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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머핀 Jun 25. 2023

그냥 하는 영어

나는 아직도 회의가 두렵다. 아니 지금까지 한 미팅만 해도 세 자리 수는 될 텐데 왜 그럴까. 가만히 그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면 ‘내가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이해를 못 할까봐’ 같은 일차적인 걱정도 있고, 목소리 크고 말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그렇게 ‘조용히 앉아만 있다가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될까봐’ 같은 한층 더 나아간 걱정도 있다.   


해외에 나와서 살면 자연스럽게 영어가 좋아질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다시 건너왔을 때가 서른 살이었고, 이미 너무 어른이 다 되어 왔으니 언어가 얼마나 늘겠냐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도 확실히 몇 년 사이에 좋아진 부분이 있다. 마치 누가 무슨 말을 하면 반드시 그 표현을 따로 배운 적이 없었는데도 무슨 뜻인지 알아듣게 되는 일 같은 거랄까?


정확히는 근데 이건 주변에 영어를 쓰는 사람들 과의 교류가 계속 있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는 주변에 친구도 있고, 수업도 들어야 하고, 모임도 수없이 많으니 집 밖을 나가기만 하면 노력하지 않아도 환경이 알아서 나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이제 직장에서, 특히 이렇게 재택근무인 경우는 하루 종일 영어를 쓸 일이 미팅 말고는 사실 없다. 그렇게 어쩌다가 미팅도 별로 없는 날이 이어지면, 집 안에서는 한국어만 쓰니 내가 사는 곳이 과연 어디인지 헷갈리는 지경이 온다. (사실 하루 절반이상의 시간은 핸드폰을 보면서 지내고, sns에 보이는 컨텐츠는 또 주로 한국것이다 보니 어쩌면 절반은 한국에 살고 있다고 해야 할 수도)


내가 아는 영어를 가장 빠른 시간안에 잘 하는 방법은, 불편한 그 상황에 나를 최대한 노출시키고, 불편한 과정을 아주 많이 반복해서 결국엔 그 힘듦에 익숙해지게 하는 것 뿐이다. 나는 처음에 누군가와 오후 1시에 전화통화를 잡아 놓으면 그 전날 밤부터 잠도 못 잘 정도로 불안해하곤 했었다. 회사를 처음 다닐 때는 1:1로 하는 화상회의도 힘들어서 한 번 하고 나면 긴장으로 땀이 뻘뻘 흘리기도 했으니, 큰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까지 갔을 때는 말 할 것도 없이 일주일 전부터, 그리고 주말 내내 하루 종일 회의 생각만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를 위해 대신해 주는 사람은 없으니 어쨌든 하기는 해야 하고, 아프다고 잠적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도 너무 속보일 까봐 못하고, 그런 강제성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하다보니 이제는 훨씬 나아져서 전보다는 편한 상태로 미팅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좀 못 할 수도 있고, 하찮아 보일 수 있는 모습을 내가 너무 혐오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나를 좋게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줌마가 되니 그건 참 좋구나!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훨씬 신경을 덜 쓰게 되고, 어차피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내 실수도 내가 웃어 넘기면서 어떻게 하다 보니 그럭저럭 사회생활이 될 정도로 영어가 흘러간다. 카타르 월드컵의 명언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었는데, 나의 버전은 “중그마”이다 - 중요한 것은 그냥 하는 마음 ㅎㅎ


무엇이든 잘 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하는 마음을 연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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