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 율리시즈 Oct 23. 2017

마상재인(馬上才人)

모로코 여행 에세이-볼루빌리스2

역사속 많은 제국들은 말(Horse)을 매우 요긴하게 이용하였다. 그 중 몽골제국과 말의 밀접한 상관관계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군사용 말들 뿐아니라  농부들의 밭갈이에도 상인들도 짐운반에도 말은 유용했다. 그래서 말이 인류역사와 함께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가 말은 서커스 쇼에 등장하여 곡예사와 앙상블을 이루며 관객들을 즐겁게해주는 예능의 재질도 갖고 있었다. 말님들은 견(Dog)님들처럼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인간과 함께하고 일생을 헌신한 몇 안되는 친근한 동물이었다.



모로코의 로마유적 볼루빌리스는 아직도 많은 모자이크 바닥장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무려 2000년 가까운 세월로 닳은 흔적위에다 들판에서 날아와 앉은 먼지 그리고 객지에서 찾아 온 여행객들의 눈길이 머문  모자이크들였다. 지붕도 없어 무한히 펼쳐진 하늘의 별도 보고 달도 보는 그리고 비도 우두둑 두들겨 맞아야되는 모자이크 속 인물들과 동물들을 그렇게 만났다. 그 중에 내 눈에 쉽게 들어온 것은 말타기하는 청년 모자이크였다. 자세히 이 모자이크를 살피면 재미있게도 청년이 말을 거꾸로 타고 있다. 말꼬리 부분으로 얼굴과 몸체가 향한 모양이다. 말은 앞으로 전진하자 하고 마부는 후퇴하자고 하는 것인가? 혹시 모자이크를 할때 실수를 했을까? 거꾸로 탄 말등위에서 청년의 오른손은 말고삐를 잡고 왼손은 트로피를 공중에 높이 치켜들고 있다. 만세… 그는 로마병사도 아니고 말등에 짐을 가득 실은 상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 청년은 로마의 ‘마상재인(馬上才人)’ 즉 말타기 곡예사였다.



와… 짝짝짝. 우선 승리에 2000여년 전 로마 관객처럼 박수를 보냈다. 축하 축하… 그렇게 이 청년곡예사는 여행자들의 박수도 받았다.



곡예를 하는 서커스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 영어에서 빌려온 곡예란 단어 ‘서커스(circus)’는 원래  그리스어였고 후에 라틴어로 정착한 것이 영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영어단어는 전세계로 퍼졌고 우리말이 되었다. ‘동춘 서커스’라는 유랑 서커스 단이 해체됐다는 신문기사를 아주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났다. 이런 서커스 단 말고도 영국 교통 표지판을 보면 곳곳에 서커스란 지명도 많다. 런던 시내에서 ‘피카딜리 서커스’라는 아주 잘 알려진 지명도 있고 가까운 곳에는 ‘캠브리지 서커스’도 있다. 캠브리지 서커스는 대니 보일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2008)’의 마지막 승패를 가르는 퀴즈의 정답이었다. 그리고 007 제임스 본드 소설이나 영화보다 훨씬 무게있는 스파이 소설을 쓴 ‘존 르 카레(John le Carré)’가 바로 이곳 캠브리지 서커스에 영국 첩보부 MI6 를 소설속에 위치시켰고 첩보작전 명을 ‘서커스(The Circus)’라 이름지었다. 동서냉전의 첩보전은 서커스처럼 아슬아슬 재미있으라는 암시인가?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 로마에 가면 시내에 아직도 흔적이 있는 ‘막시무스 서커스(The Circus Maximus)’가 있다. 로마 시내 여행일정에 꼭 포함되는 로마제국의 중요 유적지이다. 영화 ‘벤허’가 여기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찰톤 헤스톤이 총대신 채찍을 휘두르는 유명한 전차 경주신을 여기서 찍었다. 막시무스 서커스는 라틴어로 최고 최대의 서커스(greatest 또는 largest circus)라는 뜻이다. 서커스는 글자뜻 그대로 건물이 둥글다고 생각되지만 로마의 막시무스 서커스처럼 긴 직사각형 형태에다 끝을 둥글게 만들었다. 로마제국 당시의 서커스는 지금의 스타디움 구실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서커스는 말과 그 말이 끄는 전차를 전시하거나 말쇼(equestrian shows)를 벌이거나 또는 병사들의 가상전투 연습까지 하는 다용도의 장소였다. 그리고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악명높은 글라디에이터 싸움까지…



모로코 모자이크의 청년 곡예사는 혹시 꿈의 무대, 로마의 막시무스 서커스까지 가서 원정곡예를 했을까? 아니면 북아프리카의 평원에서 말을 달리며 지역민과 로마주둔군앞에서 멋진 마상재 곡예를 펼쳤을까? 물론 여행 가이드는 물론 이 모자이크를 발견한 고고학자도 모를 것이다. 정확한 문헌이 발견되지 않는 한 이 모자이크의 주인공 곡예사는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처럼 실제를 바탕으로 한 가상의 인물일 것이고, 다만 그가 트로피를 들고 있기에 당시 우승자를 모델로 했을 것이다. 이 로마시대 말타기 곡예는 이 청년처럼 거꾸로 말을 타는 재주뿐 아니라 우세인 볼트처럼 질주하는 말등에서 공중을 건너뛰어 바로 옆에 달리는 다른 말의 등으로 갈아타는 곡예가 성행했다고 한다. 쏜살같이 내달리는 말에서 건너뛰기를 해야하니 위험한건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곡예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 성공하면 짝짝 관중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옮겨타기 뿐 아니라 말 등에서 갖은 묘기를 보여주기에 연습도 엄청해야 할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말을 탄채 자신의 몸을 말등 옆에 교묘히 숨기는 신출귀몰한 묘기로 화살을 피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로보면 조선왕조의 시조도 곡예사였다. 이성계처럼 새 왕조의 왕좌에 오른 건 아니지만 피나는 노력끝에 얻은 최고라는 찬사의 상징인 트로피를 공중에 번쩍 들어올린 자랑스런 모로코의 곡예사를 보니 사실 우리 삶도 곡예사와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성공의 트로피를 염두에 두고 시간처럼 내달리는 말등에서 열심히 노력해 재주부리는 마상 곡예사, ‘마상재인(馬上才人)’인 것이다. 누구나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누구나 이 곡예사처럼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무대가 제국의 중심 로마의 막시무스 서커스에서 수만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앞이든 아니면 단지 몇십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모로코의 황량한 들판에서 묘기를 부리든… 그리고 가끔 이 청년 곡예사처럼 앞으로만 내달리는 말위에서 가끔 뒤를 돌아다 보는 재미나고 여유있는 묘기도 펼칠 수 있다면...


https://brunch.co.kr/@london/100

https://brunch.co.kr/@london/107

https://brunch.co.kr/@london/102




로마의 '막시무스 서커스'의 원래 형태.

지금 남아 있는 "막시무스 서커스'

정조 때에 발간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말타기 모습이 보인다.

사진 출처: www.naver.com



매거진의 이전글 사진 철학자:살가도의 세상단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