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 럭키(Logan Lucky, 2018년 作)
레이싱 대회 시작 직전 미국의 국가가 울려 퍼진다. 미국민들은 모두 일어나 경건하고 엄숙하게 국가를 따라 부르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마도 자국민이 본다면 가슴 찡한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애국적 쇼트에서 의문을 갖는 점은 왜 편집되지 않는 미국의 국가의 완창을 타국의 국민인 나까지 들어야 되는가?이다. <로건 럭키>가 미국의 전쟁을 다룬 미국주의적인 영화라면 맥락 상의 필요 요소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은 케이퍼 무비를 표방한 이 영화의 외연과는 다소 이질감이 보인다. 심지어 이 대회의 이름은 '코카콜라 600'이다.
국가 완창, 화면 가득 휘날리는 성조기, 코카콜라의 상징까지. 이 영화를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영화라고 볼 수밖에 없겠는데 이러한 영화의 의도를 현시대와 결부시켜 짐작해본다면 두 가지이다. 트럼프주의의 영화 혹은 반(反)트럼프주의의 영화. 후자에 속하는 영화라면 근작 중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더 포스트> 등이 있을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환영받는 앞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로건 럭키>는 전자에 속한다. 즉, <로건 럭키>는 트럼프주의의 자장 안쪽의 영화이다.
로건 가(家)에는 징크스가 있는데, 그것은 혈족들의 신체 훼손으로 발현된다. 형 지미 로건(채닝 테이텀)은 잘 나가는 미식축구 선수였으나 절름발이가 되었고, 동생 클라이드 로건(아담 드라이버)은 이라크 전쟁에 참전에 왼쪽 손을 잃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동생이 군인이 된 것은 형의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뒷바라지하기 위함이었음으로 결국 이 형제는 이라크전에 동시에 엮여있는 셈이 된다. 즉, 왕년의 부시 정부의 영웅들이 현재의 트럼프 정부에 도착한 격이 되는 것이다. 이 궤적에는 오바마는 소거되어 있고 영화는 이들에게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결론적으로 <로건 럭키>는 보수주의적 성향의 현 정부를 옹호하고 있다.
시종일관 바보 코스프레 하던 두 형제는 알고 보니 모든 판을 축조해 놓은 대단한 뇌력을 가진 자들이었고, 무식하게 달려들기만 하는 충동적인 인간에 속하는 두 형제의 캐릭터는 (정확한 증거는 없고 심증만이 영화 속에 드러나지만) 출전 선수 데이튼 화이트(세바스찬 스탠)까지 포섭해 놓을 정도의 치밀함까지 소유한 이성적인 인간 군에 속한 자들이었다. 처음과 끝의 캐릭터 변화만 집중한다면 패배자로 살아가는 줄 알았던 그 시절 영웅들이 알고 보니 진정한 승리자였음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런 면에서 <로건 럭키>는 돌아온 보수주의자들에게 희망을 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들의 계획이 성공했어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게 하는 FBI 여자 요원 사라 그레이손을 배우 힐러리 스웽크가 맡았는데, 무리한 비약이라 비난받을지는 모르겠지만 토미 리 존스의 <더 홈즈맨>의 메리 비 커디(힐러리 스웽크)를 그녀에게 대입시켜 보자. 웨스턴의 성별 전복을 꿈꾸었던 진보적인 여성을 트럼프 시대에 도착한 부시 정권의 영웅들을 감시하는, 그러니까 보수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에 자리매김 해놓았다. 심지어 이들의 고향은 동부 웨스트버지니아다. 그런 면에서 <로건 럭키>는 현 정부에 반대세력의 견제를 인지하라는 일종의 충언(忠言)을 하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충언은 이들의 성공에 조력한 자들이 누구인가를 조명해 보면 밝혀진다. 언급했던 재력가 데이튼 화이트을 포함하여 클라이드 로건과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이 무사히 탈출과 귀환할 수 있게 도와준 수많은 인종의 재소자들과 소방관들이 있었다. 이 또한 현 정부에 대해 과도한 유아독존(唯我獨尊) 적 행위를 지양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충고를 위한 설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존 덴버의 노래로 시작하여,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가 중요한 지점에서 사용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존 덴버는 70년대 격동의 미국을 관통하며 미국의 전통과 복고를 대변하던 아이콘으로 골칫거리 밥 딜런과는 반대의 위치에 있던 인물이었다. 월남전 패망과 워터게이트 사태로 혼잡한 미국에 낙천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으며 홀로 평안을 찾던 사람이었으며 그의 태도는 당시의 보수진영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 노래를 다시 소환하였다는 것은 현재 가시화된 미국 내 문제들을 낙천적으로 견뎌나가자는 정부에 대한 응원으로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 노래를 딸아이의 입을 통해 부르게 한다는 것이다. 현 세대를 넘어 후대에까지 자신의 정치 성향을 전달하려는 강압적 태도를 차치하더라도 영화적으로 봤을 때 이 지리멸렬한 클리셰는 어찌할 것인가? 교도 소장(워든 번즈)의 비상식적인 행동도, 뱅 형제들이 우둔한 행동을 할 것이라는 어설픈 작전 계획이 성공하는 것도, 남의 돈을 훔치면서 절반을 환원하는 기이한 행위도, 사람 헛웃음 짓게 하는 유머들까지. 어설픈 감동과 반전을 위한 여러 설정들에 대한 농축된 불만들은 딸아이의 노래가 기폭제가 되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어떤 영화의 정치 성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비평을 하고 싶지 않다. 아니 해야하는 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영화를 어떻게 잘 결합시켰느냐에 대한 문제는 한 영화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근작 <코코>는 대중성과 자신의 성향 사이의 외줄타기를 성공적으로 해낸데 반해서, <로건 럭키>는 지속적으로 덜컹거리면서 목적지까지 도달하는데 상당히 위태로워 보인다. 이 영화는 영 별로이다.
★★ (별 2개)
정치 성향과 대중성을 결합하는데 철저히 실패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