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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Dec 10. 2021

그저 잘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엄마, 일어나봐, 누나가 연락이 안돼.”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 비몽사몽으로 눈을 뜹니다. 

시간을 보니 새벽 12시 40분이 넘었습니다.  


“무슨 말이야?”

“누나랑 집에 언제 오냐고 카톡하고 있었는데 내 메시지를 보고 1분 후부터 체크가 안되고 있어.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그게 1시간 가까이 됐어.”

순간 머리가 정지가 되고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딸에게 전화해 보니 역시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잠들기 전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를 열어봅니다. 

다행히 함께 있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보내라 했더니 낯선 번호 2개가 들어와 있습니다.

늦은 밤이지만 체면을 차릴때가 아닙니다. 

한명은 역시나 받지 않고 한명은 다행히 연결이 됩니다.

“늦은밤 죄송해요. 혹시 우리 ㅇ이랑 언제 헤어졌어요?”

“아, 어머니 전화받고 가야 된다고 하면서 11시 30분 차 탄다고 했어요. 그럼 도착해야 하는데...”


딸은 부산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주말이면 늦어도 토요일 오후에는 집에 도착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저녁 약속이 있어 늦는다고 했고 그럼에도 불안했던 저는 밤 10시 딸과 전화를 해서 닦달을 한 후 전화번호를 받고 출발하는 차 시간까지 확인받았습니다. 


김장으로 너무 피곤한 몸이 버틸 수 없어 대신 아들에게 누나가 제 시간에 돌아오는지 확인하라 했습니다. 

아들은 걱정말라며 자기가 버스도착 할 때쯤 마중도 나간다는 든든한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연락이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아들이 위치추적 확인을 해 보니 아직 해운대로 뜹니다. 

뭐지? 그리고 진동벨을 소리로 전환하는 작업을 하니 갑자기 휴대폰을 뚝 꺼버리는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우리 가족은 멘붕에 빠졌습니다. 


눈물이 글썽이고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애매한 전화만 계속 울려대고 있었습니다. 

그때 딸의 전화가 옵니다. 황급히 전원을 누릅니다. 


“여보세요? 너 어디야?”

“엄마, 미안, 나 이제 버스에서 내렸어. 차에서 잠들어버렸어.”

“너, 진짜 이럴래. 엄마 얼마나 걱정했는데..”


남편과 아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뛰쳐 나갑니다. 

얼마 후 나의 소중한 3명이 다시 돌아옵니다. 

딸을 보자 와락 껴안고 울어버립니다. 


“너, 왜 이래? 왜 엄마 걱정시키는 건데?”

“미안, 미안, 오늘 만난 선배들이 모두 임용고시를 치룬분들이야. 그분들이 합격자 발표나면 관련자료도 주고 혹시 떨어지면 내년에 나랑 스터디도 같이 해 주겠다고 하잖아. 그래서 좀 오래 있었어.”


딸은 내년이면 교육대학교 4학년이 되고 초등임용고시를 치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배들이 도움을 주겠다니 그 어린 생각에도 인간관계를 위해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딸의 어이없는 졸음과 휴대폰 통신사의 오류로 남편, 나, 아들은 정말 피 말리는 시간을 만난겁니다.


다음날 딸의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그저 감사합니다. 

점심을 먹으며 생선살을 발라주고 그냥 밥 먹다 뽀뽀하고.. 그저 옆에 있는 것이 행복합니다. 

얼마나 소중한가 싶습니다. 


월요일이 되어 딸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 야간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오니 남편이 피곤한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분명 뭔가 일이 있습니다. 


“왜? 무슨 일이야?”

“아, ㅇㅇㅇ 때문에 힘들어. 너무 화를 내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아들이랑 술 한잔 하려고 왔더니 저놈은 자네.”

“나랑 마시자.”


그렇게 한잔, 두잔 긴장이 풀어지고 목소리도 높아져 갑니다.

“진짜 ㅇㅇ이 나쁘네. 왜 우리 남편을 괴롭히는 건데. 다 때려치워... 나쁜....”

잠자던 아들이 밖으로 나옵니다. 

“어, 왜 둘이서만 마셔. 나도 나도.”


시간이 흘러 술이 한잔 된 아들이 그럽니다. 

“나는 진짜 우리 가족의 이 끈끈한 행복은 진심 자랑스러워. 나에게도 1번이야.”

“오~ 아들, 엄마도 그래. 그래서 엊그제 누나 연락 안될 때 엄마 미치는 줄 알았잖아.”

“맞아. 나도 그때 진짜 놀랐어. 나는 누나 구하러 가려고 했어. 칼 들고라도 구하러 가야지.”


“나는 엄마, 진짜 내가 너무 어려서 누나가 학교폭력으로 힘들 때 도와주지 못한거 미안해. 그 새끼들 내가 가서 다 집어 던지고 복수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아들이 커 버려서 못해. 범죄자가 되잖아. ㅋㅋㅋ”


술기운인지 감동인지 눈물이 또 올라옵니다. 

자식~ 든든하다. 남편을 봅니다.

“여보야,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할수 없어. 우리가 뭐 있어. 이렇게 건강하면 되지. 다른건 욕심이야.”

“그래 맞다. 나도 당신이랑 딸, 아들만 있으면 된다.”


우리 가족은 과거 힘들었던 사건 하나로 정말 남다른 가족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슨 신앙처럼 서로를 꼭꼭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출근하는 남편을 꼭 안아주며 말합니다. 


“여보, 사랑해, 내가 어떤 순간에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있기 때문이야. 힘내서 잘 다녀와.” 

평소에는 느끼지 못 하지만 그들은 존재 자체로 나의 생명이고 삶의 의미입니다.

남편, 딸, 아들은 제게 존재의 이유이고 또 나는 그들에게 존재의 이유입니다. 


그럼 됐습니다. 더 뭐 있다구요. 그저 잘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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