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우리 팀에 나보다 10살 정도 어린 직원이 들어왔다. 바쁜 업무를 나눌 수 있을 테니 좋기는 해도, 사실 굉장히 긴장이 되었다. 내가 나이도 훨씬 많고 뭔가는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항상 자기 자신의 장점은 안 보일까) 최소한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은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팀 구조상 나는 그 친구의 상사라기보다는 동료 직원에 가까웠다. 그렇군, 어차피 내가 매니저도 아니고 무슨 오지랖인가, 이것저것 알려주고 조언해 주는 태도를 보이다가, 나의 더 많은 부분을 드러냈다가 별 것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보다는 각자 독립적으로 일하는 것도 괜찮겠지 생각하며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저 구실 좋은 핑계를 찾은 것뿐인 듯..ㅎㅎ
그런데 어느 날 회의 중에 그 직원이 어떤 것을 설명하다가,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을 써서 흠칫 놀랬던 기억이 있다. 처음엔 우연일 거라 생각했지만 반복되는 경험으로 알아차렸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 친구는 사회생활을 몇 년 하지 않았으니 구조상 내가 그의 매니저가 아니어도, 옆 사람이 업무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좋은 부분은 본받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고나니 찾아와 묻지 않아도 먼저 다가가 내가 아는 것들을 알려 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그는 미국 사람이고 나는 외국인'이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잘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저런 이유를 스스로 떠올리며, '나는 팀장이 아니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라고 했던 안일한 생각을 반성하게 된 일이었다.
처음에 여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의 바람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돈을 버는 것이었다. 취업 자체도 굉장히 어렵다 보니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구성원만 되면 바랄 게 없겠다고 늘 소원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고비를 넘어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니, 조직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 이어나갈지 계속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려면 이제는 단순히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을 넘어, 사람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만 유독 그런 건지, 아니면 다들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아직도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이 윗사람 보다 훨씬 더 어렵다. 즉 부여받은 일은 참 열심히 잘하는데, 남에게 일을 시키는 건 세상 제일 어렵다. 나는 집에서 둘째이고 막내라 그런 역할이 어색한 것도 있고, 마음 한편에 내가 윗사람 노릇을 한다는 (남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어떤 죄책감 비슷한 것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어쩌다 보니 나의 사회생활 동안 아랫사람이 없는 시기가 꽤 오래 이어졌기 때문에 최근까지는 이런 부분을 잊고 있었다가, 다시 한번 나의 두려움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가장 작게 연습할 수 있는 리더십은 ‘나의 행동을 내 옆사람이 보고 따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행동과 의견은 거울효과처럼 주변 사람에게도 그대로 옮겨 간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 비슷한 사고방식과 행동을 갖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미 내 가족과 친구, 직장동료들에게 인플루언서이자 리더인 것이다.
물론 이런 능력을 키운다 해도 미국 조직 내에서 위로 올라가고 정치를 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여느 조직에서 처럼 일도 잘해야 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며, 무엇보다 내 라인을 만들고 때로는 공격적으로 나가는 것도 필수다. 하지만 위로 가야만, 타이틀이 팀장이어야만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으로 주변을 이끌 수 있는 사람, 작은 부분에서부터 리더가 되어보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