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코머핀 May 27. 2023

첫 직장의 강렬한 기억 -1

회사에서 만난 미국버전 또라이

언젠가 생활이 안정되면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나의 미국 첫 풀타임이다. 퇴사하는 당일까지도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그만 둘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문 앞에서 ‘그래도 아직은 좀 버텨보자’ 하고 다짐했는데, 그 날 아침 1시간 후에 나는 그만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짐을 싸서 나왔다. 1년이 약간 안 된 11개월째에 그렇게 바라던 첫 직장을 집어치우고 나온 나의 이야기다.  

---


2019년 학교생활이 끝나가던 때, 대부분의 친구들은 졸업 전후로 잡 오퍼를 받아 잠시 쉬러 여행을 갔거나, 바로 일을 시작하거나 둘 중의 한 가지를 했다. 나는 그 후로 6개월정도 리크루팅을 더 했는데, 전략의 문제였든, 내 경력에 타겟 하기 비교적 어려운 분야를 선택한 것이였든, 꽤 오랜시간 시간동안 결과 없이 취준생으로 남아 직업을 구하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열심히 이력서를 날리고 사람을 만나던 중 인터뷰 요청을 받은 회사가 첫 직장이었다. 미국 전체 직원은 10명 정도, CEO는 혼자 런던에 거주하는 소규모의 펀드 회사였는데, 뉴욕에 혼자 상주하는 미국 대표와 함께 둘이서 미국 시장을 커버할 자리였다. 사람 수가 너무 적은 것이 마음에 좀 걸리기는 했지만, 펀드 회사 중에 작지만 탄탄한? 회사들이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길어진 구직활동에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 6주에 걸친 인터뷰에 온 몸을 던졌다. 그 기간 내내 인터뷰를 한, 내 보스가 될 미국 대표 N은 조금 빡빡한 사람 같긴 했지만 실력있어 보였고, 1년 안에 나를 5년 경력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추게끔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내 매니저가 될 사람이 나를 위한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다니! 뭐라도 배우겠다는 나의 불타는 의지를 알아주는 것 같아 참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게 얼마나 큰 리스크였는지를 모르고 ㅎㅎ) 그렇게 고생스러운 인터뷰를 마치고 10월에 받은 오퍼는 이 세상 가장 감동이었고 잊을 수 없었다. 당장 11월부터 시작을 하겠노라고 하고 들뜬 마음으로 출근을 준비했다.


그렇게 큰 기대를 안고 시작을 했는데, 정확히 2주 뒤 추수감사절 명절에 언니가 사는 곳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나는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6년동안 한 회사에 있다가 왔으니 나름 끈기는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N과 일하는 시간을 얼마나 오래 더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첫 2주 동안에만 겪은 에피소드도 무궁무진한데, 예를 들면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고용계약서 서명본을 돌려 주지 않았다. (반드시 계약서 서명이 다 마무리된 후에 일을 시작해야 하지만, 그 때 나는 시간이 없었고, 그래서 그냥 시작일을 좀 앞당겨 일을 하는 와중에 차차 계약서를 마무리하기로 했었다). 그래도 계약문제는 빨리 서면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기에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물었더니 N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지금 그 일을 며칠씩이나 걸려서 하고 있는 것처럼, 계약서 마무리하는데 시간 걸리니까 잔말 말고 일해라”. 물론 그 며칠씩 걸리는 일은 가져갈 때마다 본인이 퇴짜를 놓아서 5번째 수정작업 중이었다. 이 때 차라리 눈치를 채고 하루빨리 다른 곳을 알아보면 좋았으련만, 나에게는 그럴 신분적인 여유(무직일 수 60일 넘으면 불법체류 됨)도 시간적인 여유(평균근무 14시간)도 없었다.


그리고는 곧 200페이지짜리 펀드 문서를 퇴근후에 집에서 다 읽은 후 내일까지 질문을 준비해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퇴근이 대충 10시였으니 집에 가서 두어시간 정도 볼 수 있었나? 넘겨받은 문서는 PPM (Private Place Memorandum)이라고 하는 펀드관련 아주 상세한 전략과 법률 내용이 담겨있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당연히 몇 시간은 고사하고 한 달은 걸리고도 남는 문서였다. 그래도 급한대로 질문을 몇 가지 준비해서 다음날에 물어보았다. 그 조차도 15분 후에 전화를 받아야 하니 나가라고 해서 끊어졌지만.


그러다가 오후에 추가로 더 궁금한 부분이 생겨서 주요일과가 마무리되고 사무실이 고요해진 저녁시간 즈음, 어떤 부분을 다시 설명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려 잠시 그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몇 가지 질문을 더 해도 되는지 물어본 순간 불이 날아왔다. ‘네가 질문을 다시 하는 바람에 내가 이 시간이 되도록 퇴근을 못하고 있는 거’ 라고. ‘설명해 준 걸 네가 또 물어올 때 마다, 널 위해 이렇게 1분 1초를 소비해야 한다’고 호통을 쳤다. 아마 한국어로 했으면 본능적으로 나도 참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도저히 영어로는 여기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 건지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면 이제 막 시작하는 미국 사회생활을 아무것도 망치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이었다 해야 할까, 여기서 반박을 해도 되는 분위기인가 아닌가도 파악하지 못한 채로 폭탄같은 화풀이를 그대로 듣고 있었다.


아마 호통을 30분인가 들었으니 그냥 그 시간에 설명을 해 주었으면 훨씬 시간을 아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돌아왔다. 밤 8시쯤이었고, 들어간지 일주일이 좀 넘은 때 였는데 머리의 뜨거움과 온 몸의 괴로움이 느껴졌다. 그냥 모니터를 바라보며 잠깐 생각을 했다.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맘에 안 든다고 바로 집어치울 수도 없었고, 내일 또 출근할 생각을 하니 숨이 막혔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결정을 할 지 고민을 하다가 나의 감정을 수치화(quantify)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한국의 카페에서 종종 모았던 커피쿠폰을 떠올렸다. 내가 여기서 10번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기면 그 때는 뒤 돌아보지 않고 바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포스트 잇에 분노 쿠폰을 만들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올 때 한 칸씩 칠하고 날짜를 적기로 했다.


<이어서>

너덜해진 내 마음 달랠 길이 없어 책상에 있던 포스트 잇을 집어 만든 나의 분노 쿠폰


매거진의 이전글 일 하다가 깨달은 세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