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암에 대해 알아가는 첫 단계

헤매지 않고 암 센터에 잘 찾아가는 일이었다.

by 김세연

암 진단을 받은 주의 주말에 가족회의를 했다. 아빠는 검사 결과가 잘못 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다른 병원에서 다시 검사받기를 권유하기도 했다. 평소에 나는 등산과 러닝을 자주 하고, 맵고 짠 음식은 멀리했으며 어디서나 숙면을 하는 건강함의 상징으로 여겨졌었다. 아빠는 그런 내 건강에 이상이 있을 리 없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조직 검사 결과지에 명백히 ‘악성’ 신생물이라고 나와있는데도 아빠는 그 사실을 의심했다. 나는 그런 반응이 낯설지 않았다. 사람이 충격적인 일을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현실 부정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날, 우리 가족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반응이었다. 이미 20여 년도 지난 일이지만, 우리 가족의 몸과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반응이 곧바로 소환되었다.


치료 시작부터 앞으로 계속 내 몸에 대한 기록이 남을 것을 고려해 신중하게 병원을 선택해야 했다. 조직 검사를 받은 동네 병원에서 연계해 준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결정하면서 병원과 유방외과 의사선생님의 정보를 추렸다. 8월에 첫 진료 날짜를 예약하고, 날짜가 다가올수록 조금씩 걱정이 더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장례식과 의학 드라마 속에서 본 병원 풍경은 늘 긴급하고 정신없었다. 병원 의료진과 환자 그리고 보호자들이 쉴 새없이 바쁘게 오고 가는 병원에서 진료 당일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진료 예약 시간에 맞게 암 센터를 잘 찾아가는 것이었다. 병원 주차장에서부터 속으로 ‘암 센터, 암 센터’를 되뇌며 걸었다. 막상 암 센터 앞에 도착하니 ‘내 인생에서 암 센터에 들어가는 일이 생길 줄이야. 앞으로 이곳을 자주 드나들게 되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기분이 이상했다.


타 병원에서 받은 조직 검사 결과지를 바탕으로 의사 선생님께서 유방암의 치료 및 수술적 치료의 종류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유방암의 치료에는 수술적 치료, 방사선, 항암치료, 호르몬 치료, 표적치료 등이 있고, 그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수술적 치료다. 호르몬과 HER2 수용체에 따라 수술을 먼저 하고 항암치료를 하는 경우, 항암치료를 먼저 하고 나중에 수술을 하는 경우로 나눠진다. 사람마다 가진 호르몬과 HER2 수용체에 따라 치료 순서도 다르다. 초진을 받는 날, 나는 수술 계획 수립을 위해 필요한 전체 검사를 받게 되었다. 전신마취를 위한 전신검사, 타 장기 전이 평가를 위한 검사, 유방 및 액와 수술 계획 수립을 위한 유방 정밀검사 그리고 나는 암에 대한 가족력이 없고 40대 이하로 젊은 나이에 속하는 암 환자의 경우라 추가로 유전자 검사도 진행하기로 했다. 오후에 병원에서 가야 할 곳이 14곳이나 되었다. 원무과로 가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산정특례(중증)으로 신청 및 등록되는 것을 시작으로 9개의 검사를 받았다. 초음파, 영상의학과, 심전도실, 핵의학과, MRI 등 여러 과를 돌아다니며 채혈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몸을 촬영하니 이미 밖은 저녁에 되어 있었다.


2주 정도 지나서 내원했을 때, 나는 호르몬 양성, HER2 음성으로 결과가 나와 수술을 먼저 진행하게 되었다. 더불어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 이후 항암 치료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검사인 온코프리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다. 검사 대상자의 조건이 암 기수 1~2기, 호르몬 양성, HER2 음성일 경우인데, 나는 호르몬과 HER2에서 대상자의 조건의 충족되었고, 수술로 제거한 암을 검사하여 기수가 1~2기로 나오면 온코프리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하셨다. 유전자 검사 결과에서는 돌연변이 가능성 없음으로 확인되었다. 만약 돌연변이 가능성 있음으로 결과가 나왔다면 추후에 암 진단을 받지 않은 유방까지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번 수술에서 양쪽 유방 모두를 절제해야 했다. 다행히 돌연변이 가능성은 없어서 암이 있는 오른쪽 유방만 전체 속절제와 동시복원, 왼쪽은 동시복원되는 오른쪽 유방의 크기에 맞춰 확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암이 있는 부분만 제거하는 부분 절제 수술이 가능한 크기의 암이지만 암이 유두 근처에 있기 때문에 부분절제가 아닌 전체 속절제와 동시복원이 될 것이고, 동시복원 수술은 성형외과와 연계하여 진행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성형외과에 갈 일이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큰 병원의 성형외과에서 수술 내용을 전해 듣고 있으니 삶이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앞으로 얼마나 더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인지 생각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수술 시 암이 유두에 많이 근접해있다고 확인되면 암을 제거하면서 유두까지 함께 제거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다. 설명지에 한쪽 가슴만 있는 이미지가 어쩌면 내 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겁이 났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의사선생님께서 짧은 순간에 전달하시는 많은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는 나의 긴장감과 집중도가 훨씬 더 높았기에 다른 감정이 느껴질 틈이 없었다.


수술 날짜가 3주 후 9월 둘째 주로 잡혔다. 초진 날짜와 검사 결과를 듣는 진료날을 기다리는 동안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내면에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일렁였다. 감정에 압도되어 멍해지다가도 다시 걱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어떠한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에게 예정된 병원 일정을 잘 소화하기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가기 전에 의사선생님께 물어볼 것을 적어가고, 진료가 끝나자마자 진료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수첩에 기록했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내가 혹시라도 놓친 부분이 있을까 싶어 진료 기억을 복기하고, 모르는 내용을 찾아서 알아보려고 했다. 지금까지 내 삶과 무관했던 산정특례, 암 센터, HER2, 온코프리와 같은 단어도 여러 번 듣고 찾아보니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내 몸과 유방암에 대해 알아가려고 할수록 걱정과 두려움에 빠지기보다는 정신이 또렷해졌다. ‘앞으로 유방암이라는 질병에 대해 더 알아가게 되겠지.’ 수술까지 남은 3주 동안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상을 잘 살아내야겠다고, 그러고 나서 첫 진료 때처럼 헤매지 않고 씩씩하게 암 센터에 찾아가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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