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시내에서 30분 북쪽으로 있는 근교 동네에 살게 된지 이제 1년 반 정도가 되었다. 매주 사무실에 나가는 날이면 20분 정도 기차를 타고 도심한복판에 있는 유니온 스테이션에 내리고는, 역 바로앞에 있는 작은 철교를 걸어서 사무실로 향한다.
미국의 미드웨스트(Midwest)라고 불리는 이 중서부는 과거부터 곡물재배가 주요산업이었다. 그 곡물을 수송해 나르던 주 교역지가 시카고였는데, 그 때 트레이딩 산업(Chicago Mercantile Exchange)이 발전하며 도시가 급격히 성장하였다. 그래서 뉴욕만큼 매일 새로운 빌딩이 지어지는 곳은 아니지만 눈을 들어 스카이라인을 주욱 둘러보면 근대 건축의 역사를 볼 수 있다. 1900년에 초에 지은 콘크리트로 육중한 느낌의 건물과 강철로 올린 초고층 빌딩은 역사책에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것 같은데, 그걸 평일 아침 출근길에 보게되니 참 재미있다.
겉은 이렇게 깔끔하고 멋진 곳인데, 살다가 보니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 조금씩 보인다. 시카고는 뉴욕, LA 다음으로 미국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그 크기에 비해서는 부동산으로는 활발하지 않은 곳이다. 우선은 인구유입이 다른 도시에 비해서 매우 떨어진다. 그도 그럴것이 여기는 1년의 절반이 겨울이다. 그나마 기후변화로 최근에는 좀 사정이 나아졌지만 11월부터 4월까지는 캐나다 구스를 도저히 옷장에 집어 넣을 수 없는 날씨다. 그래서 이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부분 근방의 소도시에서 자라 도시로 상경한 케이스지, 미국 내의 기타지역에서 온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걸 말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일리노이주의 높은 부동산 세가 있다. 일리노이는 왜인지 모르지만 전반적인 세율이 높고, 그것이 아마도 부정부패가 꽤 많은 것과 관련이 되어있는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외식비에 붙는 sales tax는 10%가까이 되고, 부동산 세는 가격의 2%나 된다. 즉 10억짜리 집을 사면 매 해 무려 2천만원의 돈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곳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시카고의 부동산은 투자의 느낌보다 소비의 느낌이 훨씬 강하다. 오히려 집이 아니라 자동차를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는게 맞겠다. 유지비도 만만치 않은데 시간이 지나도 가치도 오르지 않는 (도리어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시카고 시내에 30년전 건물을 사고는 30년 내내 가치가 오르지 않아 돈을 잃었다고 했다. 실제로 기관투자에서도 미드웨스트는 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다. GreenStreet라는 미국내 부동산 리서치 회사에서 발표한 올해의 최악의 아파트 시장도 바로 시카고 남부 였다.
그런데 재밌게도 이 지역에서 자란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여기가 미국내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일 거라는 생각을 듣는다. 역시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의 것, 내가 사는 곳이 가장 좋다는 편견이 있는가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가장 맞는 말이기도 하다. 객관적인 가치가 나에게 주는 의미가 뭐 그리 크겠냐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가치평가는 나에게 얼마나 값진 것이 있고 중요한지가 크게 반영된다. 프랑스 파리에 아무리 멋진 에펠탑이 있어도 나에게는 하루 관광이상의 흥미가 없듯이. 그 곳에 내가 만나고 교류하고 싶은 가족과 친구가 있고, 근처에 좋아하는 카페와 식당이 있으면 남들이 동의하지 않아도 그만큼의 큰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무조건 오를 곳을 찾아 헤메는 것 보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곳을 잘 찾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