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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y 27. 2017

시칠리아를 바라보며, 카라바지오를 기억하며

이탈리아 여행 에세이-시칠리아의 메시나

시칠리아 섬에서 가까운 메시나 풍경.


파드레 비오(Padre Pio) 성인이 사시던 ‘산 죠반니’와 이름이 같은 ‘산 죠반니(‘요한’이란 뜻. 영어의 John)’항에서 시칠리아 행 ‘페리’를 기다렸다. 작은 항에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느 항처럼 어수선하고 남부 이탈리아의 경제적 사정을 암시하듯 낡고 페인트가 두룩두룩 벗겨진 건물들이 시칠리아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 건물들처럼 그리 멀지 않은 시칠리아 섬을 바라보았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 하는 시칠리아는 서양 역사에서 힘깨나 쓴 문명들은 제 다 스쳐 지나갔다. 먼저 고대 그리스 문명이 꽃을 피웠으며 아직도 그들의 유적지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이태리 반도의 로마문명이 이곳에 들어왔으며 이를 따라   그리스도교가 전해져 꽃을 피웠다. 뒤를 이어 중세엔 지중해 동쪽에서 온 이슬람 아랍문명이 이 섬을 오래토록 지배했다. 그러나 이질적인 아랍문명의 흔적을 시칠리아 사람들은 지우지 않았다. 아랍의 향료냄새는 그들의 음식에서 뿐 아니라 시칠리아 문화에서도 중요한 인그레디언츠(ingredients)이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인들이 프랑스 문화로 옷을 갈아입은 노르만 문명이 나폴리 왕국과 이곳에서 독특한 꽃을 피워냈고(유명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나폴리에 가까운 곳에서 태어났으며 이 노르만 귀족 혈통이다.), 뒤이어 스페인 제국이 통치해 스페인식 문화를 이곳에 심었다. 시칠리아는 먼 력사를 달려 다시 통일된 이태리에 돌아왔으며 심지어 2차대전으로 잠시 미국의 영향도 받았다. 그래서 시칠리아의 역사는 바로 곁에 있는 동생같은 몰타와 함께 서양의 역사를 간단하게 요점정리 한것같다.

우리를 실은 코치(coach)는 그대로 큰 배안으로 속 들어갔다. 마치 예언자 요나가 고래배속에 삼켜지듯이 큰 페리는 사람들과 차들을 꿀꺽꿀꺽 집어 삼켰다. 문이 닫히고 페리가 둥둥 움직이는게 느껴질 때 난 배의 갑판으로 올라갔다. 먼저 멀어지는 캄브리아의 항구 산 죠반니를 바라보았다. 우리나라와 산세가 비슷했다. 그래서 정겨웠다. 가난한 시칠리아 사람들은 이 산들을 바라보며 독일로 프랑스로 영국으로 또 같은 나라의 공업화된 북부 이태리로 돈벌이를 위해 떠났다.  갑판을 휭 둘러 배가 향하는 시칠리아 섬쪽으로 옮겼다.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라지만 앞에 바로 보이는 섬은 자신의 큰 덩치를 숨기고 있었고 서양역사 전체를 꼭 부화할 계란을 품고 있는 어미닭처럼 앉아 있었다. 시칠리아의 하늘은 맑았다. 맑았다는 말은 푸르다는 말이고 바다와 색깔이 비슷했다. 그러나 구분은 되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하늘이 연한 푸른색을 띠고 바다는 짙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푸른색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었다. 이태리 사람이라고 다 같진 않았다. 시칠리아는 달랐다. 그 연한 푸른색 사이에 ‘메시나(Messina)’가 있었다.

난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지오(Caravaggio)’가 떠올랐다. 로마와 나폴리 그리고 또 몰타를 거친 도망자의 몸으로 이 섬을 향해 작은 배를 타고 오며 바라보았을 카라바지오의 심정이 어땠을까?  살인자로 쫒기는 신세에다 기세등등한 몰타의 기사단에 쫒기어 이곳으로 왔으니 모르긴 몰라도 세상 끝까지 도망친 자의 이판사판의 심정은 아니었을까? 그는 이곳에서 오랜 친구인 ‘마리오 민니티(Mario Minniti)’를 만났다. 이 친구는 시칠리아의 귀족이었고 결혼해 시칠리아의 도시 시라쿠사(Syracuse)에서 살고 있었다. 거기에서 메시나로, 또 섬의 주도인 팔레르모에도 갔을 거라고 카라바지오의 전기작가들은 말한다. 시라쿠사와 메시나에서 카라바지오는 도망자의 신분에서 그래서 약간은 정신이상자의 상태에서 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화들을 그렸다. 도망자이지만 이곳에서도 그의 명성과 재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정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이곳 시칠리아에서 그린 그림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수있는 명화 카탈로그에 항상 끼이는 작품들이다. ‘산타 루치아의 매장(Burial of St. Lucy), 나자로의 부활(The Raising of Lazarus), 그리고 목자들의 경배(Adoration of the Shepherds) 등이다.

시칠리아 섬에 거의 다다랐다. 딱 25분이 걸리는 지척의 거리였다. 왼편으로 메시나의 조용한 풍경이 보였다. 등대에 가까운, 좀 더 바다쪽으로 성모상을 이고있는 높은 기둥도 보였다. 그리고, 아! 메시나 대성당의 둥그런 돔도 희미하게 보였다. 카라바지오! 카라바지오! 다시 카라바지오를 불렀다.

이곳 메시나에서 부유한 상인이었던 ‘죠반니 바티스타 데 나자리(Giovan Battista de’ Lazzari)’는 카라바지오에게 로마보다 세배에 달하는 그림값을 그에게 지불하였다. 카라바지오는 이 부자의 성인 나자리(Lazzari)를 따라 이 성당의 제단화로 ‘나자로의 부활(The Raising of Lazarus. 위의 그림)’을 그렸다. 이 제단화는 그의 가족 채플에 걸렸다.

카라바지오 '라자로의 부활'


하늘은 맑았다. 그러나 카라바지오를 생각하면 어두웠다. 아니, 그의 그림, '나자로의 부활'을 생각하면 더 그랬다. 마음과 육체는 따로 놀았다. 푸르른 터코아즈(turquoise. 쪽빛) 색상의 바다와 하늘 아래에서 왜 이럴까? 이런 풍경을 맨날 바라보는 시칠리아 사람들에게도 우울증은 생길까? 카라바지오가 거장임을 알고 그 부자는 그 값을 치렀다. 쫒기는 도망자였던 카라바지오에게 그 돈은 과연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세상 제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가만히 그 그림을 다시 떠올렸다. 어둡다. 이 그림의 거의 80%는 어두움이다. 이건 카라바지오의 ‘키아로스큐로(kiaroscuro)’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림을 그린 예술가의 속마음을 그대로 들여다 볼수도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면 검고, 어둡고, 칙칙하고 우울한(gloomy)한 인상은 회피하려해도 할수없다. 당시 카라바지오의 무드(the artist’s mood)가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이 그림의 제목이 ‘나자로의 부활’이 아니던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부활, 그렇다면 생명을 다시 부여받은 생동감있는 장면을 묘사해야 하는 게 아닌가? 부활은 햇살이 가득한 노란색이나 적어도 바로 눈앞에 보이는 시칠리아의 하늘색이나 지중해의 바다색이어야 하지 않을까? 왜 카라바지오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왜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자연의 빛을 시시때때로 관찰하며 그대로 화폭에 담지 않았을까? 더구나 햇빛없는 우중충한 파리나 북부 프랑스도 아닌 햇빛 찬란한 시칠리아에서?

포스트모던 예술비평에서 특히 롤랑 바르트의 비평은 ‘저자의 죽음’으로 문학작품이나 회화에서 일어나는 독자나 관람자의 느낌이 중요하지, 저자나 화가의 의도(intention)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작자를 작품감상에서 쏙 빼버린다. 소설이나 회화가 작가의 품을 떠나면 그 자체로 독립적이 되어 작가의 의도, 즉 무엇때문에 그걸 그렸느냐는 의도는 관심밖이 된다. 오직 그 작품과 독자의 관계만 중요하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카라바지오의 당시 마음상태와 그 결과물인 이 명화를 어떻게 떼어 놓을 수 있을까? 당시 화가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이 그림을 대한다면 혹시 그림은 살아나지 않을까? 그림속의 나자로처럼 관람자인 내가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그러면 왜 카라바지오는 이 ‘나자로의 부활’을 이렇게 참담하게 그렸을까? 또 왜 ‘부활’일까? 혹시 도망자의 신분인 그가 나자로처럼 다시 부활하길 ‘원’했던건 아니었을까? 살인자의 죄를 씻고 다시 부활하려는(사면받으려는) 그의 감춰진 욕망은 혹시 이 그림에 숨겨져 있는 ‘키워드’는 아닐까?

카라바지오는 원래 괴팍한 예술가로 그의 로마시절때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 창조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은 다 그렇겠지 뭐’가 아니다. 그는 로마에서 살인을 했다. 도망자 신세인 시칠리아에선 그의 원래 기이한 행동은 거의 정신이상에 가까웠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메시나의 지역 신부님들이 그의 이런 상황을 알고 불쌍히 여겨 그를 성당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성수(holy water) 한 그릇을 떠주며 마시라고 했다.

카라바지오가 물었다.   
“이건 무엇이요?”

신부님들이 답했다.
“당신의 과오(venial. 용서될 수 있는 가벼운 죄)를 씻기 위해서요.”

카라바지오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건 나에겐 필요없어요. 난 중죄(mortal. 씻을수 없는 중죄)인 이기 때문이요.”

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카라바지오는 자신의 죄를 알고 있었다. '용서될 죄(venial sin)'와 '용서안될 죄(mortal sin)'를 구분할 줄 알았다. 불면의 밤을 세며 그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곳 시칠리아에서 그는 갑옷을 입고 칼을 항상 옆에 두고 잠을 잤다고 한다. 그의 심리상태를 알만하다.

다시 높은 하늘과 낮은 바다 사이의 메시나를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과 바다의 색을 애써 외면하고 어두운 검정색을 칠하면서 카라바지오는 참회를 했을까? 부활이란 그림의 제목을 얼마나 그는 되뇌었을까? 자신의 인생이 검정색 어두움이란 걸 지역 사제들에게 내뱉은  중죄(mortal sin)라는 말에서 난 몇 퍼센트로 이 어둠이 우리 인생에서, 나의 인생에서 차지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검정색 어둠을 칠하면서, 어두운 과거를 성찰하며, 우리는 푸른색과 노란색을 꿈꾼다. 부활을 꿈꾸고 행복을 꿈꾼다. 이 어두운 검정색 어두움 속에서 푸른색과 노란색을 찾아 낼수있을까? 나자로 부활의 의미를 읽어 낼수 있을까?

이 그림에서 반이 넘는 텅빈 공간을 보았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있다. 성서의 바로 그 구절과 다르게, 그리고 다른 화가들의 똑같은 주제의 그림들과 다르게 카라바지오는  동굴, 즉 나자로의 죽은 시체가 있던 동굴을 특별히 그리지 않았다. 대신에 텅 빈 어두운 공간을 그림의 반 넘게 차지하도록 했다. 세상은 어두운 동굴이다. 카라바지오가 경험한 것처럼 인생은 신비한 고해이다. 이 그림의 중심인물, 4일간 시체로 있은 약간 부패한 나자로의 모델로 그는 지역 인부를 시켜 죽은 지 4일되는 시체를 파내 모델로 삼았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이는 '성모의 죽음'을 로마에서 그릴 때 사용했던 모델처럼 가톨릭 교회에서 논란이 되었다. 이렇게 그는 가차없었다.

그림의 어두운 공간처럼, 인생의 어두운 동굴에서 죽었다 다시 살아난 나자로가 되고 싶었던 카라바지오의 꿈을 이 그림에서 난 보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보았다. 푸른 하늘과 바다의 시칠리아에서도 이렇게 어두울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꿈의 색깔'은 사실 눈에 보이는 푸른색도 아니고 부활의 상징색인 노란 색도 아니다.  '상상의 색(imaginary colour)'이다. 이 색의 원천은 신앙이다. 이 상상의 색은 venial 죄와 mortal 죄를 아우런다. 그림의 왼편에서 오른손을 뻗어 나자로를 살리는 저 거룩한 손을 보자. 무엇이 살아 나오는가? 저기에서 광천수처럼 쏟아지는 은총을 볼 수 있다면... 은총은 죽었던 것을 살리게 하며 오직 영성의 눈으로 볼 수가 있다. 다시 꿈틀대며 살아 약동하는 가슴으로 다시 시칠리아의 푸른 바다와 하늘을 보았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에서 이 시칠리아의 푸른색과 노란색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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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Raising of Lazarus” by Caravaggio. 1609. 150 x 108″. Oil on canvas. Messina, Italy Museo Regionale)

시칠리아의 하늘과 바다. 하늘에 그려진 카라바지오의 흔적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그리젠토에서 바라본 바다와 하늘
카라바지오.
카라바지오가 그린 다른 그림, '성 루시아의 매장'. 시칠리아의 시라큐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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