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내의 다양성이 내게 주는 의미
나의 업무 중에는 세일즈 팀의 펀드 판매를 도와주는 역할이 있다. 세일즈 팀은 가지고 있는 주요 연락처를 동원해서 고객사를 만나 펀드 투자를 설득할 때, 옆에서 펀드에 대한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펀드매니저가 함께 참석하고 설명을 돕는 것이다. 이것을 고객사와 미리 약속을 정해서 미팅을 통해 하는 경우도 있지만, 1년에 몇 번 정도는 업계의 회사가 한꺼번에 모이는 컨퍼런스에 가서 네트워킹을 하기도 한다.
컨퍼런스 네트워킹은, 아마 지금 하는 일 중에 정말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고 해야 딱 맞는 설명일 것이다. 3일짜리 컨퍼런스에 가면 아침 7시반부터 아침식사와 함께 네트워킹을 시작으로 끊임없는 대화, 식사와 해피아워를 밤까지 반복한다. 최근에 갔던 곳에서는 결국 밤 11시반에 지쳐서 포기하고 (그 때까지도 다들 아직 술먹는 중이었음)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하기 싫은 걸 꾸역꾸역 하고 스윽 빠져나와 혼자 방에 들어왔을 때의 그 애매한 공허감이란.
차라리 한국처럼 앉아서 먹는 밥이랑 술이면 양 옆 사람과는 집중해서 대화라도 할 수 있는데, 왜 대체 다들 서서 술을 마시고 그럴까. 우선 나는 키가 훨씬 작으니 고개는 아프고, 목소리는 어쩜 그렇게들 큰지 내 목소리는 먹히고, 여러모로 참 힘든 술자리에 있다보면 정말 이걸 앞으로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마구 솟아오른다.
한 번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마침 옆에 앉은 Gavin은 성격도 좋고, 특히 요새 K-드라마에 빠졌다고 해서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즐겁게 이어가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배우자 이야기가 나왔는데 정황상 Gavin은 동성커플인 것 같았다. 식사 자리가 마무리 될 때 쯤 다른 테이블을 주욱 둘러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여기 모인 사람중에 너 혼자만 동양인 여성인 것에 대해 어떻게 느껴?"
아마 그도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마음을 잘 알기에 내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대답은 "항상 어색하다" 였다. 일단 업계에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많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회의를 가도, 점심 식사를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하다. 인종을 떠나서 대화의 주제를 맞추기도 쉽지않다. 한참 열정적일 때는 스포츠 이야기에 끼어보려고 풋볼경기를 억지로 보고 가기도 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자연스럽지가 않다. 아무래도 이것의 가장 큰 단점은 주로 회사에서 내가 편하게 다가가게 되는 사람들 - 여성과 유색인종 - 은 안타깝게도 낮은 직급이거나, 보조 부서이거나, 대체로 조직 안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주로 윗 사람은 백인 남성인데, 일상적인 대화로 연결되기 어려운 것도 있고 심리적 위축인지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마주치기를 슬슬 피하고 있었다. 그러니 주요 인사 관련 결정이 있을 때 되도록이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승진도 시키고 일도 줄텐데, 마음에 들기도, 심지어 나를 알게 하기조차도 쉽지않다. 한국에서의 사회생활도 어려운 부분이 너무나 많았지만, 어쨌든 내가 소수인종?은 아니었으니 마이너리티의 아픔을 잘 모르고 지나갔었는데 말이다.
나는 다양성이라는 것이 실제로 성공으로 이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중 하나다. 조직이 실제 사회의 인종구성을 비슷하게 따라가야 이 사회가 정말 필요로 하는 적합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과학적인 연구결과는 많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최소 조건 충족이 목적이지, 다양성을 정말로 존중해서 팀을 구성하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언젠가 회사에서 나를 보고 조금은 안도할 다른 마이너리티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 오늘도 일터로 향한다. 20년 후에는 어색함보단 즐거움이 훨씬 크기를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