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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Mar 21. 2022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니 사랑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몇 가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호떡입니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호떡을 사 먹는 재미가 솔솔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 동네 호떡집들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한 번도 호떡을 사먹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부터 단톡 방에 이디야 호떡 사진이 자꾸 올라옵니다.

아놔~ 못 먹으니 더 먹고 싶고 더 간절해집니다.

음식 하나를 두고 며칠 동안 고문을 당하는 감정으로 지냈습니다.


어제는 드디어 결심했습니다.

주말에는 꼭 호떡을 먹으러 가리라.

“여보 나, 호떡이 너무 먹고 싶다.”

“어, 그거 언양 장날 되면 파는 곳이 있다. 그런데 진짜 맛있어. 내일이 장날이네. 사줄게 가자.”


토요일 아침, 피곤에 지친 몸이지만 새벽 줌 강의를 듣고 평소처럼 등산을 갔습니다.

얼른 등산을 끝내고 언양 장터로 가야 하니 마음이 바빠지고 걸음걸이는 더 빨라집니다.

그런 와중에도 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생명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 작고 어린 생명이 내 눈에 띄였는지 모르지만 힘찬 생명의 기운이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납니다.

앙상하게 메말라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진달래 가지의 끝에 꽃망울이 열심히 에너지를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우리가 모두 알지 못할 뿐 세상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렇게 열심히 자기의 역할을 준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늦어진 발걸음을 보충하느라 돌아오는 길은 더 숨 가픕니다.

바삐 채비를 하고 집에서 11시쯤 출발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나들이 삼아 시장구경도 하고 점심도 먹고 할 계획이었습니다.

자동차로 25분 정도 달려 울산 언양 5일장에 도착합니다.


아직도 제법 시골장의 향수를 지니고 있는 그곳은 많은 장사꾼과 사람들이 가득하고 도로를 따라 늘어선 자동차들로 주차할 곳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멀리서 사람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는 곳이 보입니다.

앗~ 호떡이다. ㅎ


어차피 줄을 서야 하는지라 나는 잠시 멈춘 차량 문을 열고 무슨 첩보영화의 요원처럼 잽싸게 뛰어내려 호떡가게 앞으로 뛰어갑니다.

한명, 두명 .... 6명만 기다리면 됩니다.

1개 1천원, 5천원에 6개.

한 개를 더 준다는 계산에 당연히 5천원을 꺼내고 손에 쥐었습니다.


보글보글 기름에서 갓 튀겨낸 호떡을 종이컵에 반쪽으로 접어 넣고 건네줍니다.

한 입 바싹~ 뜨겁고 달콤한 꿀맛이 입안에 퍼지며 며칠을 참았던 욕구가 행복에 겨워옵니다.

찬찬히 둘러보는 시장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습니다.

강황 막걸리를 파는 아저씨는 손님에게 시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신은 연신 막걸리를 마시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고 그 옆으로 신선함으로 바다로 뛰어 들어 갈 것 같은 오징어도 어서 오라며 손짓합니다.

생선가게, 과일가게, 말린 곶감 등 사고 싶은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남편이 “일단 점심 먹고 사서가자. 미리사면 무거워. 저기 유명한 칼국수집이 있더라. 그곳에 가자.”

아들이 네비를 켜고 길잡이를 하고 우리는 각자의 등을 나침반 삼아 또 뒤따라갑니다.

어머 어머, 제가 좋아하는 인절미 떡을 파는 곳을 만났습니다.

“사장님, 이거 얼마에요?”

“한줄 2천원” “저 2줄 주세요.”


떡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남편이 웃으며 다가와 그럽니다.

“헐~ 이럼 어째. 가다가 사람이 없어져서 다시 찾으러 왔잖아. 얼른가자.”

칼국수, 떡국, 김밥, 칼자장면, 어느 것 하나 맛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천연소금을 사용한다고 자랑해놓은 벽보가 수긍이 될 만큼 맛이 담백하고 건강합니다.

매번 입으로 뱉어내는 다이어트는 어디로 간 것인지, 왜 이리도 음식이 다 맛난지 모를 일입니다.

뭐, 건강하니 맛있는 것이고 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고 또 실천하고 그 과정 중 만나는 이 소박한 행복에 내 삶이 다 풍요로워집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삶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고 결국에 사소한 작은 것들의 이루어짐으로 큰 결과를 만나는 과정입니다.


지나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옷과 양말들에서 묘한 촌스러움이 드러나며 여기가 ‘난전’이라는 각성을 줍니다.

언젠가 비싼 돈을 주고 떠난 여행에서 만난 터키시장과 홍콩의 야시장이 생각납니다.

그곳의 명소라며 제법 긴 시간을 할애하며 기념품도 사고 맛난 것도 사먹고 했더랬습니다.

그리보면 오늘 시장에서 먹은 찹쌀호떡도 명물이고 앙꼬가 들어간 찹쌀 인절미는 홍콩시장의 그 유명한 에그타르쯤 되나 봅니다.

시간과 장소만 다를 뿐 또 우리가족은 함께 먹고 즐기고 웃고 있는 순간입니다.

물론 사소한 대화 중 무단히 삐치기도 하고 흥분하기도 하지만 이내 추억 만들기를 공유합니다.


엊그제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그럽니다.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니 사랑합니다.”

살면서 모든 상황이 좋아서 행복하고 마음이 설레여서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가 있을까요?

사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고 사랑해야 하는 시간이니 노력합니다.


오후에 학업문제로 고민하는 고1 남학생과 그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는데 정말 공부가 잘 안돼요.”

“ㅇㅇ아 세상에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은 없단다. 다들 공부를 해야 하니 하는 거지.”


너무 뻔한 말을 너무 진지하게 했나 싶지만 그것 이상 정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ㅎ

삶의 사소한 일상이지만 그것조차 감사로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사랑하니 행복을 만납니다.

1천원 호떡 하나로도 즐거운 주말여행이 되는 마법입니다.


역시 삶은 누군가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과정의 자서전입니다.

내가 꿈꾸는 사랑은 열정이 가득한 시간입니다.

이왕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라면 후회 없을 최선과 더없는 뜨거움을 품고 싶습니다.

호호~ 불며 먹던 호떡의 갈색 꿀이 한 방울 떨어짐에 그 화들짝 데이는 그 느낌처럼...


꽃을 피워보겠다고 혼자 그리도 애쓰고 있던 진달래 꽃망울에 자꾸 내가 생각납니다.

그렇게 나는 반드시 피워내야 하는 꽃송이처럼 숙명 같은 내 인생을 사랑합니다.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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