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죄와 벌
'차카게 살자 - 신과 함께-죄와 벌(Along With the Gods: The Two Worlds, 2017년 作)'
순직한 소방관 김자홍(차태현)은 49일 동안 저승에서 7번(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의 재판을 받는다. 이 과정을 설명하는데 있어 '김자홍이 7가지 재판을 받는다' 보다 '7가지 재판을 받는 것이 김자홍이다'가 더 바람직한 설명일 것이다. 보아하니 귀인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생전의 죗값을 치르느라 재판 전과정을 다 완수하지 못할 공산이 크기도 하거니와 설령 바늘구멍에 실 넣을 확률로 귀인 딱지가 붙었다 한들 재판 과정을 통해 환생에 이르는 자는 이들 중에서 또 극소수이지 않던가. 그러니 재판을 최종 통과한 '귀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 도대체 누굴까?에 방점을 찍는 필자의 선택은 어쩌면 자명한 일일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천륜의 재판에서 이덕춘 차사(김향기)의 변호도 듣기 전에 염라대왕(이정재)은 다짜고짜 유죄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다급하게 자홍의 죄가 성립될 수 없는 당위에 대해 설파하는 덕춘의 변호에 결국 염라는 가슴 미어지는 그날의 진실을 재현한다. 덕춘의 변론 직후 일말의 고민 없이 재현이라는 일종의 즉문즉답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염라. 재빠른 대응법으로 보건대 마치 그는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는 이미 자홍과 수홍(김동욱)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예수정) 사이에 얽힌 비극의 그날 밤의 모든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심지어 염라는 대왕이라는 자가 현세에 내려와 망자의 일에 개입하면서까지 이 재판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데, 저승의 금기를 깨면서까지 그는 대체 무슨 빅 피처를 그리고 있는 것일까?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빅 피처는 분명 자홍의 무사 환생, 저승에 올수 없는 망령 수홍(김동욱)의 예외적 저승 입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원인에 대해 예상가는 바가 있지만(왜 수홍의 꿈이 대법관이었나? 가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그것은 2편에 맡겨두기로 하고 글을 이어 나가겠다.
본론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떠올려야 하는 문장. '염라는 사건의 모든 내막을 알고 있었다.', '염라는 사건에 개입했다.' 실체를 명증이 알고 진행하는 재판. 판사가 사건에 개입하는 재판. 과연 우리는 이것을 재판으로 볼 수가 있을까?
이것은 재판이 아니다. 재판이라기보다는 환생 가능한 자인지 아니지 저울질해보는 최종 관문쯤에 속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이 저울질에 자홍 본인의 역할은 대부분 표백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저승은 이승에서의 일에 대한 재판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가 개입할 권리가 없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의 미래가 단지 얼마나 수완이 좋은 차사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지배받는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가 환생하게 위해서는 사실상 변호사에 해당하는 차사들의 악전고투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그들의 역량의 정도가 자홍의 미래와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결국 이 재판의 승패는 일정 부분 우연에 기인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런데 차사들은 생각보다 투철하다. 물론 자홍과 엮이게 된 차사 대장 강림(하정우)이 다소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에 속하기도 하고 본인의 밝혀지지 않는 과거가 이 사건에 영향을 준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홍 환생 대작전'이 어느덧 현세의 거미줄을 건드리는 수준까지 진행되어 원일병(디오)의 목숨을 구원하는 등 산자의 수명에까지 영향을 주기에 이르는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왜 이렇게까지 위험부담을 앉고 외줄을 타는 것인가? 결국 답은 하나로 추측 가능하다. 본인들의 환생 욕망. 차사들은 1000년 동안 49명의 귀인을 환생시키면 자신들도 원하는 모습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일종의 계약에 얽혀있는 자들이지 않았던가.
이러한 논거를 취합하여 이 재판을 정리한다면, 재판의 한쪽에는 개인적 실리를 위해 망자를 변호하는 차사군단이 있고, 반대 측에는 비슷한 맥락으로 망자를 죄인으로 판결을 내려야 포상을 받는 판관들이 위치하고 있게 된다. 게다가 중심에 있는 전지전능한 재판관이라는 사람들은 손바닥 뒤집듯 판결을 번복하니 보기에 따라선 불공평도 이런 불공평이 없을 것이다. 7개의 재판은 번번이 이런 식이다.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판결을 순식간에 뒤집었던 초강대왕(김해숙)의 재판 같은 경우가 하나의 실례가 될 것이고, 마치 어디 한번 위대한 쇼맨이 돼보라는 듯이 사탕 쪽쪽 빨며 판결의 밀당을 벌이는 태산대왕(김수안)도 또 다른 예가 될 것이다.
한없이 파들어 가면 결국 <신과 함께>의 사후(死後) 세계는 사전(死前) 세계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권한을 소유하거나 쇼맨십이 출중한 이들에 의해 소시민의 행보가 정해지고 마는 일종의 계급주의적 세계가 된다. 이러한 회의적인 관점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차카게 살자'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그래도, 그럼에도, 결국에는 자홍처럼 한평생을 착하게 살아야 최종 판결의 문턱에는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수준은 소방관이라는 정의의 끝판왕 직업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고, 남들 쉴 때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며, 인간과 미물을 가리지 않고 사랑해야 하고, 밤엔 대리운전과 고깃집 알바를 해야 하는 절대적 소시민의 위치에 있어야 겨우 가능해지긴 하지만.
현세에서도 가당치 않은 판결들 때문에 분개해 하는 우리들인데, 저승에서까지 각자의 이익이 뒤얽힌 그러니까 영 재판과 상관없는 것들이 산재해 있는 무너진 법치주의(法治主義)를 목도해야 하다니, 정말 우리는 착하게만 살면 되는 걸까?
★★★ (별 3개)
무너진 법치(法治)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카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