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받던 날, 환자 역할의 등장인물이 되어버렸다.
작년 7월 첫째 주에 받은 건강검진을 통해 병원 측으로부터 갑상선과 유방의 조직 검사를 권유받았다. 먼저 진행한 갑상선 조직 검사에서는 다행히 암이 아니라는 결과를 받은 상황이었다. 유방 조직 검사도 같은 결과이기를 바라며 검사를 받았다. 출근 시간을 미루고 가장 빠른 진료 시간에 검사를 받고, 검사가 끝나자 간호사는 가슴 전체에 힘껏 붕대를 매어주셨다. 나는 초조하고 두려운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는지 붕대에 내 감정까지도 함께 메어버렸다.
일주일 후 검사 결과를 들으러 내원했고, 내가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의사선생님께서는“암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같이 진료실에 들어간 간호사는 암 진단을 받았을 때의 상황을 묘사한 글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암 진단을 받는 순간에 환자들이 받을 충격을 완화해 주기 위해 마련된 방법 같았다. A4 분량의 글을 가만히 들으며 그 이야기가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 그저 이야기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감정을 실어가며 낭독하는 간호사의 목소리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의사와 간호사 역할을 맡은 배우가 감독이 지시하는 디렉팅에 맞춰서 ‘나’라는 인물이 등장하자마자 준비된 대사를 연기하는 것처럼 이 순간이 마치 오늘 촬영할 장면 같았다. 의사와 간호사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이미 나만 빼고 연기 호흡을 맞춘 후라 그들끼리 너무 유려하고 속도감 있게 장면을 소화하는 듯했다. 낭독이 끝나자 의사선생님께서는 앞으로의 치료 과정을 빠르게 설명해 주셨다. 내면 깊숙이 숨이 가빠졌다. 30분 내외의 짧은 진료 시간 동안 현재 벌어진 일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아무 생각과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내 몸에 암이 있다는 사실, 암 환자가 되어버린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내 정신의 속도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자살로 세상을 떠난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고 애도하느라 거의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긴 시간 동안 나는 힘든 상황에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주로 회피하는 선택을 했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이 너무 무섭고 버겁기 때문에 모든 생각과 감정을 차단하고 마비시켜서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선택들은 무의식적으로 습관이 되어버렸다.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또 무너졌다. 어두운 마음으로부터 어느 정도 내면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무력하게 무너지는 나를 마주하며 고개를 돌리는 선택을 한다.
17살 전까지 ‘자살’이라는 단어와 무관하게 살다가 엄마의 사건 이후로 ‘자살’이라는 단어가 내 삶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그 단어의 무게에 짓눌려 고생했으니 신께서 나에게 다른 새로운 단어를 부여해 주신 것일까. ‘암’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멍해졌다. 내 눈으로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사선생님과 간호사의 안내에 대답을 했지만 어떻게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지 무감각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걸어서 병원을 나왔고, 버스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탔는지 모르겠다. 정신없는 상태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앞으로의 삶에서 ‘암’이라는 단어가 '자살’만큼이나 중요해질 거라는 것. 버스 안에서 내내 입속으로 ‘암’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되뇌었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나만 들릴 수 있게. 내 가슴에 ‘암’이 있다고. ‘암’이 있는 장소가 내 몸이라고. ‘암’과 ‘나’ 그리고 ‘현실’을 자각하기 위해 여러 번 ‘암’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