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너무 이르게 떠난 친구들을 생각한다. 너무 빨리 별이 되어버린 친구들. 그리움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와 나는 자주 같은 자리에 멈춰 선다. 이상하게도 늘 밝고, 열심히 살고, 활기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살던 친구들만 먼저 데려간 것 같아서. 그들이 무언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에서 충분히 애썼으니 이제는 그만 고생하고 쉬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얼마 전, 갯벌에서 고립된 70대 노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끝까지 생존수영으로 버티다 생을 마감한 30대 해양경찰관의 기사와 영상을 보았다. 화면을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놓을 줄 알았던 사람들의 삶은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멈춰야 했을까. 남겨진 우리는 비통함과 슬픔을 끌어안고 서 있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스쳤다. 만약 영혼의 안식처라는 곳이 있다면, 이들에게 평온과 자유를 건네준 건 아닐까. 더는 버티지 않아도 되는 자리로.
윤회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삶에도 순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막 태어난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에 던져지듯, 남겨진 우리는 아직 초반의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프고, 흔들리고, 넘어지면서 비로소 배워야 하는 단계. 그래서 지금의 삶은 견디는 시간이고, 통과해야 할 과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반면 먼저 떠난 친구들이나, 바다에서 타인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놓았던 해양경찰관을 떠올리면 다른 감각이 스친다. 이미 한 번, 혹은 두세 번의 삶을 지나며 충분히 배우고, 의롭게 살고 지혜롭게 자신의 몫을 다해낸 존재들 같다는 느낌. 만약 신이 있고, 영혼이 머무를 안식처나 천국 같은 곳이 있다면, 더 머물게 하지 않고 조금 일찍 데려가 평온하게 쉬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남겨진 우리는 이 자리에서 더 살아내고, 더 부딪히고, 더 깨달으며 배워가야 하는 쪽에 가까운 것 같고, 먼저 간 이들은 이미 그 시간을 지나 다른 결의 평온에 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딘가에는 그런 질서가 있을 것 같다는 감각, 삶을 먼저 통과 한 이들이 잠시 쉬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남는다.
그래서 그들은 떠난 사람이 아니라, 조금 앞서 걸어간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면과 영혼의 어딘가에서 말없이 등을 보이며 가르쳐주는 존재, 아직 이쪽에 머물러 있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스승처럼.
2월 3일. 내 생일이자, 너의 기일이다. 이렇게 같은 날로 남아버린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네. 이상하지. 시간이 흐르긴 했는데, 어떤 순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너를 처음 만난 건 내 친구의 여자친구로였고, 그때는 이렇게까지 오래 이어질 인연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어느새 16년이 흘렀고, 우리는 서로 마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어 있었네.
이제는 네 얼굴을 직접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데, 그럼에도 너는 내 시간 안에서 계속 살아 있다. 사라졌다기보다는, 그냥 다른 방식으로 곁에 있는 느낌에 가깝다. 문득문득 떠오르고, 어떤 날에는 유난히 또렷해진다.
네가 하늘로 갔던 그날, 너를 보내는 자리에서 나는 혼자 마음속으로 하나를 정했다. 내 생일에는 너를 빼놓지 않겠다고. 그날만큼은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크게 말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 다짐만은 꼭 지켜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 매년 내 생일마다 네 몫의 음식을 같이 나눠 먹고, 술 한잔도 따르려고 한다. 우리가 늘 그랬듯이. 특별한 이유 없이 웃다가 "아, 좋다", "행복하다" 이런 말을 괜히 반복하면서, 별거 아닌 이야기로 밤을 넘기던 그 시간처럼. 가끔은 가족 말고 우리 부부 보고 싶은 날이 있다면 그날은 내 생일에 와도 된다고, 술 한 잔 하며 잠시 머물다 가도 된다고, 나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너를 부른다.
너의 장례식 날, 나는 씩씩하게 보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몸이 급격히 나빠지는 걸 견디며 얼마나 아팠을지, 그 시간을 혼자 버텨냈을 너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남편과 아들을 두고 떠나야 했던 마음은 또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럼에도 너는 이어지고 이어져 내 첫째의 태몽을 대신 꿔주었고, 네가 하늘로 가던 날에는 내 아들의 꿈속에 말없이 너의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너의 모습이 남았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끊어짐이 아니라 이어짐처럼 느껴져, 슬픔 속에서도 나를 오래 붙잡아 주었다.
지난 1년 동안, 애써 괜찮은 척 마음을 다잡으며 살아가는 네 신랑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많이 아파했다. 혼자 이겨내려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를 넘기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워서, 차마 말을 얹지 못하고 그저 곁에 머무는 쪽을 택했다. 너는 훨훨 날아가버렸지만, 여전히 너를 부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서 우리 마음 한 켠은 자주 저려온다.
그래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네 신랑, 정말 잘 버티고 있다. 네 몫까지 품고, 흔들리면서도 삶을 놓지 않고 있다. 애써 강한 척하지 않고, 아플 때는 아프다고 말할 줄 알게 된 것도 그 사람 나름의 용기 같아서, 나는 그게 참 고맙다. 눈물을 숨기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 덕분에, 우리도 그 곁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었다.
네 아들은 이제 학교에 들어간다. 누구보다 밝고, 예의 바르고, 잘 웃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함께할 거다. 말이 많지 않아도, 약속처럼. 네 아이가 자라는 시간 곁에, 네 신랑이 지내는 하루 곁에. 우리는 다 알고 있고, 함께 지켜보고 있다. 잘되길,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없이 응원하는 쪽에 서 있기로 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자 너의 기일이다. 너를 떠올리며 생일상으로 맞는 음식을 먹고, 술 한잔을 올리고, 조용히 너를 기린다. 그립다는 말이 여전히 목 끝에 남아 있지만, 오늘만큼은 웃으며 너를 떠올려본다.
별이 된 너에게, 잘 쉬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