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선물

by 빼어난 별

한 달 동안 나는 알면서도 답이 있는 문제 앞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답은 분명히 알고 있는데 감정에 자꾸 휘둘렸고, 그 감정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듯 몰려오며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


프리랜서의 일, 글쓰기, 경제공부, 재테크, 독서, 육아, 집안일, 이 모든 것을 병행하며 내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삶은 이미 나에게 기본값이 되어 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상황이었는데 단 하나, 백수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인데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런데 웃긴 건, 나는 이미 집에서 돈을 벌고 있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신랑은 돈을 벌어오고 나는 그 돈을 관리한다. 재무장관처럼 우리 가계의 재무를 맡아 돈이 돈을 벌게 세팅해 두는 역할이다. 사람을 따로 쓰지 않고, 내 시간을 써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까지 내조하며 가족의 일상을 굴린다. 아이들 공부와 숙제를 봐주고, 식사와 간식까지 챙기며 집이라는 시스템을 하루도 멈추지 않게 유지한다. 그래서 나는 무급으로 24시간 일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자산은 분명히 늘고 있었다.


재테크로 돈은 이미 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생산적인 일'을 내 이름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다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걸 찾다 보니 갈등은 연속이었고, 하나를 붙잡으면 또 하나가 걸렸다. 머릿속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한 달 동안 혼자 속마음을 꾹 눌러 담은 채 잠 못 드는 시간들을 보내다 어느 날, 나는 신랑에게 SOS를 쳤다.

"자기야 우리 자유부부 하자. 맥주 한잔하자. 나 칭찬 좀 해줘. 자존감이 떨어졌어."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동네 마실 겸 맥주집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프리랜서의 세계를 알면서도 왜 이번엔 이렇게 현타가 오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건지 왜 내가 이런 혼란을 겪는지 나 스스로가 짜증 난다고 말했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도 짜증 났고, 이런 이유로 방황 아닌 방황을 하는 나 자신이 더 짜증 났다. 나도 자기 어깨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고, 그런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더 괴롭다고 했다. 자기가 벌어오면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그 앞에서 위축되는 나 자신도 싫어지고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그냥 그동안 잘해온 것 좀 칭찬해 달라고 했다. 공감도 받고, 당근도 받고, 위로와 위안을 받으며 마음을 풀고 정화시키고 싶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웬걸. 신랑은 최강 T 발 C였다. 그걸 알면서 말한 내가 잘못이지 싶었다.

"자기가 항상 말하잖아. 내 돈은 내 돈, 자기 돈도 내 돈이라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막상 보면 우리가 팀이라고 생각을 안 해. 너 따로, 나 따로 생각해. 그냥 같이 힘 합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아니, 그 말이 아니었다. 나도 안다. 너무도 감사하다. 그런데 나도 왜 그러지 모르겠는데 자꾸 신랑만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어깨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은데 방법은 못 찾겠고 헤매는 내 모습이 싫었다. 내가 내조하고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알고 있지만, 나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신랑 어깨의 무게를 덜어주면서 함께 내조해야 내가 뭔가 했다는 뿌듯함이 생길 것 같은데, 그게 안 되니까 위축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그냥 오늘은 어깨 뿜뿜 할 수 있게 칭찬만 해달라고 했다.



"내가 오늘은 확실히 극 T 가 되어줄게."

"아니, 하지 마. 말하지 마. 당근 주라고 당근. 채찍 말고."


말하면 뭐 하나. 그때부터 요이땅이었다. ENTP 논쟁가 스타일의 대화 폭격기가 시작됐다. 말로 사람 조지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 감정은 무시한 채 관계를 폭주하게 만드는 상또라이. 말해도 되나? 하면서 굳이 할 말은 다 하고, 상대방에게 스크래치를 남기는 타입. 말싸움에 이기고 나서야 " 내가 너무 갔나?" 하고 다음 날 사과하는 파렴치한. 나는 속으로 괜히 신랑을 믿었지, T 발 C 인 걸 알면서도 의지한 내가 바보지 싶었다.

"아니, 칭찬하라고. 공감 좀 해달라고. 누가 직언과 도움 주래? 누가 네 의견 주래?"

결국 나는 눈물바람으로 엉엉 울었다.

"이 T 발 C 야! 이러니까 내가 너한테 말을 안 하지. 난 도대체 누구한테 의지해!"

그렇게 엉엉 울며 하루가 끝나가고 있을 때, 신랑은 내 얼굴을 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근데 우는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엽니?"

그 말과 함께, 이겼다는 듯한 미소. 그 순간 알았다. 아, 내가 졌구나. 완패였다. 이 T 발 C.

기분 풀러 자유부부로 나갔다가 기분 더 더럽게 혹 하나 달고 돌아온 밤이었다.


그리고 주말이 왔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 새 학기 문제집을 사러 서점을 가야 해서 가자고 했더니, 신랑은 아이들에게 집에 있으라 하고 또 자유부부를 하자고 했다. 전날 숙취도 남아 있어 나는 그냥 서점만 다녀오고 싶었는데, 꼭 밥을 먹어야 하냐며 투덜거리다가 결국 준비하고 나왔다.


문제집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반가운 얼굴의 친한 남사친 하나가 나타났다.

"엇, 여기서 만나네. 왜 왔어?"

이어서 또 다른 친한 남사친이 나타났다.

"안녕."

우리 부부와는 연애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나는 반가운 마음에 말했다.

"뭐야, 너네 둘이 만나기로 한 거야? 우리도 문제집 다 사고 저녁 먹기로 했는데, 자유부부로~ 인연인가 보다. 놀자~"

신랑과 남사친들도 워낙 친한 사이라, 신랑이 더 신나 할 걸 예상하며 자연스럽게 저녁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대화가 이상해졌다. 연락도 없이 젊음의 장소 한복판,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게 혹시 내가 눈치 없이 남사친들의 다른 약속을 덥석 붙잡은 건가 싶어졌다. 그래서 괜히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남사친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묘하게 말을 아꼈다. 그렇게 스무고개가 시작된 술자리였다.

" 확실히 말해야 내가 알리바이를 만들거나, 혼내거나, 보듬거나, 보내거나 할 거 아니냐."


그러다 결국 나온 말은 이거였다. 사실 약속이 하나 더 있었고, 9시가 넘어서 두 명이 오기로 했다는 것. 그것도 여자라는 사실에 내 머릿속은 순식간에 오만가지 상상으로 가득 찼다. 하나는 유부남, 하나는 싱글. 한 사람을 위해 맞춰주는 자리일 수도 있지만, 이건 왠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내 친구들이라 더 복잡했다.


언제부터 만났는지, 혹시 사귀는 사이인지, 어디서 알게 됐는지. 엄마처럼 잔소리하며 캐묻자, 우연히 만나게 됐고 자기들도 놀랐으며 세상이 참 좁다는 말만 돌아왔다. 나도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덧붙인 채,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나와 신랑이 같이 있다고 얘기했더니, 흔쾌히 함께 보자고 했다고 했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외향적인 우리 부부답게 콜을 외치며, 나는 제2의 마누라의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신랑과 남사친들과 다른 자리를 잡고, 나는 이름 모를 두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세 남자는 신이 나서 술을 계속 마셨다. 취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또 잔소리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신랑이 나가자고 했다. 다 같이 밖으로 나갔는데, 그때 이게 웬걸. 내 베프 여사친이 눈앞에 서 있었다.

" 넌 오늘 웬일이야?"

오늘 약속이 있었는데, 그냥 여기서 놀까 봐 들어가려던 중이라는 말. 그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딱 맞춰졌다.


아....

그 여자 둘은, 바로 내 베프 여사친들이었다.

"뭐야. 그 여자 둘이 너희였어? 난 완전 뉴페이스인 줄 알았잖아. 얼마나 궁금했는데."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그리고 마침내 오픈된 진실. T 발 C였던 신랑이, 내가 그날 울고불고 감정에 충실했던 바로 그날, 나만 빼고 신랑이 내 친구들을 모아 단톡방을 만들어 작당모의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자기가 내 기분을 풀어주지 못하니 오래된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SOS를 쳤고, 친구들은 급하게 모였다는 이야기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우연은 우연이 아니었다. 모든 만남은 나를 위한 서프라이즈였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도 안 감고 모자만 푹 눌러쓴 채 나온 그 자리에, 내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어떤 친구는 중요한 일이 있어 직접 오지 못하고 전화만 남겼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감동에 같이 우는 친구, 갱년기냐며 놀리는 친구, 이 상황이 재밌다며 연기 잘했다고 신나 하는 친구, 그리고 뿌듯한 얼굴의 신랑.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내가 너무 단순했건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음흉했던 건지, 혼자 웃음이 나왔다.

유부남 친구는 아이가 아파 잠깐 나와 있다가, 상황을 즐길 만큼 즐기고 바로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베프 여사친 둘은 다음 날 일을 해야 해 저녁을 먹고 헤어졌고, 싱글이 된 친구와 우리 부부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들려주자, 이게 또 웬걸. 아이들까지 아빠와 함께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나는 또 한 번 엉엉 울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신랑에게는 감사함과 괘씸함이 동시에 남았다. 덕분에 소중한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가까운 신랑이 병 주고 약 준 셈이었다. 흥! 자기가 준 상처를, 남을 대신해 수습하는 방식. 그런데도 결과가 따뜻했다는 게 더 얄미웠다. 이게 아마 T 발 C 식 사랑일 것이다.


한하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프리랜서 일은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더 놀라운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업체에서까지 연락이 왔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느냐며 다시 일해 달라는 연락이 연이어 왔다. 백수가 된 지 한 달 만에, 일은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났다.


그만 방황하고 정신 차리고 인생을 살라는 신호 같았다. 생각보다 너무 짧았던 백수 생활. 그동안 그렇게 힘들었던 이 감정들은 대체 뭐였을까. 상황은 정리됐는데도 이상하게 여운이 남아 있다. 백수는 해결됐고, 일도 다시 시작됐다.

그런데 마음은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문제는 일이 아니라, 이제 그다음이 필요해졌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지금,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중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