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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Jul 05. 2017

불통 + 시스템 < 사랑일까?

옥자 [쯔욘의 영화한잔]


불통

말을 똑바로 전달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지리멸렬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하기도 하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기도 하며,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 언어. 그것을 수단으로 행해지는 사실 전달. 소위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니까 미자(안서현)처럼 명랑한 소녀가 애처로울 만큼 몸이 깨지고 피멍이 드는 것이다. 첫째, 미자의 할아버지 희봉(변희봉)은 미자에게 우리가 옥자를 샀다고 거짓 정보를 전달한다. 둘째, 'ALF(비밀 동물 보호 단체)'의 소속원이자 한국어 통역 담당 케이(스티븐 연)는 미자의 말을 의도적으로 오역하여 미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를 자행한다. 셋째, 미란도 그룹은 인류의 먹거리 문제 해결이라는 미명 아래 유전자 조작 동물을 자연발생 동물로 둔갑시켜 홍보한다.


벌써 사실 전달이 세 번이나 왜곡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미자의 뜀박질이 고될 수밖에 없지. 그런데 이 '소통'의 문제는 봉준호 감독에게 꽤나 민감한 사항인가 보다. '통역은 중요하다'라는 대사를 두 번이나 극 중 배우들의 입을 통해 발설하고 심지어 케이의 팔에 문신으로 새기기까지 한다. 평화를 사랑하고 아군, 적군 상관없이 생명을 중시한다던 리더 제이(폴 다노)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통역을 오역한 케이를 다소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로 폭행하기도 하니, 감독은 영화를 떠나서 '불통'의 시대에 대한 일갈만큼은 꼭 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

영화의 초반부 깊은 산골에서의 옥자와 미자의 우정이 꽃피우는 시퀀스에서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편집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려는 미자를 옥자가 자신의 몸을 던져 구한 장면 바로 '뒤'부터였다. 미자와 옥자는 포옹을 하고 귓속말을 하며 마치 자매인 것처럼 정서적 교감을 나누게 되는데, 그 뒤에 바로 붙어 있는 쇼트는 부감으로 찍힌 저녁식사 매운탕 속의 생선이었다. 생(生)과 사(死)를 동시에 붙여놓은 편집. 즉, 미자가 옥자를 구하기 위해 무모한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그녀가 동물보호에 큰 뜻이 있거나, 채식주의자를 표방하는 등의 거창함 때문이 아니라 옥자가 자신의 가족이기 때문인 것이다. 미자는 최초에는 생선도 먹고, 백숙도 먹는 육식을 하는 인간이었다.


이 장면들과 거의 대조적인 영화의 마지막을 떠올려 보자. 마당에 닭이 많은 걸 보니 더 이상 닭을 도살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카메라가 희봉의 등 뒤에서 움직이지 않고 골똘히 바라보고 있어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몇 가지 채소들이 비죽 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왠지 그들은 이제 육식을 삼가게 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옥자>는 소녀 미자가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자행되는지를 깨닫고 채식주의자로 계몽의 로드무비로 보이기도 하는데 필자의 눈에는 이 로드무비의 첫 발자국의 시발점이 '사랑'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둘 사이의 사랑은 당연히 광의적 의미의 사랑이다. '자매애'라고 보면 될 것인데, 사실 옥자가 낭떠러지에서 미자를 구하는 장면에 옥자의 시점 쇼트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부터 옥자는 짐승, 가축이라기보다는 이성이 있는 인간에 가깝게 보인다.


그래서 <옥자>는 불통의 시대를 사랑의 힘으로 헤쳐나가, 분홍빛의 알록달록 함이 잘 어울리는 꽤나 사랑스러운 영화이다.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첫 번째 사랑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고.


'옥자(Okja, 2017년 作)'



시스템

우선 필자가 말하려는 시스템은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다. 미자에게 닥친 비극의 원인이 불통이라면 불통의 원인은 무엇인가?  <옥자> 속의 그 원인은 돈. 즉, 자본주의 시스템일 텐데, 초반에 언급한 희봉의 거짓말도 물론이거니와, 미란도 그룹의 수장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가 세상을 속이는 행위들도 단순하게 말하면 돈 때문이다. '이 시스템이 내부적으로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면 우선 더러운 일을 하는 것은 루시가 아니다. 루시는 늘 고고함과 우아함을 유지하려 한다(그것이 외향적이든 내면적이든). '과학과 자연을 융합한다'라는 꽤나 그럴듯한 당위성을 갖고 사업을 진행하며,  본인 입을 통해 말하듯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이름으로 어쨌든 인류 구원을 목적으로 일한다. 그녀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는 것은 직원들이다. 프랭크(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는 박쥐처럼 루시와 낸시(틸다 스윈튼)의 의중을 살피며 늘 갑의 입장을 유지하려 하고, 때로는 중요한 순간 해결책을 제시하며 마치 그 아이디어는 루시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 마냥 그녀에게 공을 돌리기도 한다. 리액션까지 두루 갖춘 굉장히 정치적인 인간이다.


미란도의 이미지메이킹은 제니퍼(셜리 헨더슨) 담당이다. 리더의 한마디에 알아서 기면서, 루시의 두루뭉술한 한 문장을 정확한 여러 문장으로 나눈다. 누구보다 진정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은 조니 윌콕스(제이크 질렌할)가 아닐까? 자신도 원래 이렇게 바닥이 아니었다고 절규하기도 하지만 결국 옥자의 몸에 추출기구를 꼽는 것은 그였다.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게 구태가 쌓이면 이렇다. 리더의 직접적인 진두지휘에 무엇인가 일들이 진행된다기 보다는 리더의 헛기침 한 번에 의중을 파악하고 신속, 정확하게 움직이는 아랫사람들에 의해 일이 진행된다. 이 우로보로스의 주원료라면 '돈'일 것이다. 아마도 이런 폐곡선은 붕괴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이런 일들과 이런 인간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해 나갈 것이다. 미자같이 용기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불통 + 시스템 < 사랑일까?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옥자>의 세상은 돈의 논리가 가장 최우선시 되는 곳이고 산업 전반에 균열이 일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사회윤리적 가치가 비일비재하게 무너지고 있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그것을 자행하는 자들은(그러니까 가해자 입장의 집단은)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들(피해자들)에게 반쯤 가려진 진실만을 공개하게 된다. 이런 불편한 알고리즘이 돌고 있는 세상이면 당연히 미자 같은 피해자가 계속 나타날 것이고 거의 대부분은 무력하게 당하거나 짧은 시간 분개하는 데에서 그칠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 세상이 상상 속의 전혀 다른 공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네 이야기로 보이는데, 가까운 예로 작년 대한민국을 분노로 가득 차게 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사건도 버젓이 발생했듯이 <옥자>의 세상은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다.


미자는 그녀의 담대한 사랑의 힘으로 옥자를 구해내 다시금 안온한 삶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왜 필자는 이렇게 찝찝한 이물감이 느껴지는 것인가? 자신의 권리를 찾는데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될 정도로 대단한 사랑이 필요 것인가에 대한 허무함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노력해봐야 구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슈퍼 돼지 중 단 두 마리뿐이라는 무력감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결국 미자가 옥자를 구한 직접적인 이유는 금돼지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괜히 처연하다. 간단하게 말해 '돈 때문에 시작된 비극을 돈으로 해결되었다'라는 뜻인데, 필자는 과연 미자가 성장하면서 그녀 발(發) 사랑의 힘이 이 세상에 언제까지 통할까 의문스럽다.


★★★★ (별 4개)

돈 때문에 시작된 비극이 돈으로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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