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겨우 한 고비를 넘은 것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날부터 다음날까지 하루 온종일 잠을 잤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2~3일이 지났는데도 멍하게 지냈다. 입원을 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지, 또 얼마나 달라지지 않았을지 생각했다. 그럴수록 애써서 더 자주 시계와 달력을 보려고 했다. 한 시간 단위가 금방 지나가고, 오전과 오후는 금방 사라졌다. 저녁이 찾아오면 나의 하루도 끝이 나고, 몸을 생각해서 더 이상 늦게 잠드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한다. 곧 내일이 찾아올 테고, 그저 새로운 하루를 맞는 설렘만을 마음에 품고 잠을 청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누워서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생각과 걱정이 피어오른다. 만약 암이 재발하거나 치료 과정 중 잘못돼서 나에게 살아갈 날이 진짜 얼마 남지 않는다고 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어서야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될까. 그때에도 나는 그저 가만히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까.
수술이 끝나면 큰 산을 넘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겨우 한고비를 넘은 것이었다. 퇴원 후 첫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다음으로 진행하게 될 치료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수술을 통해 제거한 암은 1.5cm 크기의 1기 후반으로 확인되었다. 다행히 암의 기수까지 항암 치료 유무를 결정하는 검사 대상 조건에 충족하여 검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2주 후 검사 결과를 들으러 내원했을 때, 최대한 마음을 비우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때까지 진료 내내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암의 크기가 작고, 기수도 낮을 것으로 예상되어 당연히 항암 치료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안심이 되는 동시에 반대의 결과를 받게 되는 상상으로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보다 더 긴장이 되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의사 선생님의 안타까운 표정이 이미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항암을 하게 되었어요.”라는 말에 온몸의 신경과 피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암의 크기와 기수로 봤을 때 나는 당연히 항암 치료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술 때 생검을 통해 확인한 1개 림프절의 미세 전이와 어린 나이에 속하는 암 환자라는 이유로 항암 치료를 해야 하는 결과가 나왔다. 미세 전이의 이 ‘미세’가 어쩌면 나중에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었다. 이 미세 전이가 잘못될 경우 젊은 암 환자의 전이 속도는 빠르기 때문에 여러 변수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항암 치료가 필요했다. 미세라는 단어가 그토록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은 처음이었다. 진료실을 나오면서 나는 병실에서 항암 치료를 하던 다른 환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민머리의 환자들은 낯설었고, 나에게 일어날 일이 아닐 거라 믿었던 과거의 내가 우스워졌다. 다른 아픔보다도 탈모로 인해 마주하게 될 외모의 변화가 가장 두려웠다.
항암 치료 계획이 세워지면서 혈액종양내과가 우선이 되었고, 산부인과 진료도 봐야 했다. 10월 한 달 동안 이 2개의 과를 비롯해 유방외과, 성형외과, 재활의학과까지 5개과의 진료로 인해 일주일에 2~3번은 병원에 갔다. 항암 병동, 항암 치료 부작용, 난소 기능 저하와 조기 폐경, 양팔의 재활운동에 대한 설명이 쏟아졌고, 빠르게 파악해야 했다. 일주일 사이에 새롭게 펼쳐지는 여러 일들을 마주하면서 그곳에 내 몸이 그저 있는 것인지 내 정신도 함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병원에서 휘몰아치는 순간들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혼자가 되자 마침내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과거를 회고하면서 미래의 나는 잘 그려지지 않았다.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운전하는 동안 자주 생각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고, 그때마다 자주 하늘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나조차도 나를 위로할 수 없을 때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