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누비며 걷고 또 걸었다.
수술이 끝난 날 저녁부터 나는 혼자 걷거나 밥을 먹지도 못하게 되었다. 두 팔의 움직임이 불편해 무언가를 들거나 옷을 입고 벗기도 어려웠다.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불가능한 어린아이가 되어 언니의 간병을 받게 되었다. 모든 행동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처럼 나는 한순간에 가장 미숙하고 여린 존재가 되어버렸다. 갑자기 마주한 몸의 변화가 당황스러웠지만 이런 내가 여전히 나라는 사실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수술 직후 5일 동안 언니가 병실에 상주하며 도와줬다. 5인병실 한편에 마련된 내 침대와 간병인 접이 침대에서 하루 종일 둘이 붙어 지내는 시간이 청소년 시기 때 언니랑 둘이서만 살던 시기를 떠올리게 했다. 혼자 먹기에 양이 많은 병원밥을 언니와 나눠먹고, 자기 전에 나란히 마스크팩을 붙이며 잠을 청했다. 3일 정도 지나 몸의 움직임이 조금씩 나아지자 언니가 머리를 감겨줬다. 환자 샤워실의 거울을 통해 내 눈으로 수술 부위를 처음으로 보았다. 몸에 호스를 꽂고 배액관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SF 영화 속 크리처 같았다.
새벽에 간호사는 진통제를 투약하거나 배액관에 담긴 피를 확인 및 제거하러 들렀고, 그때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양쪽 옆구리에 꽂힌 호스와 배액관 때문에 반듯하게 누운 차렷 자세로 자야만 했다. 병원 침대는 딱딱하고, 며칠이 지나자 침대에 닿는 엉덩이와 꼬리뼈 부분이 짓무르기 시작했다. 옆으로 돌아눕고, 몸을 뒤척이며 잘 수 있는 간단한 행동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간호사의 방문이나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의 상황으로 인해 나는 새벽에 자주 깼고, 뜬눈으로 병실 천장과 내 아래 간이침대에서 자고 있는 언니를 바라보았다. 언니는 안대를 착용하고, 좁은 침대에서 팔이 떨어질까 두 손을 깍지 낀 채 자고 있었다. 깍지 낀 손이 간절해 보였다. 돌보는 사람부터 잠을 잘 자고 좋은 몸 상태를 가져야만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다는 굳은 의지가 온몸에서 드러나는 듯했다. 그렇게 자는 모습이 안쓰럽기보다는 귀여웠고, 장하고 대견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언니는 간병하는 며칠 동안 병원 내 식당과 카페에서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해 보고 먹어 보는 일로서 자기만의 작은 즐거움을 찾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방법이 어쩌면 지금까지 그녀의 삶을 지탱해 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삶의 기술이란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보다 3년을 먼저 산 사람이 이렇게 성숙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라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는 헌신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일까? 만약 언니가 아프면 나도 같은 헌신을 선뜻 내보일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헌신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새벽, 곤히 잠든 언니를 바라보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수술한 지 6일째 되는 날 왼쪽 배액관을 제거했고, 몸에 있던 큰 혹은 떼낸 기분이었다. 한쪽만 제거했을 뿐인데도 몸의 움직임은 훨씬 수월해졌다. 이때쯤 좁은 간이침대에서 지내던 언니의 어깨와 허리가 아파지기 시작했고, 아빠와 둘이만 지내던 조카에게도 엄마의 자리가 필요했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행동이 조금씩 늘어날 만큼 몸이 회복되고 있었기에 남은 입원 기간은 혼자 지내다가 주말에만 언니가 병실에 방문하기로 했다. 나는 원래 혼자 있기를 잘했고, 이번 기회에 병원 생활의 단조로움이 주는 평안함을 누리자고 생각했다. 3번의 식사가 정확한 시간에 내 침대로 전달되고, 나는 그것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됐다. 한식 외에 별식 메뉴를 전날 선택하는 것은 하루 중 가장 즐겁고 중요한 미션이었다. 밥과 약을 먹고, 수술 부위 드레싱 및 LED 치료, 담당 의사 선생님 또는 레지던트의 회진 외에는 나에게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 기분이었다. 다행히 내 침대는 창문 바로 옆에 위치해서 마음껏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음악을 들었고, 병실 모니터 화면 뒤로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야구 경기를 시청했다. 내가 있는 곳은 병실 한 칸 침대 위지만, 상상으로는 야구장 관중석에서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다. 하루 동안 할 일이라곤 병원 내 카페에 가서 에그타르트를 사 먹어보는 일이 전부였다. 커피와 에그타르트를 눈앞에 두고, 온전히 맛에 집중하여 음미하다 보니 이렇게 먹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통제 투약 양이 적어져서 점점 링거 거치대 없이 이동이 가능해졌고, 오른쪽 배액관의 피의 양도 줄어들자 걷는 게 한결 나아졌다.
나는 추석 연휴와 이후 일주일을 더 병원에서 지냈다. 휴일과 주말의 병원은 기이한 고요함이 감돈다. 입원한 환자 몇 명을 제외하고 한산한 병원을 산책하는 일은 유독 마음이 편안했다. 저마다의 아픈 이유로 북적대던 풍경은 모습을 감추고, 다음날의 환자를 맞이하기 위해 잠시 침묵과 휴식에 돌입한 것 같다. 첫 진료날 암센터를 못 찾을까 봐 긴장했던 나의 모습은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간호사가 설명하는 장소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나는 병원 내부를 수십 번 산책하면서 병원의 대략적인 구조를 알게 되었다. 암센터와 수납창구를 여러 차례 오가고, 계단을 통해 다른 층을 구경 가보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산책하는 복도인데도 몸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졌다. 벽에 걸린 예술 작품은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듯했고, 텅 빈 복도에 놓인 청소 도구는 이상하게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두운 화장실과 비상구에서 들리는 미세한 소리에도 무섭지 않았다. 병원에서 환자로 있는 나는 어디에서나 보호받는 상태이기 때문일까. 병원은 나쁜 병과 유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해 주는, 아픈 존재를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곳이라 나는 무섭지 않았을까.
나는 아무도 없는 병원 복도를 패션쇼 런웨이라고 상상하며 걸었다. 벤치에 관객들이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고, 나는 환자복으로 디자인된 의상을 입은 채 앞만 보며 당당하게 걷는 것이다. 산책을 하면서 다양한 증상의 사람들을 봤다. 매일 보던 얼굴들, 새로 보는 얼굴들. 코에 호스를 끼고 걷는 남자, 엄마랑 난간을 잡고 애쓰며 걷는 연습을 하는 소년, 새하얀 얼굴과 머리카락으로 휠체어에 늘어진 여자, 알록달록 어린이 환자복을 입고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작은 몸에 주삿바늘을 끼고 엄마 품에 안겨 잠든 아기. 허리에 보호대를 차고 살살 걷는 어르신. 저마다 아픔의 종류나 상태가 다르기에 아픔을 함부로 짐작하면 안 되지만, 나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던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을 삼았던 것 같다. 나는 그래도 호스 없이 숨을 쉬고, 휠체어 없이 튼튼한 다리로 걸을 수 있고, 허리를 반듯이 세우며 걸을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상황의 나에게 허락된 위안이었다. 동시에 나는 산책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의 마음을 읽었던 것 같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이상 없이 온전한 상태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서로 스쳐 지나가는 눈빛 속에는 각자 아픔을 딛고 빠른 시일 내로 건강하게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9월 둘째 주에도 여름이 끝나지 않고, 날이 후텁지근했다.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더워서 저녁에 잠을 설쳤다. 산책은 주로 병원 안에서 했다. 입원 10일 만에 드디어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저녁 산책을 했다. 덥고 습한 날씨와 몸의 움직임이 불편한 후에 맛본 시원함이라 더욱 달게 느껴졌다. 주차장으로 가는 언덕을 걸어 올라가서 처음으로 불 켜진 병원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봤다. 저녁에 병원은 저런 모습이구나. 내 병실은 어디쯤일까. 내 앞으로 내 그림자가 보였다. 밝은 병원만큼이나 내 그림자도 밝았고, 나는 혼자가 아닌 듯했다. 저녁에 조용한 병원에서도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바닥 청소를 하는 사람,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진, 병원 안전 요원, 지하 편의점에 아르바이트생, 교대로 근무하는 간호사들, 병실 청소 담당자. 아침 8시가 되자마자 병원은 병원 관계자와 환자 그리고 보호자들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병원에 있으면서 이 커다란 기관이 존재하고 운영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 내가 이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그 혜택을 내가 누리고 있다는 것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앞으로도 계속 치료를 하고 암의 재발을 조심하며 살아야겠지만, 이번 입원 기간 동안 느낀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감사함을 기억한다면 모든 게 다 괜찮을 것만 같다. 다시 수술하게 되거나 암이 재발한다고 해도 나는 괜찮고, 다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고, 오랜 시간 나만의 어두운 동굴 속에서 허우적댔다. 심지어 내 몸속에서 자란 암까지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질문,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 질문이 병원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자꾸만 떠올랐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 질문은 세상을 향한 원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불행과 불운의 늪에 빠져 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참담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마음이 또다시 어두운 동굴을 향해 가려고 할 때마다 병실을 나와 걸었다. 걷고 또 걸으며 마음을 전환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현재 상황을 긍정하게 만드는 것을 생각하려고 애썼고, 그중에서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사람이었다. 내 곁에는 항상 나와 함께하고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늘 내 곁에 있어서 너무 당연시되었던 사람들의 존재를 다시금 알게 되었고, 그들의 마음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한순간에 38살 어린아이가 되어 2주 동안 병원 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 마음들을 절실하게 확인했다. 의료적인 시술로 암세포를 제거하고 치료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앞으로 더 건강하고 잘 살게 하는 일은 어쩌면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몇 달, 몇 년이 지난 후 이때의 시간이 나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내 몸에 생긴 수술 부위 상처처럼 천천히 옅어지게 될까? 상처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더라도 병원에서 만났고, 떠올렸던 고마운 얼굴들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