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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머핀 Oct 14. 2023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방법

시간이 빠르게 흘러 이제 새해까지 8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얘기인즉슨 이제 연말 업무 평가 시즌이 돌아오고 그에 맞는 승진 등 인사 관련 변화에 대해 대비해야 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겠다.


승진과 같은 소재는 언제나 나에게 어색하고 불편한 존재였다. 보통 신입부터 중간 관리자 직급까지는 어느 정도 시스템화 되어있는 조직에서 일하면 굳이 열심히 피력하지 않아도 2-3년 주기로 승진과 함께 연봉인상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나 역시도 여태껏 그런 시스템 안에서 꽤 안락하게 거주하는 축복을 누렸다. 그런데 이제 더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할수록 그런 자동 시스템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존재할리가 만무한데, 나의 협상 능력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기분이다. 아, 안락함은 이렇게 나중에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구나. 씁쓸한 배움이다.


나는 남한테 싫은 소리를 최대한 하지 않으려 하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맞춰주는 것이 편한 성격이다.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추구하며 자라다 보니 그리 된 것 같다. 그러니 누구보다 성심 성의껏 일을 해주었고 성과가 있음에도, 내 몫을 챙겨달라고 가서 말하기가 두렵고 하기가 싫다. 그런데 이렇게 쭉 가다 보면 오로지 내 손해인 것을..! 작년부터는 이렇게 스스로 물러서는 습관을 꼭 개선해 보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현명하게 요구할지를 고민하다가 세 가지 방법을 떠올려 보았다.


1. 그냥 한다


원하는 것이 생겼을 때에는 아무런 이유를 갔다 붙이지 않고 바로 요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냥" 이 정말 정말 어렵다. 특히 어려운 부탁이나 요구는 하지 않아야 할 핑곗거리가 기가 막히게 잘도 떠오른다. 가령 승진 이야기로 돌아가서, 작년 이맘때쯤 나는 다음과 같은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지금 승진시켜 달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주제넘어 보이겠지'

'이 일만 열심히 끝내놓으면 더 점수를 따지 않을까'

'매니저가 이번주는 바쁠 텐데'

등등.


자잘한 생각을 하며 대화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리고는 끝내 연초에 인사결정이 다 마무리되고 나서야 아무도 나를 신경 써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땅을 치며 후회했다. 주변 사람은 잘못이 없는데 내 원망을 그들에게 투여하게 된 것도 덤이다.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부터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줄여보는 연습을 하자. 그러면 중간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잡다한 생각들을 차단하고 단순히 하는 행위에 집중하기 쉽다.


아이디어와 실행 사이의 간극을 줄일 때 사람은 한층 더 성장한다


그래서 올해는, 승진 요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은 그 즉시 바로 매니저와 미팅을 잡아버렸다. 사실 몇 주 후에 해도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렇게 미뤄봐야 딱히 하는 것 없이 마음만 불편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화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물론 그 자리에서 Yes를 들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의 요구를 명확히 밝혔고, 매니저가 내가 이야기한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서 결정하겠다는 답을 했다. 요새 경기가 좋지 않아 있는 사람도 내보낼 정도로 비용 절감을 하는 추세라 사실 결과에는 별 기대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시도했기 때문에 속이 후련하고 후회가 없다. 적어도 올해는 작년보다는 나은 행동을 했으니 다행이다!   


2. 부탁은 항상 구체적으로 한다


정확히 내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상대방에게 구체적으로 요청하기로 했다. 두리뭉실한 부탁이나 요청은 상대방이 아무리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라도 어떻게 해 줄지를 몰라 방향을 잃으니 말이다.  


꽤 오래전 서울에 있을 때의 일이다. 지하철을 탔는데, 열차 내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마주쳤다. 사연을 담은 종이를 돌리고 1분 정도의 발표(?)를 하며 사람들에게 돈을 걷는 흔한 방식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는 현금을 더 소지하고 다니는 분위기였지만 일반적으로 승객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지나가도록 두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날 구걸하던 사람은 발표 끝에 이렇게 외쳤다.


 "100원이라도 좋으니 저를 좀 도와주세요."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신기하게 다들 가지고 있던 동전을 주섬주섬 꺼내서 그의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대충 세어봐도 같은 칸에 앉아있던 거의 절반 이상의 사람이 그를 도와주었다. 아마 구체적으로 동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너무 적은 금액이니 주나 마나겠지 라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주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 돌아보니 그 사람은 구체적인 부탁을 함으로써 원하는 것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간 셈이다.   


3. 남을 위해 하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


남성/여성으로 나누어 편견을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자기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좀 더 어려운 성격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인가, 종종 성공한 여성리더의 이야기 안에는 이런 조언이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어려우면, 남을 위해 하는 거라 가정하고 해 보라'고.


나는 이것에 크게 공감할 수 있는데, 예전 2-3년 차 사원일 시절에 옆에 서무 직원과 나란히 앉아 일을 하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내 나이 또래의 친구 같은 직원이었고 업무를 늘 같이 했으니 곧 친해졌다. 그러다 종종 업무나 기타의 이유로 이 직원이 불필요한 불만을 듣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를 목격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남을 위해서는 싫은 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를 위해서는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지켜야 할 내 사람을 위한 방패막이 된다 생각하니 훨씬 수월했다.


생각해 보면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지켜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남을 위해 하듯이 나를 위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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