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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Jan 24. 2022

사랑표현도 학습하고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희 친정 아버지는 좀 특이하신 분입니다. 

제가 초중고를 다니던 시절은 1970~1980년대입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모습에 다소 메마른 정서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 아버지는 요즘의 딸바보는 비교 대상도 안되는 분이었습니다.      


어린시절 폭우가 내리는 날이면 아버지는 저희에게 비옷을 단단히 입히고 택시를 불러 저희를 학교 현관까지 데려다 준 후 출근을 하셨습니다. 

엄청난 비바람에 날아다니는 사물들로 인해 혹시나 만날지도 모르는 안전을 늘 걱정하셨거든요.      

감기라도 걸려서 고열로 누워있으면 입맛 없을 우리를 위해 단팥빵과 카스테라를 사 오셨고, 따듯한 손으로 늘 이마를 짚어주었습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변비가 심했는데 고등학교를 들어갈 쯤 ‘불가리스’가 등장을 했습니다. 

그때도 한 통 700원 정도의 고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소화력이 약한 딸을 위해 4줄짜리 불가리스를 늘 냉장고에 떨어짐이 없도록 채워두셨습니다.

그렇게 자상함이 당연함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다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고~ 그날 이후부터 저는 고난의 재사회화를 해야 했습니다.    

  

처음 시어머니가 자녀에게 칭찬하는 것은 부족한 사람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말씀 하셨을때의 충격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ㅋ

그에 반해 친정아버지는 잘한 것이 있으면 형제 모두에게 알리고 박수를 쳐 가며 맛있는 음식과 푸짐한 용돈으로 격려을 해 주신 분입니다.      

일단 달라도 너무 다른 환경이었습니다. 언젠가 남편에게 불가리스를 사달라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매번 까먹는 겁니다. 26살 어린 신부였던 저는 울먹이며 그랬습니다. 

“우리 아빠보다 잘해주지도 않을거면서 왜 결혼했어? 불가리스 하나도 제대로 안 사주면서”     

그랬더니 남편이 그럽니다. 

“그러지 말고 배달시켜 먹어. 그럼 매일 사주는게 되잖아.”

아시죠? 제가 원하던 대답이 아닌거? 그렇게 저는 매일이 참 서러웠습니다.      


그래도 어쩐답니까? 

아이들이 태어나고 세월이 가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연들에 점점 강인해지고 메말라 가는 거지요. 

처음에는 바꾸고 싶었지만 바뀌지 않는 상황에 많이 싸우고 슬펐고 서로는 왜 그런 감정싸움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갔습니다.     


그런데 한 24년을 살고 나니 제법 잘 맞춰지는 부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포기하는 영역도 늘어나고 상대가 변하는 영역도 있으니까요.

제가 처음 시어머니의 냉정한 얘기를 들었을 때 그랬습니다. 

“어머니, 칭찬을 좀 해 주세요. 집에서 칭찬받아야 나가서도 사랑받죠.”     

생전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어머니가 요즘은 가끔 그럽니다.

“우리 며느리가 최고다. 고맙다.”


그리고 저는 남편에게 불가리스 따위를 사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남편 말처럼 제가 먹고 싶을 때 주문하면 되니까요. 그러니 다툴 일이 없습니다.      

다만 남편에게도 말을 합니다. 

“아니, 여보야 그 장면에서 내가 그 얘기를 하는 것은 이런 답변을 듣고 싶은거지. 그런데 당신이 저렇게 대답하면 내가 얼마나 화가 나겠어.”     


아이 가르치듯 하나하나 감정을 알려주기 시작하는 거지요. 

답답해서 살 수 없다 하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제가 공부라는 것을 해 보니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남자와 여자의 생득적 뇌 기능이 또 다릅니다.      

그러니 나의 기준으로 그가 행동하기를 바라는 순간 엄청난 감정 폭탄을 안고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후천적 학습의 힘을 믿고 시도해 봅니다.      


실제 남편은 산청 산골에서 아들이 중요한 집의 장남으로 자란 탓에 자상한 아버지의 표현이 없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 언젠가 아빠가 좋아 품으로 달려드는 순간 거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게 아버지는 언제나 세상 최고의 지지자이고 사랑꾼이었으니까요.      

잔소리가 이어졌지요. 


‘당신 그거 잘못하는 거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딸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느냐? 딸에게 아버지는 태어나 처음 만나는 작은 이성이다. 그런 대상의 사랑 크기는 다음에 만나는 사람의 애정의 기준이 된다. 당신이 큰 사랑을 주어야 우리 딸이 부족하지 않은 사랑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실 남편이 그런 것은 1차로 시아버지의 영향이었고 그 이상의 모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지금은 세상없는 딸바보이고 지지자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변해가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어제 밤 불 끄고 이불 덮고 누었는데 유산균을 안 먹은 것이 생각납니다. 

“아~ 어쩌지. 몸이 천근만근인데”

“왜?”

“유산균 먹는걸 까먹고 누워버렸다. 일어나기 힘들어.”

“알았어. 내가 가져다줄게.”     

왠 일로 남편이 거실로 나가 유산균 한 알과 물컵을 들고 옵니다. 

“오~ 왠일이야?”


“오늘, 김창옥 강사 영상을 봤어. 그기서 배워서 써먹으라고 해서 해보는거야. ㅋ”     


“아내랑 백화점 가서 보라색 옷과 빨강색 옷을 들고 어느 옷이 좋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남편들이 아, 아무거나 사, 빨리가자, 이러는데     

보라색은 어울리기 힘든색인데 신기하게 잘 어울리네. 빨강색은 어린 당신을 더 어려보이게 하고. 둘다 좋다.

이렇게 말하라고 하더라고. ㅋㅋㅋ     

그 영상을 본 사람들 댓글이 불가능하다고 어떻게 이렇게 하냐고 난리였어.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해 본거야

나, 나 잘했어?”     


“어휴~ 우리 남편은 역시 똑똑하다. 어쩜 이렇게 잘 실천하지. 아주 멋져.”    

 

역시 표현하고 배운 적이 없어 몰랐던 것이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이러니 남자들 애정 표현 학교도 하나쯤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 단톡방 어느 남편분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내가 캘리를 배우기 시작하자 필요할 거 같다며 이면지 한 박스를 구해서 야심차게 선물로 주었답니다.

우리 모두 빵~ 터졌습니다. 선물을 받은 아내는 씩씩거렸지만 전 그 남편분이 왠지 참 귀엽습니다.

나름 얼마나 애정을 담고 그 종이를 구해오셨을까요?     


관심이 없었다면 남들이 쓰고 버린 종이를 정리해서 집으로 가져올 리가 없으니까요. 

과거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하고 함부로 마음을 보여주면 안 된다 했던 문화가 이들의 세상이었습니다.

눈물이 나도 울지 못하고 좋아도 웃지 못하는 감정적 억제 속에 그들의 카리스마가 산다 배웠습니다.


이제는 그들에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남편님들~ 그리 무뚝뚝하게 살아내시느라 수고하셨어요. 그런데 이제는 말랑말랑 따듯한 표현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어쩌지 못해 난감해 할 그들을 위해 어린 영혼을 가르치듯 함께 학습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 표현도 학습하고 연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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