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 율리시즈 Aug 17. 2017

파리의 두 카페 이야기

프랑스 여행 에세이-

명성만큼이나 따라붙는 별명도 많은 ‘파리’이다. ‘예술의 도시’, ‘낭만의 도시’, ‘유행의 도시’니 하며 파리를 수식해 왔고 이 수식은 현재진행형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빛의 도시(the City of Lights)’란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든다. 마르코 폴로가 감옥에서 쓴 중국기행문인, 그의 ‘동방견문록’에 '빛의 도시'를 언급했다. 그것처럼 7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동양엔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도시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화려하고 현란한 빛은 파리엔 없다.



보이는 빛보다 보이지 않는 빛에 이끌려 이 '빛의 도시' 파리로 수많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불나비처럼 세계 곳곳으로부터 모여들었으니...


예전에 비해 그런 빛의 명성은 오래된 백열등처럼 희미하지만 한땐 예술과 철학, 문학과 유행을 따라 화가들도, 작가들도, 시인들도 보헤미안의 안식처인 파리로 몰려들었다. 로마가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로마 이야기’로 먹고 살며 그 이야기를 듣고 경험하러 수많은 여행자들이 그리로 떠나듯, 파리도 19세기와 20세기의 예술과 문학과 철학의 이야기들을 여행자들에게 쉴새없이 들려주고 있다.


빛의 도시 파리에 몰려온 예술가와 작가들은  프랑스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화폭에다 파리를 담고 자신들의 문학작품에 이 보헤미안 파리를 정성껏 기록하였다. 대서양을 건너온 방랑자들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피츠제랄드(F. Scott Fitzgerald), 후에 영국으로 귀화한 엘리엇(T. S. Eliot),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등등이 여기서 살았고 그들의 파리생활을 우디 알렌 감독은 ‘미드나이트 인 파리’란 영화로 담아 다시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골수 ‘뉴요커’, 뉴욕과 뗄레야 뗄수 없는 우디 알렌이 파리의 매력에 그의 예술계 선배들처럼 빠졌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미국인 뿐만 아니라 영국 식민치하의 슬픈 조국 아일랜드를 떠난 거장 제임스 조이스도 여기서 ‘율리시즈’를 썼고 출간했으며 사무엘 베켓도 ‘고도를 기다리며’를 여기 초라한 무대에 올렸다. 파리는 분명 그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무한 리필’로 제공함과 동시에 육신의 안식처도 제공하였으리라.



지금에야 문학사를 배우고 예술사를 배우는 학생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리는 그들의 이름이고 그들의 작품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읽어야만 하지만 그들의 파리생활은 결코 기대한 만큼의 화려한 생활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들은 감수성 예민한 예술가들과 작가들에게만 보이는 파리의 보이지 않는 ‘영감의 빛’에 이끌렸을 것이다. 헤밍웨이는 그래서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파리생활이었다고 회고했다. 가난과 행복이 서로 양립이 될까 의심이 가지만 이들 예술가들에겐 그럴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 먹어도 배 부르다’란 말처럼...



그들이 파리의 생활에 아편중독처럼 빠져들고 즐겼던 것은 파리의 독특한 카페(살롱) 문화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들은 커피를 마시며 토론했으며(많이 싸우고 또 상처받고…) 창작의 영감도 얻었을 것이다.



파리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카페들 중에 이들이 많이 모인 곳은 센느 강의 왼편(남쪽) 라틴지구였고, 특히 ‘생 제르망 데 프레(Saint-Germain-des-Prés)’ 성당이 있는 지역이었다. 이곳엔 카뮈(Albert Camus), 브레히트(Bertolt Brecht), 피카소(Pablo Picasso) 그리고 조이스(James Joyce)등이 정기적으로 모여 담소하던 곳이었다.



여기엔 두 카페가 유명한데, 하나는 ‘레 드 마고(Les Deux Magots)’란 카페이고, 다른 하나는 이 카페에서 같은 거리 다음 건물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이다. 이 두 카페는 오랜 명성과 함께 옛 이름 그대로, 옛 자리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척인 관계로 또 유명인사들의 모임장소로서 서로 보이지 않는 라이벌 관계를 옛부터 형성하고 있었다. ‘카페 드 플로르’엔 트루만 카포테(Truman Capote)와 로렌스 드렐(Lawrence Durrel)이 단골이었으며 또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모임장소로 유명했다. 이 카페에서 실존주의 철학의 아이디어가 탄생했을까? 파리가 나치 독일의 점령하에 있을땐 시몬느 보보아르(Simone de Beauvoir)와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아예 아침 9시에서 12시까지는 이곳에서 토론하고 문학과 실존주의를 쑥덕거렸다고 한다. ‘계약결혼(?)’이란 비윤리를 그들이 여기서 공모했을까? 못된 것들...


하여튼,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카페가 집처럼 편안해요(This would seem strange to you, but at this Café, we were at home)”



그리고 그가 카페 단골임을 이렇게 고백했다.



“지난 4년동안(나치 치하의), 카페로 가는 길은 내겐 자유로 향하는 길이었어요(During the four years, the road to the Café was for me the Road to Freedom.).”



그렇구나… 여기 카페엔 몸서리쳐지는 억압을 피할 수 있는 자유의 공기가 있었구나. 이 자유의 공기가 없었다면 이들의 작품은 탄생할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그 전과 다르게 이 자유속에  이상야릇한 ‘꿈’과 ‘정신분석학’의 해석을 휘갈긴  초현실주의 화가들도 이 카페에 단골이었다고 한다. 그 중 이 유파의 창시자겸 초현실주의 선서를 공표한 대표자,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있으며 살바도르 달리도 커피를 마시며 그의 긴 콧수염을 매만지며 단장했을 것이다. 또 여기엔 피카소도 왔고 레저(Léger)도 단골이었다고 한다.


단골손님에겐 외상도 주었을까?



그리고 이들보다 전 세대인 19세기 말,  데카당트 운동에 관계된 베를렌(Verlaine)이나 랭보(Rimbaud)같은 시인도 많이 찾았다고 하니 역사로 치면 이곳 카페만한 데도 없다.  



사르트르와 보보아르가 ‘레 드 마고’에서 실존주의 토론을 하다 지치면 ‘카페 드 플로르’로 옮겨 약간 낮은 단계의 담소(말싸움 않는)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곳 ‘마고 카페’가 ‘플로르 카페’ 보다 더 열정적이란 생각이 든다. 헤밍웨이는 그 악명높은 ‘압상트’를 마셔 자주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고 카페안엔 두개의 중국식 조각(the two Chinese figurines)이 있는데 그 이름을 딴게 그대로 카페의 이름이 되었다. 반면에, 플로르는 로마신화에서 꽃의 여신인 플로라에서 그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두 카페는 역사적으로 서로 경쟁(?)의 관계였지만 지금은 그런 지성인들이나 가까운 파리의 소르본 대학생들보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거의 카페안과 밖을 점령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얼핏보기엔 미국인과 중국인들이 많아 보였다. (한떼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카페 바깥에서 사진을 마구잡이로 팡팡 찍어대고 있었다. 혹시 내가 찍힐까봐 커피잔으로 얼굴을 가렸다. 조그만 에스프레소 잔으로 이 큰 얼굴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리자 안심이 되었다. 처음으로 큰 얼굴이 생활에 불편함을 가져옴을 이 카페에서 경험했다.) 이 두 카페는 이제 예술가나 작가를 모시기보다 관광객 모시기에 경쟁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가져 온 메뉴에도 영어로 표기돼 있었으며 웨이트들도 영어에 능통하였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카페가 유명작가들과 관계된 역사로 인하여 각각 ‘문학상’을 제정하여 상을 주는 것이었다. 문학상 제정은 ‘레 드 마고’ 카페가 더 오래되었는데 명성있는 콩쿠르 문학상(the Prix Goncourt)에 대항해 이 카페 주인이 제정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콩쿠르 상이 너무 아카데미적(학문적)이라 이에 대항해 이 문학상을 제정했다고 하니 이 카페의 역사뿐 아니라 카페 문화의 ‘자존심’도 엿볼 수 있다.



수많은 세계 문학계의 별들이 한때 숨을 쉬고, 토론하고, 작품을 쓴 이 라틴 구역을 제임스 조이스는 ‘스트라트포드 온 오데옹(Stratford-on-Odéon)’이라 불렀다. 영국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본(Stratford-upon-Avon)’을 따라 이렇게 지었는 것같은데 이유는 라틴구역 오데옹 거리(rue de l’Odéon)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란 유명한 책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율리시즈’를 처음으로 출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에선 처음엔 이 소설은 금서가 되었다. 지금 이 구역엔 오데옹 영화극장들도 많이 있다(영국의 똑같은 이름 오데온 극장처럼). 헤밍웨이는 자신의 회상록,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때는 책을 살 돈이 없었다(In those days there was no money to buy books)”



그의  그대로 그 시대 작가들의 상황을 보여 주는 것같다. 그래서 헤밍웨이는 영어책을 취급하는 이 책방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안타깝게도 원래 책방은 1940년 나치 침략때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러나 1951년에 다시 영어책을 취급하는 책방이 원래 자리가 아닌 노트르담 성당이 바로 보이는 곳, 센느 강 강변쪽에 오픈되었고 지금도 똑같은 이름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후엔 헨리 밀러(Henry Miller), 윌리암 버로우(William S. Burroughs) 그리고 알렌 긴즈버그(Allen Ginsberg) 등이 자주 이곳에 들렀고 ‘비트 문화(Beat culture)’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우디 알렌의 영화 ‘미드나이트 인 파리’에도 이 책방은 나온다. 영화로 인해 찾아온 젊은 베낭 여행자들이 대부분인데 책방 바깥 칠판엔 유명작가들의 말을 적어 놓고 음미하게끔 만들어 놓았다. 썩어가는 책 냄새를 맡으며 좁은 책장사이를 돌다보면 어느새 영화에서처럼 ‘지금(Now)’과 ‘그때(Then)’란 시간의 간격이 없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책냄새는 시간을 초월케 해주는 마법의 향수인가보다. 아니, 빛의 도시 파리는 시간의 간격을 없애주는 마법의 도시같다.


https://brunch.co.kr/@london/91

http://www.brunch.co.kr/@london/35

https://brunch.co.kr/@london/36

https://brunch.co.kr/@london/73


https://brunch.co.kr/@london/89


:::::

'레 드 마고' 카페. 외관으론 파리의 보통 카페와 별반 다름없다.

'카페 드 플로르'.

'카페 드 플로르'에서 시킨 에스프레소. 다른 데 비해서 엄청 비쌌다... 자리값?

'카페 드 플로르'의 메뉴. 불어를 모르더라도 쉽게 주문할 수 있다. 오믈렛을 먹었다. 햄(쟝봉)과 치즈를 넣은 오믈렛이었지만 맛은 없었다. 셰프가 바뀌었나?

저 안에서 무슨 대화를 나눌까?실존에 대해?

비가와서 그런지 카페 바깥엔 손님이 없었다. 눈치보지 않고 사진찍기 좋았다. 생 제르망 데 프레 성당앞에서 바로 보인다.

멀리 '몽파르나스'가 보인다. 거기엔 프랑스 남쪽 도시로 가는 기차역이 있다. 햇빛이 많은 지중해쪽으로 말이다. 기차들은 햇빛의 꿈을 좆는 많은 예술가들을 남쪽으로 수없이 날라다 주었다. 고흐도 마티스도... 이곳 파리엔 궂은 비가 어슬어슬 내렸다. 나의 실존(Existence)을 성찰해 볼 시간?

카페 건너편에 '생 제르망 데 프레' 성당. 종탑이 가장 오래된 부분이고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책방. 셰익스피어의 초상이 턱하니 걸려있다.

책방 바깥. '헨리 제임스'의 경구가 보인다. 헨리 제임스(철학자겸 심리학자 윌리암 제임스와 형제간)는 파리를 배경으로 그의 소설 '대사들(The Ambassadors)'을 썼다. 이 소설엔 미국문화와 프랑스 문화를 비교하며 파리의 문화적 매력에 빠진 두 미국인을 그리고 있다. 은근히 문화적 후진국 미국을 상징하며 그리고 있다.

책방의 바깥 풍경. 궂은 날씨였다. 런던처럼... 런던이 그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일랜드 작가의 'Korea'란 제목의 단편소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