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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25. 2022

아내가 다시 설렌다고 말한다

아내의 설렘을 지켜주기 위해 열심히 써봤습니다

 "철수 씨, 나 이력서 좀 써줘요"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내가 날 불렀다. 즐겨보던 드라마 시청에 집중하며 있던 터라 갑자기 건넨 아내 말의 의미가 잠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네? 무슨 이력서요"

 "나 알바 자리 알아보고 있는데 구인하는 회사에서 이력서 써서 온라인으로 접수하라고 하네요"

 "영희 씨 이력서를 내... 내 가요?"

 "식물 판매하는 알바인데 브런치 글 쓴다 생각하고 자기소개서 좀 써 줘요"


시선을 TV 모니터와 아내에게 번갈아 옮기던 난 아내의 간절함을 알기에 그러겠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자기소개서를 작성 중이던 아내의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아내의 폰을 받고 생각하기도 잠시 이내 난 아내가 작성 중이던 자기소개서의 빈칸을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채워나갔다. 누구보다 아내를 잘 아는 나이기에 아내가 해왔던 식물 관련 일, 취미와 활동을 빼곡히 채울 수 있었다. 오히려 아내는 알바 자기소개서에 너무 진심이면 안된다고 만류할 정도였다.


아내는 그렇게 채워진 자기소개서에 만족해하며 아르바이트 구직을 위해 온라인으로 회사에 입사 지원했다. 지원한 이력서에 반응이 오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다음 날 아침, 난 평소같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메일을 읽던 시선이 모니터 아래로 향한 건 바로 그때였다. 톡 알림 창이 깜빡였고, 이내 알림 창에 보이는 메시지의 송신자가 아내임을 알 수 있었다.


 '어제 이력서 넣은 곳 평일 지원 시간대는 마감됐데요. 주말 지원은 가능하다는데 무리겠죠? 아쉽네요'     

아내의 깨톡 메시지를 읽던 난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아내에게 톡 메시지를 보냈다.


 '하고 싶으면 해 봐요. 그래 봤자 계약 기간 네 달이잖아요. 나하고, 애들 때문이면 괜찮아요'

 '4개월 동안 나 주말에 없어도 돼요? 신중하게 생각해 봐요'


다른 일 같았으면 뻔한 답이었다. 하지만 지원하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아내가 원하던 업무의 영역임을 알기에 난 4개월 동안 주말, 휴일을 아내 없이 보내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고 아내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줬다. 아내가 지원한 곳은 화훼단지 내에 식물 판매처였고, 늘 식물과 꽃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최적의 아르바이트였다. 집과도 가까운 곳에 위치해 출퇴근이 용이하기도 해서 더 끌리는 자리였다.

작년 가드너로서 18년 만에 새롭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내는 긴 시간 꿈꿔왔던 일을 느지막이 할 수 있게 된 것을 무척 감사해했다. 몸은 고되고 힘이 들었지만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일을 다녀오기 전, 다녀오고 나서도 지친 몸과는 다르게 얼굴은 늘 생기가 돌았다. 그런 아내가 안쓰러우면서도 아내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 지 세 달이 지날 때쯤 아내에게 가드너 일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던 아내 지인이 그 일을 그만뒀다. 그 바람에 아내도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는 아내 지인과 처음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지인의 소개로 회사와 계약했던 아내였기에 지인의 계약 파기로 아내도 함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는 아내라도 계약을 이어가길 원했지만 가드너를 하기 위해서는 팀도 구성해야 고, 지방 일이 많아 차량이 필수였다. 당시 아내에게는 무리가 있었던 제안이었다.  


그렇게 꿈꿨던 일을 삼 개월 만에 접은 아내는 한 동안 많이 아쉬워했고, 그 일을 다시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희망과는 다르게 일은 잘 잡히지 않았다. 설상가상 큰 아이의 대학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는 아예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내는 작년 여름 이후 일을 하겠다는 의욕을 잠시 접었었다.


해가 바뀌면서 아내는 틈틈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공고가 난 화훼단지 판매소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말 알바 지원을 하고, 면접까지 보고 온 아내에게 며칠 전 기다렸던 소식이 전해졌다. 함께 일하자는 회사로부터 통보였고, 2월부터 일을 바로 할 수 있게 됐다. 주중 알바가 아닌 게 아쉬웠지만 오히려 회사 입장에서는 손님이 몰리는 주말에 아내와 같이 식물에 박학다식한 사람을 쓸 수 있게 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듯싶었다.


 "철수 씨, 나 주말에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설레요"

 "영희 씨가 좋다고 하니 나도 좋아요. 집에서 가까우니까 주말에 내가 갈 테니 점심은 나하고 먹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간절히 원하는 일들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소소하게는 신형 스마트폰을 갖고 싶다거나, 가방을 갖고 싶다거나 혹은 내 아내처럼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다는 것과 같이 크거나 작은 바람들이 한두 가지씩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내게도 글을 쓰며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꿈꿔오는 일들을 모든 사람들이 이루지는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자신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다 사라지는 꿈이 될 것이고, 또 누구에게는 간절히 원한 꿈을 종국에는 이루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는 무던히 애쓰고, 노력하겠지만 어떤 이들은 막연히 꿈을 갖는 것에 그칠 것이다. 무엇이든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다.


아내를 보면서 초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좋아하는 일을 마주하는 마음이 '설렘'이면 그 사람은 그 일에 대해서 얼마나 진심일까. 또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내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 설렘으로 인해 너무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친다. 난 최근 좋아하는 글쓰기에 그 아름다운 모습이 많이 사그라진 듯싶다. 아내를 보며 다시 그 초심을 다잡는 오늘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내를, 아내의 일을 응원한다. 아내의 그 '설렘'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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