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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Apr 22. 2016

한 방 따위는 없다

삶은 변화의 연속이며 꽃은 한 번에 피지 않는다

사진 - 영산홍이 피기까지의 순간을 포착했다. 모두 다른 날 비슷한 시각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주위에 있는 꽃나무에 아무 관심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화사한 색깔의 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시선을 준다. '이런 꽃이 있었나?' 새삼스레 놀라며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도 찍는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나는 그랬다. 지난 해 5월에 나는 활짝 핀 영산홍에 반해서 화단 옆에 서서 내 얼굴이 함께 나오게 사진을 찍었었다. 올해도 봄이 되니 그 아름다움이 그리워서 자연히 앙상한 가지뿐인 화단에 계속 시선이 갔다. 어서 만개하기를 기다리며 꽃이 피기까지의 순간을 담아보기로 했다. 다른 곳 영산홍은 다 만개했던데 내가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는 화단의 영산홍만 유독 늦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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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 같은 것이 꽃봉오리 하나인가 했는데, 씨앗이 터지며 싹이 나는 것마냥 껍질이 벗겨지면서 하나의 껍질 속에서 꽃봉오리가 여럿 튀어나왔다. 길쭉하고 뾰족한 꽃봉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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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자 마자 피어난 꽃도 있었다. 저마다의 속도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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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오리가 마치 꽃잎 같이 모여 있어서 그 자체로도 한 송이의 꽃 같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 한 송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송이가 한 형제처럼 꼭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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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 때문에 색감이 제대로 담기지 못했지만 그래도 많이 피었다. 이렇게 다음 날, 또 다음 날, 다른 곳에 영산홍들이 만개한 것을 보고 오늘은 모두들 활짝 피었겠지 했는데 늘 아직이었다. 기다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 게으르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더 느리게 느껴지는 걸까? 관심도 없을 때는 하루 아침에 피어난 것만 같아 보였었는데, 꽃은 절대로 한 번에 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긴 겨울을 포함해 오랜 시간 힘을 모으고, 그 힘으로 껍질을 깨고 나오고 또 봉우리를 터뜨리고, 그렇게 피어난다. 꽃들에게 한 방이란 없다.






우리나라는 한 방 사회이다. 수험생들이 받는 대접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수능 성적으로 인생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성적표가 주는 좌절감에 목숨까지 내놓는 어린 영혼들은 무슨 죄일까. 나만 해도, 고등학교 시절 성적 때문에 꿈을 꿀 기회도 허락받지 못할 뻔했던 것이 정말 속상했다. 수능 결과로 진로가 결정되니까 말 그대로 '인생 한 방'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런 사회 시스템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방에 대한 로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인생이 한 방에 바뀔 수 있을까?



'한 방'에 인생역전을 했다는 사람들의 영웅담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인생을 바꾼 계기와 같은 그것을 진짜 '한 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뿌리 내릴 땅이 없고 땅을 적시는 비가 없고 꽃이 될 꽃봉오리가 없는데 꽃이 필 리는 없기 때문이다. 피어나지 않아서 우리가 몰랐을 뿐, 한 방에 꽃이 된 그들은 이미 꽃봉오리였을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아서 몰랐을 뿐, 기회를 만들고 기회를 잡을 줄 아는 뭔가가 그들에게는 이미 있었을 것이다.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인터넷이 처음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던 때를 기억한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새롭게 열린 인터넷 세상은 시간 많고 한가한 나 같은 초딩들이 활보하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었다. 지금 학생들 사이에서 카카오 스토리가 유행하듯 당시 친구들 사이에 홈페이지 제작이 유행이었는데, 블로그 서비스가 생기기 전에 네이버에서도 홈페이지 플랫폼을 제공했었다. HTML 편집으로 작성할 수 있는 것도 있었고 기본 디자인을 제공하는 것도 있었고. 참, 한 때는 다음 카페가 흥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카페에 올려주는 포토샵 강좌 같은 것도 따라하고. 으아, 추억 돋는다.



여기저기에서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하자 나도 블로그를 개설했었는데, 게시글을 비공개로 돌리고 문을 닫았었던 네이버 블로그를 어제 다시 열었다. 포스트들을 다시 읽으면서 이 글의 주제를 떠올렸다. 나는 어릴 때도 끄적이는 것을 참 좋아했더라. 내가 글쓰기에 자신감을 가졌던 적이 없어서 행복한 기운이 가득한 글을 술술 쓰고 있는 지금이 기적 같았는데, 이렇게 되기까지 고군분투하며 냉소적이고 우울한 기운이 넘쳐나는 어두운 글들도 많이 썼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나름 행복했고 답도 찾았다고 생각했었기에 내가 마음수련 명상을 하고 나서 그보다 "더" 행복해졌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워서 지금 이런 글들을 쓰고 있다. 명상에 집중한 지난 한 해 동안은 되도록 글을 쓰지 않았다.



마음이 편해지고 좋아진다는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 오히려 내가 힘들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바로 '한 방'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수련 명상으로 나를 다 버리고 나면 내가 한 방에 다른 사람으로 바뀔 줄 알았다. 그래서 언제 바뀌지? 언제 바뀌지? 하면서 명상을 했다. 그러니 바뀔 턱이 있나. 한 방 따위는 세상에 없다. 내 밑바닥 마음의 실체를 마주하며 인정하고 모든 기대를 다 내려 놓았을 때 정말 한 방에 바뀌기는 했다. 그러나 이 '한 방'이란 꽃봉오리가 꽃을 터뜨리는 순간일 것이다. 총알 한 방을 쏠 때도 총알을 준비해서 장전하는 작업이 없으면 그 한 방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만발한 꽃을 부러워 말자. 우리도 끊임없이 성장하는 중이다.



드디어 오늘, 피었네.


201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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