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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Jan 21. 2022

미루지 마세요. 하고싶어도 못하는 순간을 만날지 몰라요

남편의 잘못으로 냉랭한 시간을 보낸지 2년이 넘어가는 부부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선뜻 이혼이라는 카드도 쉽지 않고 그러니 어영부영 남도 아니고 부부도 아닌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정상적으로 흘러갈 리가 없습니다. 


마음에는 늘 말로 표현되지 않는 괴로운 감정들이 뒤범벅이 되고 그 여파로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짜증이 확대되고 주변 일은 제대로 풀리는 것이 하나 없는 것 같은 힘든 시간입니다.     

이러다 내가 미치겠다 싶은 시점 저와 인연이 되어 상담이 시작되었고 어제로 8회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이 파릇파릇 살아있는 분이었기에 정말 빠른 속도로 긍정의 기운과 삶의 개선이 이루어졌고 그 사이 신기하게 회사에서 승진도 하고 기분도 편안해져서 행복한 요즘입니다.      


“ㅇㅇ님 요즘 감정이나 기분을 말해 보세요.”

“음... 기분이 째져요. ㅎ 주변인들에 대한 감정적인 여유가 생겼어요.”

“맞아요. 잘난척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거에요. 승진한 지금 마음껏 그 행복감 누리세요.”

그렇게 행복한 기분을 마음껏 느끼고 신나게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런데 ㅇㅇ님 남편분하고 대화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아직도 미워요. 전 시간이 지나면 좀 감정이 정리되고 애틋한 감정도 생기고 그럼 그때 하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감정이 쉽지가 않네요.”

“절대 지금 상태로는 애틋한 감정이 생기기 힘들어요. 서로에게 문제가 되었던 상처에 대해 깔끔하게 소독하고 치유를 안 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요. 서로가 힘들어 그저 외면하고 덮어두었잖아요.”     

“그렇겠죠?”

“그럼요. 갈수록 거리가 더 멀어지기만 할 거에요. 이렇게 지내다보면 서로에게 지금보다 더 서운한 일들이 발생할 확률도 높아요.”


“한 15년 있으면 우리 애들이 성인이 되는데 그럼 괜찮지 않을까요?”

“왜 귀한 내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려고 하세요? 만약 15년 후 내가 죽는다면요? 그럼 평생 이렇게 살다 끝나는데 그럼 안 되잖아요. 얼마나 꽃 같고 얼마나 귀한 내 시간인데”     

그 곱고 예쁜 얼굴과 눈망울에 슬픔의 그림자가 지나갑니다. 

“너무 힘들면 지금 안 해도 돼요. 억지로 하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지금 힘들어 회피하면 더 큰 시간을 만날 확률이 높아요. 그리고 언제나 시간이 나를 기다려 주는 것은 아니에요.”

눈물이 뚝뚝! 결국 제가 누군가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젊어서 아버지와 엄마는 떨어져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고성 읍내 경찰서 근무를 하고 엄마는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요즘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 옛날이라 그랬나봅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참 미남이셨습니다. 얼굴도 뽀얗고 눈도 부리부리하고 경찰공무원이니 인기가 많았다 합니다.      


엄마는 새까만 햇볕 아래 그으린 거칠고 새까만 얼굴이 너무 싫었지만 늘 농사일로 바빴고 아버지는 그렇게 개인적인 자유를 누리면 몇 십년 세월을 살았지요. 

그 스트레스로 1979년 엄마는 위암이 걸렸고 그래도 천운으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엄마는 평생 아버지를 욕했습니다. 


3년전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왼쪽 편마비가 오자 아빠는 엄마를 정성으로 간호했습니다.

우리 자녀들과 간병인이 함께 하지만 그래도 밤중에는 아버지가 온전히 엄마의 보호자였습니다.      

엄마는 마치 복수를 하려는 사람처럼 아버지를 괴롭혔습니다. 

보다 못한 제가 엄마에게 왜 그러냐고 화를 냈더니 “너그 아버지 내 젊었을 때 죄 지은거 벌받는기다.”

그렇게 엄마에게는 단단한 응어리가 늘 함께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랬습니다. 

“내가 죽기전에 풀고 가야 안 되겠나. 미안하다 소리 한 번만 들어보면 좋겠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참 존경스러운 분이었습니다.      

늘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했고 부모와 자녀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누구나 인정하는 올바른 분이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그 시골에서 엄마는 사모님 소리도 듣는 그런 호사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에게 엄마가 서운한 것이 마음에 남아있으니 한 번만 그 마음 어루만져 주면 안되겠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습니다. “알았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지 얼마 후 엄마가 고관절 골절사고로 병원에 입원을 해 버렸습니다 

병원으로 온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2022.1.15. 토요일 오후 면회를 해보니 엄마는 이제 그 총명한 기억력과 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다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와 눈도 잘 마주치지도 못하고 목소리에 기운도 없습니다.      

혼자 집에 있는 아버지는 늘 애틋하게 제게 그럽니다.

“엄마 회복이 어찌되고 있노? 이제 걸을 수 있나?”

아버지는 표현이 안 될뿐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들어가는 시간입니다.     

그 마음과 달리 아버지는 어쩜 엄마에게 이제 다시는 “내, 미안하다”하는 이 한 마디를 못할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평생의 소원이던 그 말을 들어도 진짜 그 마음 다 풀고 갈수 있을지, 그 감사함을 온몸으로 제대로 느끼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상황이 안 좋은 것입니다.      


“ㅇㅇ님 너무 힘들게 나를 밀어붙이지는 마세요. 다만 살아보니 시간이 무한정 있는게 아니에요그러니 한편 너무 미루지는 마세요그럼 마음과 다르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순간을 만날지도 몰라요.”

사람이 참 무언가를 잃고 나면 항상 후회하고 느끼는 시간을 만납니다.      

아버지와 엄마의 시간이 이런것인줄 진작 알았다면 우리가 서둘러서라도 아버지를 설득했을 것입니다.

사실 어려운 일 앞에 대부분 속마음은 회피입니다. 

지금 힘든 것이 싫어 점점 미래로 미루는 것입니다.      


다음번 엄마 면회는 4주 뒤가 됩니다. 

이번 명절에 아버지를 만나면 다시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나마 엄마가 면회장소로 나올 수 있는 힘이라도 있을 때 아버지가 엄마를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이 내일 당장 어찌될 지 알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그러니 살아감에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미룰일이 아닙니다.


혹시 마음에 남아있는 무언가가 있나요?     

그렇다면 더 커진 상처로 치료가 힘들어지기 전에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흉터가 남더라도 아픈 시간을 보내고 반드시 새살을 만날테니까요. 

이런저런 생각 속에 문득 딸아이 얼굴이 떠오릅니다. 무단히 이유 없이 그리움이 차 오릅니다.      

“딸, 엄마가 출근중인데 네 생각이 갑자기 났어. 그래서 당장 전화하는 거야. 이렇게 보고싶을 때 바로 전화하고 목소리 들을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너무 좋다. 사랑해!”

“응, 엄마, 나도 사랑해. 오늘도 파이팅!”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무한한 축복이고 행복이고 눈물겨운 감사입니다. 

미루지 마세요행복도 사과도 사랑도 감사도 지금 당장 마음 흠뻑 후회 없이 누리세요

우리는 내일이 아닌 오늘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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