들었다.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결계라도 있는 걸까? 신비롭구나! 숙소는 리모델을 막 마친 듯 현대적 위용을 날씬하게 뽐내는 4층 건물에 있었다. 0층(한국에선 1층)은 해산물 타파스 전문점이었고 좌측에 커다란 대문이 있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임대인이 보낸 시큐리티 메시지를 확인하고 세대 호출기 옆 작은 세이프티 박스를 열어보니 대문 열쇠와 현관 열쇠가 들어 있었다. 리모델 건물답게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0층 로비에서 2층(한국에선 3층)으로 올라갔다. 날씬한 건물답게 한 층에 한 세대만 있었고, 위층도 정비 중이라 아직 입주인이 없는 듯했다. 3중 보안으로 철컥철컥철컥 돌아가는 자물쇠의 소리를 확인하고 현관을 밀어 열었다. 헌 집 새집 공개하는 TV쇼들에서 자주 나오는 ‘빠라바라빰~ 빠라바라빰~’ 하는 BGM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었다. 한마디로 끝내주는 집이었다. “우와아아아앗!!!!!" 급하게 잡았지만 싸게 잘 예약했구나. 혼자 쓰기엔 참으로 융숭하게 거대한 거실과 주방, 킹 베드와 옷장이 있는 안방, 트윈 베드와 벽장이 있는 작은방이 있었다. 현관과 거실 사이에는 중정이 있어서 하늘의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으로 빨랫줄도 있었다. 커다란 냉장고, 세탁기, 3구 인덕션, 에어컨, 난방을 켜보니 온풍이 나오는 게 아니라 바닥 보일러가 들어오는 듯했다. 2박을 예약했으니 하루는 안방에서 하루는 작은방에서 자야지~
빠르게 짐을 풀어 세탁기 가득 빨래부터 돌려두고 샤워실로 입장. 근데, 어랍쇼? 두통이 잦아들었네! 오호라, ‘꿈의 숙소’ 론다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