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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호 Apr 18. 2024

시어머님의 잔병도 내 삶이 되었다.

아침저녁 엉덩이 보는 사이가 되었다.

방문을 활짝 열고 시어머님이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하고 계신다.

방문을 닫고 하시면 좋으련만 애들도 보는 데 생각하고 모른척하며 지나가고 한참 있다가 물어보았다.

"어머님 아까 뭐 하고 계셨어요?"

"아 엉덩이에 뭐가 나서 약 발랐다."

"안 보이는 어떻게 발랐어요"

"안 보여도 잘 바른다."


엉덩이에 약 바른 다는 것은 우리 집에 오자마자 들었던 것 같다. 목욕을 하다가 딱지를 때수건으로 밀고 난 후부터 계속 아프셨다고 한다.

벌써 4개월 지났다. 병원에 가보자 해도 약만 바르면 낫는다고 병원을 사양하신다.

다른 곳이 아프면 얼른 병원에 가시는 데 엉덩이라서 보여 주기가 부끄러운지 계속 미룬다.

말을 하면 내가 알아서 하고 있다고 하셔 그냥 지켜보았다.


어머님이 혼자 실 때 손톱이 까맣게 변해서 멍처럼 보였다.

"야야 손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어디 부딪힌 거 아니에요? 병원에 가보셨어요?"


혼자 병원을 몇 군데 가셨는 데 한 곳은 영양실조라고 하고  다른 곳은 손톱무좀인 것 같다고 했다.

여기저기 다녀 보시고 약을 계속 먹고 발라도 차도가 보이질 않는다고 하셨다.

같이 살지 않을 때는 병원에 가셨다고 하면 어머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고 그냥 넘겼다.

같이 살기 전에도 대학병원은 항상 내가 모시고 다니기는 했지만 잔병은 어머님이 알아서 병원에 가셨다.

우리 집에 같이 살기로 한 날부터는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 오시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어머님을 피부과에 모시고 가는 일이다.

병원에는 가셨다고 하지만 혼자 어떻게 진료를 보셨는지 몇 개월 약을 발라도 차도 없는지 궁금해서 직접 병원에 모시고 갔다,

"손톱 무좀입니다. 약 바르고 드세요 좀 오래갈 거예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분명 다른 병원 의사 선생님도 똑같이 처방을 해 드렸을 것인데 잘 낫지 않을 것은  뭐가 문제였을까?

생각해 보니 영양실조도 맞고 손톱무좀도 맞는 거 같다. 잘 챙겨 드시지 못해 생긴 병 같았다.

혼자 계시면서 잘 지내는 듯 보였지만 잘 지내는 게 아닌 듯했다 어쩜 혼자 계속 살게 두었다면 큰일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 와서 규칙적이 식사와 약을 챙겨 드시기 시작하니 몇 개월간 차도가 없던 손톱은 2주 만에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한 달 후에  손톱무좀은 완전히 다 나은 듯했다.


며칠 후 엉덩이에 밴드를 붙이려고 끙끙거리는 어머님이 보였다.

얼른 들어가서 보여 달라고 했다.

"어머니 한 번 봐요?"

"아니다 금방 약 발랐다."

"제가 밴드 붙여드릴게요"

마지못해 엉덩이를 보여 주셨다.

엉덩이를 보니 피부가 벗겨져서 살이 보였다.

"어머님 이건 약 만 발라서는 안 돼요 내일 당장 병원에 가요"

"연고 있는 데 뭐 할라고"

"그냥 두면 욕창이 되겠어요"


다음날 병원에 갔다.

선생님이 상처를 보시더니 치료가 오래 걸릴 거 같다고 아침저녁 약을 잘 발라 주라고 하셨다.

거의 욕창에 가깝다고 하셨다.

누워 계시는 분들이 혈액 순환이 안 돼서 생기는 걸로 알았는 데 어머님처럼 걸어다니 분도 욕창이 생길 줄을 몰랐다.

"아휴 별 병이 다 있어가지고 니 귀찮게 한다. 늙으면 얼른 죽어야지 죽지도 않고 자꾸 병만 생긴다."

요즘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약 바르고 먹으면 괜찮아지니 걱정 마세요." 하고 말하고 말았다.

죽고 사는 것이 어디 마음 대로 되는 것인가 사는 동안은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인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아직 욕창은 아니지만 욕창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침저녁 2번 약을 발라주고 거즈를 붙여 주었다.

욕창 방석도 주문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엉덩이 약 발라요."

"뭐 좋은 엉덩이라고 보고 싶나? 일만 정신이다. 한테 미안하고 고맙다."

누가 이렇게 약을 발라 주겠냐며 약 바를 때마다 고맙고 미안하다를 반복하신다.

거의 두 달가량 아침저녁으로 어머님 엉덩이 보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집에 와서 몇 달 만에 가지고 계시던 지병 말고 잔병을 치료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냥 그대로 두었으면 큰 병으로 진행될 뻔했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신다는 것 그냥 같이  사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챙겨야 한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도 비슷하다. 

음식부터 약 챙기기, 기분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기고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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