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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Jun 25. 2017

'령'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는 무서운 인간들

퍼스널 쇼퍼 [쯔욘의 영화한잔]


어떻게든 사유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이 영화의 난해한 면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보는 순간에도, 보고 나서도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괄호 때문일 텐데,  귀신은 실재하는 것인가? 만약 실재하였다면 귀신은 루이스인가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 자신인가? 혹시 둘도 아니라면 전혀 다른 무엇일까? 또 다른 질문을 해보겠다. 크라운 호텔 329호에서 모린이 보았던 것은 누구인가? '령'의 존재였을까? 혹은 잉고(라르스 아이딩어) 였을까? 모린에게 핸드폰 문자를 한 자는 누구일까? 의 질문도 비슷한 맥락에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러한 여러 의문들에 사로잡혀 암호를 해독하듯이 영화를 읽으려다 보니 아무래도 소설을 쓰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추론을 해보았다.


필자는 영화 속에서 령은 실재했고 그 실재한 령은 모린과 사별한 그녀의 오빠 루이스였다고 생각한다. 우선 사건 후 라라(시그리드 부아지즈)의 집에 방문했을 때, 분명히 모린의 뒤쪽에 어슴푸레 비친 형체가 관객에게는 보였고 남자로 보이는 그 희미한 형체는 유리 잔을 깨뜨린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믿는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분명 인간이 아닌 존재였고, 모린 근처에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이 가정이 맞는다면, 그녀에게 자신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존재는 죽기 전 모린과 약속을 했던 루이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분명히 이 영화 속에서 모린 주변에 어느 시점부터 루이스가 맴돌고 있었다고 믿는다. 사실 그의 형체가 나타난 것은 이 장면이 처음이겠지만 그의 존재를 확실히 유추할 수 있는 순간은 호텔에서의 시퀀스부터였다. 329호에서 잉고가 나오기 전 비슷한 동선으로 무형의 무엇인가가 호텔을 나오는 것 같은 움직임이 카메라에 담겨 있다. 필자의 눈에는 이는 분명히 329호에 있던 령의 동선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장면이 모린이 호텔방에서 무엇인가를 본 것 같은 장면 바로 뒤에 있는 것으로 봐서 그 무형의 주체는 모린의 주변을 맴돌고 있던 루이스이고, 모린이 본 것도 루이스의 존재의 흔적 같은 것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령의 흔적을 찾던 저택에서 여자로 보이는 형체를 본 다음날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녀에게 문자를 하기 시작한 주체도 루이스일까? 필자는 그것은 잉고의 행위였다고 본다. 그 발신자는 모린의 주택으로 향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문자들 후에 호텔 329호로 오라는 반 협박의 쪽지를 놓고 간다. 그렇다는 것은 이 호텔의 존재는 모린, 모린 주변에 맴도는 루이스, 문자를 보낸 주체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되는 것이고 모린과 모린이 목격한 루이스의 흔적을 제외하고 또 한 명 그 방에서 나온 것은 잉고였으니 우리는 당연히 지금까지 문자를 보냈던 것도, 모린을 그곳으로 유인한 것도 잉고였음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모린을 키라의 살해범으로 누명을 씌우기 위해 벌인 일들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루이스 혹은 전날 저택에서 체험한 령의 문자였다면 '혹시 나와 연락한 것을 경찰에게 말했나?'라는 문자를 한다는 것도 이물감이 잡히는 부분이 있고 무엇보다 유리잔 한번 떨어뜨리는 것도 힘든(그러니까 실재하는 것과 접촉하는 것도 어려운) 존재들이 핸드폰 같은 것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가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필자는 <퍼스널 쇼퍼>에 대한 관을 정리하는데 몇 가지 가정을 선행한다. 분명히 영화 속에는 실재하는 등장인물들 외에 '령'이 존재하고 있고, 그중에서 모린의 주변을 맴도는 령은 루이스이며 모린에게 문자를 보내고 그녀를 옥죄여 온 자는 잉고이다.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 2016년 作)' 



필자는 <퍼스널 쇼퍼>가 혹은 올리비에 아스야스 감독이 우리에게 사유하자고 제안하는 이야기보다 모린이 살고 있는 세상이 조금 더 눈에 들어왔다. 인간은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만의 영역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방 혹은 집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들고 다니는 휴대폰 속 공간 일 수도 있고, 자신의 내면의 어느 공간일 수도 있다. 그녀가 살아가는 세상은 실존하는 그녀의 집의 문, 도덕적인 장벽이라는 보이지 않는 문 등 개인의 공간을 보호하는 모든 문들을 타인이 손쉽게 침입이 가능한 세상이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문자를 보낸 것은 잉고'라는 가정이 완성되려면 어떻게 그가 모린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냈고 그녀가 런던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녀가 없을 때 그녀의 집에 들어와 카린의 값비싼 금품을 가져다 놓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는 그런 정보들이 없다. 다만 잉고의 직업이 보그지 기자라는 것, 그가 모린과 루이스에 대해 믿든 안 믿는 알고 있다는 것, 그녀와 키라의 삶의 밀접함을 알고 있다는 것 등을 통해 '어떻게 수를 쓰지 않았겠나?'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추측이 조금도 무리하다고 느껴지지가 않는다. 이미 모린이 살고 있는 세상은 당장 보고 싶은 영상을 손쉽게 유튜브로 볼 수 있고, 오만이라는 먼 곳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메신저로 원할 때 즉시 연락이 가능한 세상이기에. 그러니 잉고가 모린의 영역에 침범한 방식들을 굳이 영화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는 게 필자의 입장이다. 그리고 필자의 눈에 들어온 세상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의 곳곳에 흔적을 남기는 존재이다. 런던으로 가는 기차역, 기차 안에서 모린은 자신의 채취가 담겨있는 두 잔의 종이컵과 맥주병을 공공장소의 탁자 위에 그대로 두고 가는데 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행위들을 통해 어쨌든 그곳에는 그녀의 흔적이 남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키라의 집을 수시로 들어오고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니 이미 그곳에도 모린의 데이터는 충분히 흩뿌려져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누군가 마음먹고 모린의 영역에 침범하려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칩입', '침범'이라는 것은 비단 잉고만이 하고 있는 행위가 아니다. 퍼스널 쇼퍼라는 모린의 직업 자체가 이미 키라의 개인 영역의 어느 지점까지 침범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키라의 옷을 하나둘 입어보고 그녀 대신 모델로 촬영에 서는 등 점점 모린은 키라와의 룰을 깨며 암묵적인 금단의 공간까지 침입하기에 이른다. 급기야는 키라의 집에서 명백한 침범의 행위를 자행하는데, 물론 남에게 해를 가할 목적이 있었냐 없었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결국 잉고의 행동과 다르지 않은 모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가 다른 타자만의 영역에 침범한다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어야 하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실제로 잉고처럼 다른 사람 집의 문을 불법의 방법으로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설령 문이 열려있어도 양심과 도덕에 입각하여 들어가면 안 된다는 뜻이다. 만약 이런 일들이 가능하려면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실체가 없는 존재들, 인간과 거의 접촉이라는 거의 불가능하고 서로 해를 입힐 이유가 없는 전혀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존재들, 벽을 통과하고 공간을 날아다니며 유영하는 존재들이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퍼스널 쇼퍼> 속에서 인간과 함께 존재하고 있는 '령'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모린이 사는 세상에서는 실체가 있는 인간들이 다른 사람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고 이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도깨비들이 라쇼몽에서 사라진 것은 인간들이 무서워 서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에서 보인 도깨비들조차 무서워한 지리멸렬한 인간들이 살던 세상은 50년이 지나 바다 건너 서양으로 넘어온 지금의 세상에서도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인다. 미스테릭 한 존재들보다도 더욱 미스터리 해져가는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세 말이다.


★★★☆ (별 3개 반)

'령'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는 무서운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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