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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Oct 02. 2017

중세로의 시간여행

-모로코 여행: 페즈(Fez)

모로코의 시인 ‘모하메드 베니스’의 고향땅 페즈(Fez 또는 Fes)가 언덕 아래로 펼쳐졌다. 무려 12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모로코의 경주였다. 페즈없이 모로코의 역사는 말할 수 없고 페즈없이 모로코의 영혼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페즈를 보지않고 모로코를 봤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고향 페즈에서 그의 시 ‘먼지 장미(Rose of Dust)’ 중 짤막한 두 연이 떠올랐다.



산산조각난 곳


새벽 미풍


날 깨우고



내 어깨 아직 수면상태


구름 한조각 가리키는


영원의 한 찰나


                          (1)



모하메드 베니스 시처럼 이곳 페즈에서 번개같이 스치는 영원의 한순간을 볼 수 있을까? 적어도 1200년 역사의 먼지를 뒤집어 쓰다보면, 그 역사의 공기로 숨쉬다보면 혹여 잠자는 영혼이 깨어나지 않을까? 장미처럼 화려한 꽃은 피우지 않더라도 이 미몽에서 깨어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소망을 안고 페즈의 꼬불꼬불한 미로로 걸어 들어갔다.



1200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꾀죄죄한 학생들, 무거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논쟁하던 학자들, 풍성하고 긴 아랍식 의상을 입고 수염 덮인 입으로 낭낭히 코란을 암송하던 이맘들이 어깨를 서로 부딪히며 지났을 거리였다. 북아프리카나 가까운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온 갖가지 물건을 낙타위에 한짐 가득싣고 터벅터벅 걸었을 골목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발자국과 낙타의 발자국이 서로 뒤엉킨 북적대는 페즈의 미로를 걸었다.




역사로 켜켜이 쌓인 좁고 음침한 거리가 곳곳에 있는 페즈는 세계 최고가 하나도 아닌 둘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보다도 오래된 세계 최초의 대학이 아직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세계 최고로 길다는, 뱀처럼 또아리를 튼 꼬불꼬불한 메디나(Medina)를 가진 미로의 도시가 바로 이곳이다. 거기다가 학생이 있고 학교가 있고 그러면 으레 책이 있어야 하는 법, 세계 최고중의 하나인 중세로부터 기원된 4000여종의 고대와 중세 사본을 보유한 도서관도 바로 이곳 페즈에 있다고 하니 페즈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학문의 도시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페즈는 1912년까지는 당당히 모로코의 수도였기에 정치적 흔적도 아직 남아있고 당연히 모로코 왕들의 왕궁이 이곳에 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페즈를 방문하는 일은 어린아이가 올랜도의 디즈니를 방문하는 것만큼이나 설렜다.



페즈는 두 개의 메디나(이슬람식 시장과 타운)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구 페즈(Old Fez)였고 다른 하나는 간편하게 신 페즈(New Fez)였다.


신도시라 부리는 ‘페즈 엘 즈디드(Fez el Jdid)’는


이름만 신도시이지 800여년전인 13세기에 건설되었고 ‘페즈 엘 발리(Fez el Bali)’라 불리는 구도시는 500년을 더 거슬러 8세기 경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게다가 프랑스 통치시기인 20세기 초에 세워진 또다른 타운, 프랑스어로 새 타운이란 뜻의, ‘빌 누벨(Ville Nouvelle)’이 페즈 안에 또 있었다. 계속  ‘새로운’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그 새로움은 시간이 흘러 먼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 흘러간 과거의 풍습, 문화, 종교로 중요한 모로코의 도시인 페즈는 이제 그 매력이 모로코 밖에도 알려져 모로코 최대의 관광지인 마라케시(Marrakesh)를 따라잡으려 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하여튼 페즈는 이미 인구론 약 백만명이 넘어 모로코에서 카사블랑카 다음가는 도시라고 한다.




구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페즈 엘 발리(Fes el Bali)’를 둘러보았다. ‘메디나’라 좁은 골목이 이곳저곳 끝도없이 이어졌다. 라비린스(labyrinth)라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이런 곳에 주소는 어떻게 붙일까? 우편배달부는 어떻게 편지를 전할까? 복잡하고 비좁은 골목안에서 서성이며 이해못할 미로를 얄팍한 머리로 이해하려 애썼다. 차없는 거리로 세계에서 최고로 길다는 이 ‘세계문화유산’의 골목들은 빵빵대는 차소음대신에 지나는 인파의 북적대는 소리, 등에 가득 짐을 실은 조랑말들의 거친 숨소리가 대신했다. 땀흘리며 지나는 조랑말과 눈마주치며 사진찍다 다시 교통혼잡을 이루는 경우도 허다했다. 무엇이 바쁜지 좁은 골목 요리조리 총총 걸음의 사람들도 많았다. 골목 양편에 오목조목 불을 밝힌 작은 상점들엔 여기가 정말 신비한 나라 모로코구나 느낄만큼 색깔도 다양한 향료와 과일 그리고 전통의상들을 팔고 있었다. 몇군데 조그만 휴대전화 판매점도 있었고 삼성제품도 전시되어 시대를 결코 비켜가진 않았다. 제과들도 빨강 노랑 파랑 무슨 무지개 색을 칠했는지 모든게 원색이었다. 게중에 가장 인상적인건 참수된 낙타의 머리가 쟁반에 그대로 담겨 골목가게에 버젓이 전시되 있거나 가게앞에 그대로 둥둥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자갈치 시장 좌판위에 나란히 전시된 돼지머리가 생각났다. 가게에는 낙타 고기가 뻘겋게 그대로 어지러히 널려있었다. 놀라고 신기한 듯 많은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니 마음씨 좋은 주인이 동동 매달린 낙타머리 옆에 얼굴을 내밀며 치즈라고 하는 자상함도 있었다.



페즈의 좁고 긴 골목인 메디나와 함께 페즈에서 유명한 것은 실외 무두질 염색소인 ‘무두장 구역(Tanners’ Quarter)’이었다. 항상 그렇듯이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은 필수로 여행플랜에 포함돼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가이드를 따라갔다. 별 정보도 없었다. 도착한 거기엔 가죽제품을 파는 그리 크지 않은 보통의 숍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후각상으로 뭔가 엄청난 것이 있음을 눈치챘다. 보통 가죽냄새가 아니었다. 세상에나... 후각으로 뭘 감지하는 것은 김치 냄새와 같은 음식외엔 별로 기억이 없었는데  들어간 숍의 오픈된 창 아래로 어마어마한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나라 우물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동글동글하고 고정된 원통들이 수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도 실내가 아닌 실외였다. 푸른 하늘아래 그 땅에다 구멍을 뽕뽕 낸듯 보였다. 거기서 무두질을 하는 모로코 노동자들을 보았다. 맨발로 이리 밟고 저리 밟는 게 모로코식 지신밟기 풍경이었다. 거기에서 무두질되고 염색된 가죽들은 공장에서 점퍼나 다른 가죽제품으로 생산되어 최고급으로 팔리며 페즈 경제의 일부분을 담당한다고 하였다. 숍안에 걸린 수많은 거무스레한 ‘가죽점퍼’에서 계속 풍기는 누린 냄새와 바깥 실외 무두장에서 나오는 암모니아 비슷한 냄새가 마구 섞여 머리가 어질어질하였다. 숍에 들어오기 전에 가이드가 센스있게 나눠준 민트 입 냄새를 맡았다. 이 민트 잎을 준게 그 지독한 냄새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페즈의 이 무두질은 중세의 방법 그대로 적용한다고 한다. 아니, 그 제조방식을 별 변형시키지 않고 옛방식대로 고수한다고 하였다. 전통방식 그대로 간장이나 된장을 담근다고 광고하는 자본주의가 여기에도 있었다. 생가죽은 산성 성분의 비둘기 변(pigeon excrement)에 담가두었다가 부드럽게 절인다음 소의 소변과 생석회(quicklime)를 섞은 물을 우물같은 통에 넣어 맨발로 한참을 밟는다고 한다. 런던의 공원에서 자주보던 지저분한 비둘기 변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줄 몰랐다. 직설하면, 무두질에 대소변을 다 이용하니 그렇게 냄새가 심했는가 보다. 도대체 이 근방에 사는 주민들은 후각이 마비되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선 어떻게 매일 이 환경에서 지낼수 있으랴. 한편, 이 무두질은  버리지 않고 활용하는 환경친화적인 방식이라고나 할까? 물론 내가 가죽 점퍼를 살 이유는 거의 없지만 필요하더라도 비둘기 변에 소의 소변으로 거친 점퍼를 입고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뜨거운 모로코의 태양아래 가죽을 옮기고 밟고하는 일은 그야말로 중노동하시는 모로코 사람들에겐 미안했다. 그리고 관광객들과 흥정하는 이 숍의 점원들도 또다른 중노동을 하고 있었다. 가격표시가 있어도 누구도 그 가격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어보였다. 영어를 하는 직원들은 계속 디스카운트해준다고 반복했고 그렇게 흥정하는 소리와 화장실 냄새가 뒤섞여있었다. 다시 민트를 코에 갖다댔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공기속의 지독한 화장실 냄새를 피할 수는 없었다. 페즈는 그렇게 냄새만으로도 다름을 보여줬다.


:::::

Rose of Dust

           -Mohammed Bennis

1

Shattered places

and the breeze

of dawn wakes up on me


2

My shoulder still in slumber

A cloud bowing

to the flicker of infinity


(Translated by Anton Shammas

from ‘The Pagan Place’. published by Toubqal, Casablanca, 1996)


https://brunch.co.kr/@london/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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