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이른 새벽, 커뮤니케이션 팀에서 사내 전 직원을 수신자로 한 이메일이 왔다. 가끔 가다 한번씩 받는 CEO 인사말이었다. 평소처럼 신사적으로 길게 쓴 형식적 인사말인 것 같아 가볍게 지나칠까 하다가, 휴지통으로 옮겨가기 전 다시 한번 쭉 훑어본다.
그런데 읽다보니 조금 더 칼같은 포인트를 담고 있었다. 바로 회사의 주력사업에만 집중하고, 해당 되지 않는 그룹은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메세지였다. 휴 정말 한시도 잠잠하질 않군. 19년부터 여기서 사회생활을 하며 재미있게도 지난 4년동안 시장의 충격을 벌써 두 번이나 겪었다. 20년 코로나 직후 그리고 지금 말이다. 지나고 보면 정말 운이 안 좋고도 특이한 시기였다고 돌아보게 될 듯 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있는 부동산 사업부는 주력사업의 한 부분이기에 당장은 나의 서바이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기에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올해가 열 달이 넘어가는 동안 미국 부동산 시장도 약간의 침체를 겪는 중이다. 되는 것도, 하는 것도 딱히 없던 분위기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니 살아남았다 해도 도저히 동기부여가 생기지를 않는다. 지금이 10월이기는 하지만 11월 추수감사절을 시작으로 12월까지는 연휴기간이므로 이 흐름이 그대로 연말까지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금리였다. 한마디로 인플레를 잡기 위해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서 빚을 내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 되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금리의 상승이 부동산 침체로 이어지는 것일까? 내가 본 것은 이렇다:
첫번째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금리가 상승하며 돈을 빌리는 비용이 비싸졌다. 은행과 같은 렌더(Lender)가 모기지의 이율을 산정하는 방법은 주로 미국 국채 금리(US treasury rate)에다가 일정 퍼센트를 얹는 방식이다. 변동 금리인 경우는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이라는 수익률 곡선을 쓰고 말이다. 그런데 기본 벤치마킹이 무엇이든지 간에 기준금리가 오르니 모기지 이율이 같이 증가한다. 예시로 미국 10년물 국채가 3년전만해도 거의 0%에 가까웠는데 이제 5%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두번째는 빌릴 수 있는 돈의 액수도 줄었다. 예를 들어 한 건물에 적합한 최대 대출 모기지 금액을 정할 때는 몇 가지 조건이 따라 붙는데, 그 중에 하나가 DSCR(Debt Service Coverage Ratio)이라는 숫자다. DSCR은 쉽게 말해 건물로 벌어들이는 돈이 대출 상환금의 몇 배 인지 확인하는 방법인데, 수식으로 보면 = 건물에서 받는 현금 ÷ 연간 대출 상환금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는 이 비율을 최소한 1.25 이상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지금처럼 금리가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분모가 증가하므로 이 값이 낮아지는데, 따라서 원래 비율로 돌려놓으려면 결국 대출금의 사이즈를 줄여야 한다. 그러니 사려고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대출의 액수에 한계가 있으므로 제시할 수 있는 부동산 가격도 줄어드는 셈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사람들은 제값을 못받고) 이러한 이유와 기타 다른 여러가지 원인으로 미국 부동산 전체의 가격이 현재 약 20% 정도 감소하였다.
그러니 기관이고 개인이고 대체 지금 뭘 사는 것 자체가 애매해 진다. 그리고 이미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 끼고 있는 모기지가 너무 좋은 조건이라 건물을 팔기도 애매하다. 이렇게 되면 거래 자체가 급격히 감소하는데, 거래가 많을 수록 돈을 버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 (ex. 중개인)들은 일감이 줄고 자리가 없어지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부동산 개발사들 또한 건물을 훨씬 덜 짓게된다. 대출도 비싸고, 건설 재료값과 인건비의 상승도 한 몫 더해 올리고 싶었던 건물조차 비용 조달을 못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택이나 건물 공급이 지연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지속되면 수요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공급이 2-3년 후에 서서히 결과로 나타날텐데, 해당지역 부동산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 수요가 유지되는 지역에 한해서 말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고질적인 문제는 주택 수 자체가 애초에 너무 부족하다는 것인데, 그래서 아무리 지금가격이 미친 수준이라고 생각해도 앞으로 떨어지는 것 보다는 오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뉴스나 책으로 이런 내용을 접할 때는 와 닿지 않다가, 실무를 하면서 이 모든 트렌드가 나의 일상과도 연결이 되며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2년 전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다들 무엇을 해야할지 머뭇거리는 상태로 꽤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만사가 아름답기만 할 때는 당연하려니 지나치던 것도 지금은 다시 돌아보게 되고, 고민하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커리어든 인생이든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 가장 많이 성장하나보다.
아마 이 트렌드는 높은 금리환경이 유지되는 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니 어쩌면 내년, 내후년인 2025년 까지도 비슷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물론 외부 환경은 어차피 예상일 뿐, 아무도 알아 맞출수도 바꿀수도 없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고, 잘 풀릴 때를 기다리는 것이 불황을 견뎌나가는 가장 좋은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