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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머핀 Nov 25. 2023

실패로 가는 지름길

어느 날 이불속에서 뒹굴며 유튜브를 보다가, 한 채널에 할머니 한 분이 나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오랜 인생을 산 어르신들을 모시고 삶의 지혜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진행자가 독특한 질문을 했다. "인생이 실패로 가는 지름길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고 할머니께 물었다. 그분의 답은 두 가지였는데 둘 다 참 인상 깊은 답안이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을 피하고 스스로 고립되기를 자처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쉬운 소리도 잘 못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특히 첫 번째가 크게 와닿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고립되기 쉬운지 오랫동안 생각해 와서 그런가 싶다.


나의 경우는 이민 생활 자체가 조금만 게을러지면 혼자되기 딱 쉬운 환경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머릿속에 그리던 미국 라이프에선 외로움을 많이 떠올리지는 않았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한국에 있더라도 고립은 충분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같은 이민 생활이라도 학생으로 학교라는 집단에 속해 있을 때는 외로움은 커녕 모임 및 행사가 너무 많아 차라리 좀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특히 한 학년이 무진장 큰 학교(한 학년이 850명ㅎㅎ)를 다녀서 그런지 집 바로 앞 슈퍼만 가도 반드시 아는 사람을 마주치는 환경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학교 생활이 지나가고 사회에 나와 보니 사람들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끈을 튼튼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도 있고, 나에게 편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며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미국의 주류 - 주로 백인 남성 -처럼 나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다가가기가 아직도 어렵다. 처음부터 아는 사람의 수 자체도 좀 적다. 자라면서 10년 이상 꾸준히 살았던 동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생활할 때 필요한 각종 정보를 내가 묻기 앉아도 친절히 알려주는 어른도 따로 없다.


고립된 회사생활도 만만치 않다. 소속감을 느끼는 괜찮은 날도 있지만, 또 어떤 날은 연차에 비해 아는 게 정말 단 한 개도 없는 것 같다. 사무실에라도 강제로 나가는 분위기였으면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 많았을 텐데. 재택근무만 주구장창 했던 덕분인지 몸은 편하지만 사회적인 신호(social cue)를 캐치하는 것이 아직도 어렵다.


나는 어쩌자고 누가 등 떠밀지도 않았는데 여기까지 와서, 새로운 직업, 새로운 환경을 선택하고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왜 아무도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 이렇게도 많을까?


'왜 나만 힘들고,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왜 나에게만' 같은 일종의 비교에서 오는 피해의식이 담긴 생각은, 실제로 밖에 나가 누군가와 계속 교류하다 보면 서서히 사라진다. 나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각자 아픔과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게 부럽거나 안타까운 인생이 정말 하나도 없다. 그 깨달음이 나의 어려움을 불필요하게 확대 해석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준다.


나와 같은 이민자에게, 또는 어디에 있더라도 지금 갖고 있는 어려움이 오늘따라 유독 커 보이는 누군가에게. 자리를 박차고 나가 사람을 만나자. 그렇게 인생을 실패로 가지 않게 나를 구하자. ^_^


이번주는 추수감사절 연휴다. 잠깐 쉬어갈 수 있는 여유로움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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