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May 04. 2021

[헌정/리메이크 앨범 5] SG워너비의 따뜻했던 일탈

SG워너비 [Classic Odyssey]


그 시절 사람들은 그걸 ‘소몰이 창법’이라 불렀다. 발성이 소를 모는 듯한다 해 붙은 이름이다. 슬픔이라는 단 하나 감정을 우물물 길어 올리듯 퍼담고 또 퍼담는 이 변종 창법은 200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다. 박효신, 환희, 바이브, KCM, 휘성 등 쟁쟁한 가수들이 이 창법을 구사했고 그 정점은 SG워너비라는 보컬 그룹이 찍었다.(그룹 내에서도 김진호라는 인물이 유난히 이 창법을 애용했다.) 세상은 이 노래법을 ‘알앤비 창법’과 같게 여겼지만 그건 장르의 부분일지언정 전부는 아니었다. 과잉 해석이었고 왜곡된 정의였다.


김진호의 모친이 앨범 제목 공모에 응모한 ‘오디세이(Odyssey)’가 그대로 앨범 타이틀에 들어간 [Classic Odyssey]는 바로 소몰이 창법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SG워너비의 전성기를 알린 2집 [살다가]와 같은 해에 나왔다. ‘1978~1993’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앨범은 1980년대를 중심으로(14곡 중 11곡이 80년대 곡들이다) 90년대까지 포괄하는 리메이크 음반이다. 하지만 수록곡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 1980년에 발표(조용필의 ‘단발머리’와 이범용/한명훈의 ‘꿈의 대화’)됐고 가장 근작도 1997년의 곡(이승훈의 ‘비 오는 거리’)이어서 ‘78년부터 93년까지’라는 부제는 그저 리메이크 대상의 시대적 거리를 상징하는 차원으로 보면 되겠다. 물론 발표 때 이 앨범이 지향한 ‘젊은 세대와 앞 세대를 모두 어우르는 선곡’은 발매 후 16년이 지난 지금 세대들에겐 ‘똑같은 옛 세대’들의 구분일 뿐이겠지만.


전성기에 맞춰 발표해 행여 이 앨범을 ‘물 들어올 때 노 저은’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을 위한 선곡 작업은 그룹 데뷔 때부터 해온 것으로, 예민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포함해 후보는 무려 300여 곡이었다. 그중 타이틀 트랙은 멤버들과 소속사 대표의 합의에 따른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 대부분 원곡에 가깝게 다시 부른 이 작품의 예산은 10억 원이었다. 10억 원. 음반 내 절반 트랙을 편곡한 조영수의 한해 저작권료에 맞먹는 액수다.


[Classic Odyssey]에는 TV조선 트로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의 심사위원으로 유명한 조영수를 포함해 프로듀서 5명이 투입됐다. 이중 조영수는 중복곡(‘내 마음의 보석상자’와 ‘꿈의 대화’)까지 총 여덟 곡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며 사실상 앨범의 편곡 조타기를 잡았다. 조영수 다음으로 많은 곡을 만진 사람은 신화, 빅마마, 이수영 등에게 곡을 준 서재하로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 전영록의 ‘종이학’, 신계행의 ‘가을 사랑’ 세 곡을 맡았다. 이어 이현승과 박덕상이 이문세의 ‘소녀’, 푸른하늘의 ‘눈물 나는 날에는’과 동물원의 ‘혜화동’,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각각 손 보았다. 작곡가 김형석의 제자인 이현승은 소녀시대, 엑소, 다비치, 인순이 등에게 곡을 준 작/편곡가이고 거북이, 이승기, 티아라, 춘자의 곡을 쓴 박덕상은 SG워너비의 ‘이별하길 정말 잘했어요’와 ‘여보세요’의 주인이기도 하다. 조영수와 티아라 곡들을 공동으로 만든 김태현은 이범학의 ‘이별 아닌 이별’에 자신의 해석을 보탰다.



300여 곡에서 추려서인지 원작들이 가진 개성은 실력 있는 프로듀서들로서도 쉽게 지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뺀 모든 곡들이 포크 넘버(포크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이 되고 싶다”는 팀 이름 뜻을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인 조영수의 소스는 그에게 진땀깨나 빼게 했을 것 같다. 가령 ‘내 마음의 보석상자’에서 김진호가 앞서 말한 독특한 창법으로 몰아붙이는 코러스는 분명 곡을 해치고 있는데, 이주호와 유익종의 잔잔하면서 팽팽한 보컬 화음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김진호의 과장된 흐느낌은 확실히 부담스러운 무엇이었다. 어쿠스틱 기타의 퍼커시브 주법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강박적 창법만은 버리지 못한 ‘비 오는 거리’, 젊음의 풋풋함과 진지함이 거세된 채 알앤비 느낌 하나에만 집착한 ‘꿈의 대화’, 고병희(햇빛촌)의 담담한 고독을 넘어서지 못한 당시 신인 가수 수지(물론 우리가 아는 그 수지와는 동명이인)의 존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치 자본에 기댄 거대한 스트링과 테크놀로지에 힘입은 매끈한 사운드, 그리고 절정의 인기에 올랐던 정체불명의 창법이 채울 수 없는 원곡만의 오라(Aura) 앞에서 조영수는 길을 잃은 듯 보였다. 그나마 작가 이외수가 “포유동물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절실한 그리움이 있는 서정시”라고 극찬한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여기선 하림이 하모니카를 불었다)이 참신한 해석으로 인정받을 만한 요소를 지녔을까, 나머지는 거의가 제자리걸음에 가까웠다.


조영수가 편곡한 곡들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되도록 원곡의 느낌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전체를 일구었다. 이젠 고인이 된 채동하가 부른 ‘소녀’에서 이현승이 이영훈(작사/곡)과 김명곤(편곡)의 숨결을 조심스레 따라가는 모습이 좋은 예다. K2 김성면의 감성을 무난히 안고 간 ‘사랑과 우정 사이’도 그렇고, 김진호가 홀로 노래한 신계행의 ‘가을 사랑’ 역시 닦여있던 옛 소리길을 충실히 따르는 편이다.


반면, 김용준이 부른 ‘눈물 나는 날에는’은 젊은 날의 차분한 격정을 쾌적한 보사노바 리듬에 실어내면서 원곡에 다른 기운을 얹었고, 최장호라는 인물의 조금은 불필요해 보이는 랩을 인트로에 심어 다른 길을 모색한 ‘이별 아닌 이별’은 차라리 오태호의 단순 명료한 작법에 점수를 더 주고 싶게 만든다. 화려한 보컬 기교가 오히려 독이 된 ‘혜화동’ 역시 그 옛날 동물원의 순수함을 추억하게 만드는 데선 매한가지다. 참고로 오태호(‘사랑과 우정 사이’, ‘이별 아닌 이별’)는 김창기(‘사랑의 썰물’, ‘혜화동’)와 함께 각 두 곡 씩 자신의 곡들을 이 음반에 빌려주었다.


‘다시 만든다’는 것에 가치를 매길 때 이 음반에서 유독 귀가 가는 트랙은 ‘종이학’과 ‘단발머리’다. 녹음 기술과 장비 형편 상 시대의 한계에 직면했을 전영록 버전의 소리를 더 깔끔하고 헤비하게 세척한 ‘종이학’은 리듬도 앞으로 쏠리는 셔플로 갈아입어 원곡을 압도한다. 흔히 시대를 앞서 나갔다 평가되는 천하의 ‘단발머리’도 베이스가 이끄는(신현권 또는 서영도의 솜씨다) 두꺼운 디스코 비트를 앞세워 11년 전 공일오비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을 에둘러 드러낸다. 이처럼 이 앨범의 ‘보석상자’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리메이크 앨범들은 대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못(Mot)의 'What A Wonderful World'처럼 듣는 재미를 북돋워주는 창의적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유의 [꽃갈피] 시리즈처럼 기존 세대 유행가를 지금 세대에게 알리는 역할이다. SG워너비의 것은 둘 중 후자에 더 치우쳐 있다. 그들의 야심 찬 2.5집 [Classic Odyssey]는 비록 해석은 덜 창의적이었으나 잊히기엔 아까운 옛 음악을 당시 청춘들에게 다시 들려준 점에선 성공적이었다.


[헌정/리메이크 앨범 리뷰 1] 조동진을 기억하다

[헌정/리메이크 앨범 리뷰 2] 옛노래들을 '기억'하다

[헌정/리메이크 앨범 리뷰 3] 헤비메탈 전설의 복기

[헌정/리메이크 앨범 리뷰 4] 신중현 다시 부르기


매거진의 이전글 내리막길에 선 네오 펑크 영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