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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머핀 Sep 16. 2023

마흔인데 집이 없다

큰일이 났군

한국에서 돌아와 이제 시차적응도 어느 정도 되었고 다시 나의 일상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먼 거리 여행을 하는 동안 사고 없이 아프지 않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게 되어 참 감사하다.


소파에 앉아 남편과 이야기하며 한국에서 보낸 시간 동안 만난 사람들과 했던 대화를 나누었다. 어디에 살아도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지, 30대 후반- 40대 중반에 걸쳐있는 남편과 나의 친구들과 각자 만나며 했던 이야기 안에는 공통적인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항상 집 고민이 거의 모든 만남의 대화에서 튀어나왔다. 집을 마련한 사람은 마련한 대로 대출금을 갚느라 여유를 못 찾고,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내 집마련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하며 근심이 늘어간다. 다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데도, 주거를 마련하는 일만큼은 가장 해결하기 힘든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보다 바로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의 평균 나이는 40인데도 아직도 한국/미국 어디에도 집이 없다. 나의 분수에 넘치게 비싼 MBA를 하고 유학 비용으로 모았던 것을 다 써야 했던 이유도 있었기도 하지만 - 그리고 그렇게 얻은 인생이 너무나 값지기는 하지만 - 지금 집을 산다 하더라도 앞으로 30년 모기지를 갚아나가려면 적어도 70까지는 일해야 한다. 일하는 게 싫어서가 아니다. 사실 할 수 있으면 죽을 때까지 즐겁게 일하며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고 싶다. 그렇지만 신체가 약해지고 노화가 오면서도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한국/미국을 비교할 때 항상 드는 생각은 미국의 트렌드가 거의 그대로 한국에 가서 적용이 되고, 특수한 상황들(한국의 경우 인구 절벽과 같은 문제)이 맞물려 한국 시장 트렌드를 만든다는 것이다. 뉴욕은 "city supported by parents"라고 불릴 정도로 이제 부모님이 뒷받침해주는 돈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비싼 도시가 되어버렸다. 한 예로 뉴욕의 브루클린 바로 옆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는 본래 아티스트들이 거주하는 홍대 같은 동네였는데, 밥벌이가 쉽지 않은 예술인들과는 다르게 그들의 부모님은 자녀들이 예술가로 성장하게끔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자금력이 받쳐준다. 그래서 정말로 "애들을 위해" 집을 사주다 보니, 윌리엄스버그의 부동산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감당할 수 없이 비싸졌다. 그리고 이것이 서울의 모습 하고도 참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가지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버틸 수 없는 그런 곳.


힙하지만 너무나 비싼 윌리엄스버그


그래서 요새는 더더욱 집이 없는 것이 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가 없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지난 50년간 인플레를 감안한 노동자의 급여는 전혀 상승하지 않았고, 평균 직장인이 월급을 모아 집을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40년이 걸린다는 계산도 있다. 노동을 제공해서 자산을 쌓는 속도는 자산이 자산을 불러들이는 속도를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인간이 역사를 거쳐 그나마 정착한 시스템이긴 하지만 매우 불완전하고, 양극화를 불러오게 되어있는 구조다.


미국도 중산층의 안정을 위해 첫 내 집 마련자를 위한 혜택을 제공하고, Fannie Mae와 Freddie Mac이라는 정부 보증 기관에서도 개인이 감당할 만한 모기지 상품을 제공한다. 그런데 심지어 이 Fannie와 Freddie조차도 이제는 개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에는 관심이 없고 수익을 더 크게 안겨주는 기업의 배를 불려주는데 바쁘다. 그리고 기업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이미 정치에 한 두 명쯤은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으니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나 혼자서 양극화를 막을 수도 없고 분노한다고 한들 내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으로서 내 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나만의 실력, 나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계속 꺼내보고 수익화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이 양극화와 높은 인플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지탱해 줄 고유한 보물인 것 같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희망적이기도 하다. 그 보물은 소수의 누군가가 아니라 모두가 가지고 있으니까. 단지 살면서 스스로 얼만큼 발견해 낼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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