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몸이 되어버린 수술 다음 날

피를 보며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by 김세연

수술 하루 전날 입원을 했다. 수술을 앞두고 앞으로 펼쳐질 내 몸의 변화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수술 전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성형외과와의 협진 수술이라 팔이 아닌 발에 수액을 맞게 되었고, 맞은 장소에서부터 병실까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환자 이동팀 직원에 의해 나를 태운 휠체어가 나아갔다. 뒤에서 밀고 있는 직원이 인지되지 않을 만큼 유유히. 어디론가 흘러가는 듯했다. 환자 이송 동선에 따라 휠체어는 빠르게 이동했다. 처음 가보는 낯선 환자 이동 동선 통로 때문인지 마치 미로를 탐험하면서 탈출구를 찾는 기분이었다. 담당 간호사는 폐 기능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호흡 기구를 전달했다. 전신마취를 하면 폐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에 수술 후 호흡 연습을 해줘야 했고, 간호사님이 알려주시는 사용법에 따라 날숨으로 노랑, 빨강, 파랑의 순서로 공을 올리는 기구를 힘껏 불었다. 내일 수술이 끝나면 내 숨으로 이 가벼운 공들을 들어 올릴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수술 전날은 유방외과 병동에 입원하고, 수술 후 성형외과 병동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하룻밤만 보내게 된 5인 병실 안에서는 아내를 간병하는 남편의 애타고 지쳐서 한탄하는 소리가 절절 흘렀다. 나이가 많고 상태가 좋지 않은 아내는 코에 삽입된 호스가 답답한지 스스로 잡아 빼는 바람에 남편이 간호사를 계속 호출하게 했다. 잡아 빼는 행동이 반복되자 간호사들은 더 강력한 말투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주의를 줬다. 남편은 아픈 사람을 대변해 줄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아내가 느끼는 아픔의 고통이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옆 침대 환자의 간병인에게 아내를 부탁하고 나가서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웠다. 새벽에 잠깐 병실에 들린 아들에게 간병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간병하기에 자신의 나이도 많아 체력적으로 지치고, 식사도 제대로 못했으며 요양원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말에는 힘듦이 묻어 나왔다. 아들은 몇 분 이내에 다시 일 때문에 가봐야 한다며 아버지를 보채고, 그 짧은 사이에 아버지는 상황에 대한 막막함과 자식에 대한 아쉬움을 잠시나마 비췄다. 그 노부부 옆 침대에 있는 환자는 조선족 간병인이 돌보고 있었다. 간병인은 그 남편과 간병인 구하는 일이나 요양원 정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TV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했던 조선족 특유의 말투를 가까이에서 듣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5인 병실의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영화 세트 속에서 나라는 인간을 연기하고, 조선족 간병인과 아내를 간병하는 남편이 배우로서 그들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커튼으로 나눠진 공간에서 오로지 들리는 목소리에 의해 상황을 파악하다보니 청각적 감각이 최대치로 살아났다. 나는 할 일이 없었고, 영상도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누워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술 전날의 긴장감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다. 처음에는 큰 소리로 오고 가는 대화소리가 방해가 되어 거슬렸지만 계속 듣다 보니 문득 ‘만약 삶의 끝을 바라보는 상황이 되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 옆에는 누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허탈해졌다.


내 수술 순서는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수술받는 사람의 수술이 끝나면 12시와 1시 사이쯤 내 차례가 될 것이었다. 수술 몇 시간 전 암세포가 있는 주변에 색소 역할을 하는 약물 주사를 맞았다. 수술 때 암세포가 림프절을 따라 다른 기관에 전이되었는지 확인하는 감시림프절 생검술이 진행되는데, 주입된 약물이 림프관을 따라 감시림프절로 흘러들어 머무르면서 일종의 염색을 하면 촬영 화면에 감시림프절이 뚜렷이 나타나게 된다. 오전에 주사를 맞고 병실로 돌아와서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 몇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혹은 천천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사이에 놓여있던 것 같다. 12시가 되자 수술 이동팀 직원이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수술실로 향해 옮겨졌다. 수술실 입구에서 아빠와 언니랑 인사를 하고 혼자가 되었다. 침대에서 본 수술실 천장은 빠르게 지나갔다. 여러 통로를 지나서 나는 점점 더 차가운 공간으로 가고 있다. 수술받을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대기하는 공간이 있었고, 내 옆에 제각기 다른 사유로 수술을 앞둔, 본인의 수술실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의료진이 묻는 생년월일에 답한 사람들은 44년생, 56년생이었다. 나보다 곱절의 나이인 사람들 사이로 내가 누워있다. 대기 공간에서 옮겨져 여러 수술실의 문이 있는 긴 복도를 지나 마침내 내가 수술받을 수술실로 들어갔다. 차갑고 시린 공기. 내가 입장하는 동시에 8명의 의료진이 내 몸을 에워싸고 등과 팔 그리고 다리와 이마에 기구들을 붙이고 채웠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만 보던 수술실 공기와 조명 그리고 파란 옷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내 옆에서 움직였다. 입과 코에 씌워진 플라스틱 마스크 사이로 호흡을 몇 번 들이쉬고 내쉬자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체감상 몇 분 지난 것 같았지만 수술 시간은 6시간을 넘겼다고 했다. 깨어나니 하체에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팩이 덮여있었고,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ㄷ자 팩이 내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계속 다시 잠에 드는 나에게 의료진은 잠에 들지 말라고 나를 깨웠다. 나에게 아픈 곳이 있는지 물었고, 겨드랑이가 아프다는 나의 대답과 동시에 여러 명의 의료진이 진통제를 들고 달려들어 조치를 취했다. 회복실 침대에서 입원 병실로 옮겨지는 동안에도 자꾸만 잠이 들었다. 병실에 도착하니 다른 환자들의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음식 냄새에 속이 울렁거려 정신이 들었다. 들것에 미끄러져 병실 침대에 안착된 나는 수술 전날 병실 침대에서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몸의 사람이 되어있었다. SF 영화에서처럼 양쪽 옆구리와 오른쪽 겨드랑이에 호스가 삽입되어 있고, 호스와 연결되어 내 피를 받는 배액관이 양쪽에 달려 있었다. 겨드랑이는 뻐근하고 온몸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지난 20년 동안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마다 나는 내 몸에 아예 피가 흐르지 않는 인간이지 싶었다. 극도로 우울한 감정에 빠져 있었을 때에는 내 몸에 어두운 검은 피가 흐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옆구리에 꽂힌 호스를 통해 내 몸에 붉은 피가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무섭기보다는 ‘나도 정상적으로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구나.’하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안도감 때문인지 진통제 때문인지 모르게 그날 밤은 계속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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