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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Jun 12. 2017

남자가 사랑할 때

사랑은 비를 타고 [쯔욘의 영화한잔]



오늘따라 왠지 하늘이 더 맑아 보이고, 늘 보던 가로수는 더욱 푸르러 보인다. 툭 튀어나온 돌 하나에 걸려 넘어질 뻔했던 매일 걷던 그 보도블록도, 언제나 같은 층을 오르고 내리던 엘리베이터의 공간도 낭만적이고 새롭게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이 언제일까? 바로 사랑에 빠졌을 때. 돈 락우드(진 켈리)는 자신의 연인 케이시 셀든(데비 레이놀즈)을 사랑스러운 입맞춤과 함께 바래다준다. 장대비 쏟아지던 그날 밤 그는 그 유명한 <Singin` In The Rain>을 부르며 거리 곳곳을 유영한다. 비를 맞아서 지독한 독감에 걸려도 상관없고, 산성비에 머리가 빠지게 되는 우려도 할 필요 없다. 지금 이 순간은 뇌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도파민에 한껏 취한 체 그저 그 감정을 한없이 즐기기만 하면 될 뿐. '비'라는 날씨는 우리의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측면이 물론 존재하지만 비와 어떤 것들이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소리는 우리의 삶 속에 운율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때론 그 운율이 우리를 슬프게 할 때도 있고 한없이 처량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지금 돈 락우드에게 빗소리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들어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음악이 되는 순간이다.

그처럼 사랑에 빠지면 괜히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이고, 괜히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급기야는 그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고 싶어지게 된다. '사랑에 한껏 취한 순간'이라는 꽤나 추상적이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로망으로 가지고 있는 이 정서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데 '뮤지컬'만큼 탁월한 장르가 있을까? 돈이 케이시에게 향한 그 사랑의 감정 크기만큼 우리는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된다. '남자가 사랑할 때 어떤 감정인 가요?'를 누군가 묻는다면 필자는 어설픈 설명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이 영화를 추천하겠다.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1952년 作)'



작년(2016년) <라라랜드>가 연말의 국내 영화팬들을 뒤흔들고, 골든글러브에서 아카데미까지 활보하면서 과거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컬 영화들이 꽤나 많이 언급이 되었다. 특히 연분홍빛 하늘의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의 탭댄스와 공연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필자의 가슴을 설레게 했는데, 많이 알려진 데로 그 장면 속 세바스찬 동작의 면면들은 <사랑은 비를 타고>의 돈 락우드의 <Singin` In The Rain>시퀀스를 레퍼런스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의 시작을 상징하는 영화 속 남, 여 주연의 첫 번째 군무는 <라라랜드>와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대조적인 측면이 있다. <라라랜드>에서는 실제 매직아워 타임을 맞춰가며 촬영한 장면이라면 <사랑은 비를 타고>는 보란 듯이 세트가 설치된 장소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 시퀀스에서 돈이 부르는 노래 가사말과 그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아름다운 석양을 이야기할 때는 연분홍빛 세트를 가리키고, 먼 산에서 내려오는 안개를 언급할 때는 특수효과 기계를 사용한다. 정원의 오색 조명은 실제 조명장치로 연출하였다. 50만 킬로와트 짜리 별 무리를 만들어 낸다든지, 강풍기로 한 여름의 바람을 만들어 내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뜻이고, 거기에는 뮤지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기반 되어 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인공 적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관객은 감성 충만해지는 것일까? 그리고 뮤지컬 장르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 것인가?

필자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뮤지컬 영화만이 갖는 힘에서 찾는다. 물론 배우들이 직업이 극 중에서 영화배우라는 설정이 있기 때문에 세트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에 이미 인공성이라는 것은 있어도 무방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의 원천을 찾아보겠다.


예술이라는 단어는 왠지 무형의 어떤 힘/능력 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는 개념 같을 때가 있다. 선천적, 타고남 같은 단어와 묘하게 잘 어울리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말로 표현이 안되는 경이로움을 '예술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언급하기도 한다. 물론 예술에는 그런 전지적인 능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경우에 예술의 훌륭함의 원천이 피나는 노력일 때가 많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대부분의 '가무(歌舞)'시퀀스들이 바로 그렇다. 상황에 꼭 들어맞는 음악, 음악과 완벽히 조응하는 안무, 적절한 세트와 배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자연스러워짐에 도달하게 만드는 수많은 연습과 노력. 딱딱 맞아떨어지는 아이돌의 군무처럼 '완벽함'이 주는 어떤 것이 이 영화에 존재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다크나이트>, <인셉션> 등의 영화에서 CG를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그 '실제 적임'의 미학과 같은 맥락 말이다.


 

두번째 질문에서 언급한 <사랑은 비를 타고>의 뮤지컬 영화에 대한 찬미는 이미 스토리에서부터 드러난다. <재즈 싱어>가 처음으로 등장하여 무성영화에서 토키 영화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이루어지는 그 지점을 배경으로 하여, 초기 토키 영화의 성공을 위해 뮤지컬 장르를 탄생시키는 설화 비슷한 것이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돈 락우드, 케이시 셀든, 코스모 브라운(도널드 오코너)이 돈의 저택에 모여 뮤지컬 영화에 대한 토론을 뮤지컬로 보여주는 시퀀스 또한 보란 듯이 세트에서 세트의 이동을 담아내며 이 영화가 어떤 장르인지 재차 확인시킨다. 코스모 브라운이 <Make'em Laugh>를 부르며 춤사위를 보여주는 것도 역시 온 사방이 세트였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으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그의 슬랩스틱은 이 영화가 정확히 어느 위치에(무성영화와 토키 영화의 경계점)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영화라는 예술은 '이것이 영화다'라는 것을 관객으로부터 속이는 것이 미덕인 예술임에도 이렇게 세트의 진실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굉장한 용기이다. 물론 50년대 뮤지컬 영화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맥락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용기로부터 비롯된 감흥과 우아함은 부인하기 힘들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사랑에 빠진 주체는 돈 락우드이고 이것을 엄밀히 말하자면 '남성의 사랑'이 두드러진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정인이 있음에도 당시의 대중들의 희망사항을 위해 언론 앞에서는 린다 라몬트(진 헤이근)와 연인인 것처럼 해야 했던 그는 결국 대중들 앞에서 케이시와의 사랑을 공개한다. 남자가 사랑할 때 필요한 그 '용기'는 뮤지컬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이 영화의 직접적인 방법론의 '용기'와 닮아 있다.


★★★★☆(별 4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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