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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Jun 30. 2017

인생은 아름다워

박열 [쯔욘의 영화한잔]


정말 이상한 점은 '비극'과 '유머'는 본디 제 짝이었던 것처럼 묘하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미 도가 터버린 코엔 형제의 수많은 영화에서 증명된 바가 있기도 하고,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이준익 감독의 신작 <박열>도 이와 마찬가지로 비극과 유머가 꽤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이 배합의 산출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이러니'일 것이고, 필자가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른 문장이 '인생은 아름다워'인 이유도 이 산출물의 영향일 것이다. 이 영화를 비극으로 본다면 비극 속에도 그들(박열과 후미코)과 관객의 웃음꽃이 만개하니 역설적으로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고, 희극으로 본다면 우리가 본 그들의 마지막이 '참 인생'이었으니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아니한가?


'산다'라는 말은 단순히 숨 쉬고, 먹고, 싸고, 하고, 자고 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종들과 차이점을 두는 인간이라면 언급한 행위 속에 본능을 제어하는 이성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지성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세상의 진실에 남들보다 가까웠던 박열(이제훈), 후미코(최희서)의 3년을 '참 인생'이라고 말한 것이다. 무념으로 보내는 허송세월이 아닌 하루하루가 깊고 치열했던 삶이었기에.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다. 일본 고위층과 매국노를 처단하기 위한 암살작전을 벌이는 오락 영화 <암살>도 있었고,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는 비극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자아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인물의 아이러니를 그린 콜드 느와르 <밀정>도 있었다. 두 영화를 결코 닮은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등장하는 자막(암살), 내레이션(밀정)은 분명히 관객의 가슴속 깊은 곳을 건드리며 애국심을 끓어오르게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필자는 다른 정보 없이 예고편만 보았을 때 <박열>도 같은 속성의 영화일 것이라 판단하였으나 영화를 보고 나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이 영화에는 조금 더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박열(Anarchist from Colony, 2017년 作)'



<박열>까지 보니 확실해진 것은 이준익 감독은 역사 자체보다는 무력한 흐름에 놓여있는 개인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인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출세작 <왕의 남자>에서부터 였을까? 혹은 휴먼 드라마를 표방한 <라디오 스타>에서부터 였을까?' 최근에 오면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 <사도>를 보면, 사도세자라는 조선의 최대 비극적인 역사를 조명하여 영조와 사도세자의 부자관계에 집중하며 '역사도 결국엔 인간사'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마찬가지, <박열> 속 감독의 현미경은 '얼마나 지리멸렬한 시대인가?'보다는 '왜 그들은 그러한 선택을 하였나?'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물론 그 답은 결국 시대가 지리멸렬하기 때문으로 수렴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필자의 의견을 방증해보라 한다면, 다분히 인물 중심의 클로즈업 쇼트들을 언급하겠다. 영화가 시작되면 인력거를 끌고 한창 달리고 있는 박열의 뒷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는 광각렌즈로 왜곡 효과까지 주며 한 프레임의 80% 이상을 보란 듯이 한 인물로 채워 넣는다. 심지어 영화의 화면이 등장하기 전에 자막으로 '모든 인물은 실존 인물입니다'라고 했으니 얼마나 감독이 인물들을 관찰하고 파고들었는지 알만하다.


그런데 인물에 대한 관심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의 아나키스트들에게만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테마스 검사(김준한), 후지시타 교도관(요코우치 히로키) 등의 인물들은 체제를 전복하지는 못하지만 사리분별을 할주 알고 결국엔 후미코의 삶을 이해하지 않던가. '모든 국민은 죄가 없지' <암살>에 나왔던 대사처럼, 일본 전체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조금 더 이성적인 관점에서 파고들어 서슬 퍼런 칼날은 제국주의를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기득권 세력들에게만 향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방법론이 꽤나 옳게 보이는 것이 원래 '인간'이라는 존재는 좋다 와 나쁘다, 흑과 백으로 나눌 수가 없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자행했던 일들은 당연히 지탄받아야 할 일이지만, 일본이라는 국가의 국민이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악'으로 몰아가서는 안된 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이 제국주의 폐해를 설명하는데 가장 강한 설득력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후미코이다. 제목은 <박열>이지만 과거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인물은 왜 이런 선택을 하였는가?'에 대한 설명을 (영화가) 자세하게 해주는 인물은 후미코 단 한 명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천황이라는 허울을 만들고, 인륜을 거스르는 일본의 기득권들로 인해 잃어버린 8년의 세월을 겪은 그녀 말이다. 그런 면에서 <박열>은 '왜 일본인이 한국인(심지어 불량배로 보이는)과 결혼하고 그와 함께 자신의 조국에 비수를 꼽으려 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역사를 최대한 고증한 영화로 볼 수도 있겠다.



 


필자는 <디파티드>를 감상하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인물에 관심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의 작품<성난 황소>, <코미디의 왕>, <디파티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을 보면 모두 상황 속의 인물들이 주된 관심 대상이었다(물론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역작들이 인물에 관심이 있었다). 필자는 스콜세지처럼 점점 더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갖는 이준익 감독을 한국의 스콜세지로 명명해주고 싶다.


서두에 언급했듯 <박열>은 안온함이라는 없는 세상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실존 인물이었던 박열과 후미코의 천진난만함을 그대로 영화의 분위기로 끌고 와 재현하기 위함이었을 텐데,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가 흘러나오며 그들의 순수함과 달콤함이 풍기는 장면들은 흡사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면면들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만큼 움푹 들어간 상처로 얼룩진 인류 최대의 비극 홀러 코스터 속에서 울려 퍼지던 그 음악 그리고 시종일관 미소 짓게 만드는 맑은 유머까지. 그래서일까? 필자가 <박열>을 보고 가장 처음 든 떠올린 문장이 '인생은 아름다워' 인 것은.


★★★☆ (별 3개 반)

인생은 아름다워(비극과 유머는 묘하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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