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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머핀 Aug 12. 2023

돈이 얼마가 있으면 행복할까

차로 20분 거리에 사는 Michelle과 Jeff는 작년에 이 동네로 이사 올 때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부부다. 둘은 미시간 주가 고향이고,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를 한 번도 못 가본 미국 친구들이라 소개가 없었으면 사실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별로 없었던 인연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동네에 새로 와서 외로울까봐 그런지 늘 먼저 연락을 하고, 즐거운 모임 있으면 와서 같이 놀자고 챙겨주는 참 고마운 친구들이다.


밥이라도 한번 해 줘야지 싶어서 어느 주말 집에 초대해 코리안 스타일의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렸다. 안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이고 할 얘기가 별로 없을테니 두 시간정도 있다 가겠지 싶었는데, 어쩌다가 밥과 술이 동반된 수다가 4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그렇게 인생과 사람, 일, 오만가지 이야기가 오가다가 마침 모두의 관심사인 돈 이야기가 나왔다. 좋은 집에서 잘 자란 미국 친구들도 돈에 관한 고민거리는 비슷했다. 돈이 많으면 뭘 하고 싶은지를 서로 나열 하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얼만큼의 돈이 있으면 만족할 것 같은지 물어보았다. 친구의 대답은 이러했다.


“$5M(약 60억)정도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 이상은 Gross (역겨울 정도로 필요없을) 것 같아”


첫 소절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평이한 발언이었는데, 그 이상이 Gross 하다는 표현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대부분 “최소 얼마는 있었으면 좋겠어” 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여기까지만 필요해” 라고 한정 짓지는 않기 때문이다. 친구가 돌아가고 가끔 떠올려 보아도 참 현명한 말이었다.


지금 미국도 경제적 자유, 부업, 주식투자 등 돈에 관한 주제로 뜨겁다. 노동자의 급여는 상승세가 너무 더디고(평균 급여 인상은 매년 2-3%), 인플레이션은 꾸준히 높다 보니(작년 8%), 앉은 자리에서 현상 유지만 하면 자동으로 가난해지는 고달픈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그에 맞게 명예와 직위를 추구하던 이전 분위기에서, 학력/직업에 상관없이 – 유튜버가 되든, 인플루언서가 되든 – 개인이 각자의 능력을 어떻게든 살려 부를 쌓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유튜브, 인스타그램 전부 미국이 시작했군..


나의 성장기였던 90년대 – 2000년대에는 ‘열심히 해서 남보다 앞서 나가기’가 교육의 중점이었다. 중학교 때 읽은 책도 돌아보면 홍정욱의 7막7장이라던지, 장승수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같은, 근면하게 노력하고 앞서가는 것이 모두가 가야 할 길이라는 메세지가 은연중에 늘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의 미국유학과 성공스토리에 나도 자극을 받아 여기 온 게 아닐까?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이렇게 어른이 되었는데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하는 결정들이 아직도 많다. 어떤 회사를 선택할지 결정할 때 실제로 하게 될 나의 업무, 같이 일 할 사람들 보다 인지도/연봉에 훨씬 더 집중 한다거나, 가방 하나를 살 때도 굳이 돈을 더 얹어 남 보기에 빠지지 않는 브랜드를 고르러 간다던지 말이다. 정작 나는 남이 뭐를 신고 메고 입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인데도. 그러니 남보다 뒤쳐지지 않으려고는 하는데, 정작 내가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는 생각해 보지 못한 채로 시간이 간다.


미국에 와서 살며 타인에게 큰 관심이나 잔소리를 두지 않는 문화 덕분에 주변에 대한 생각을 끄고 다시 이런 결정들을 들여다보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무슨 반짝이는 선택을 하든, 괴로웠던 순간에는 그냥 햇살 좋은 곳에서 마음 편히 산책만 할 수 있으면 바랄 게 없겠다는 작은 소망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회사의 임원이나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당연히 부럽지만 그 높은 자리와 돈 자체 너머에, 오랜 시간 조직에서 일하면서 쌓아온 사람들과의 단단한 “관계”, 또는 경제적 자유를 통해 확보한 시간으로 하는 “즐겁고 의미있는 활동”이 부럽다. 좋아하는 일을 잘 맞는 사람들 사이에서 즐겁게 하는 그 상태가 나는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더 들기전에 내가 찾는 만족이 어디까지 인지를 잘 들여다보아야겠다. 애초부터 남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더 이상 누군가를 감동시켜야 한다거나 남들보다 잘 나가야 하는 압박 같은 것도 없다. 나 자신에게 솔직한 인생을 살고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그러면 더 바랄 것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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